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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묵입니다. 어머니는 메밀묵을 잘 만드셨습니다.
메밀묵입니다. 어머니는 메밀묵을 잘 만드셨습니다. ⓒ 박희우

순간 저는 ‘아차’ 합니다.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모님은 도토리묵을 잘 만드셨습니다. 반면에 어머니는 메밀묵을 잘 만드셨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도토리묵과 메밀묵을 비교한다는 게 어쩐지 어색해 보였습니다. 저는 아내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아내가 빙그레 웃습니다. 마치 제 속내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내가 말합니다.

“당신, 생각나요?”
“뭐가 말이요?”
“결혼하기 전에 우리 상견례를 했잖아요. 그때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 말이에요.”
“우리 어머니가 하신 말씀? 아, 그거. 하하, 당신은 별 걸 다 기억하고 있소.”

그러니까 10여 년 전입니다. 결혼을 앞두고 우리는 한식집에서 상견례를 했습니다. 처가 쪽에서는 장인어른 내외분과 큰처남 내외분이 나왔습니다. 저희 쪽에서는 어머니와 여동생이 나왔습니다.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결혼날짜도 잡고 예단문제도 합의를 했습니다. 식사도 마쳤습니다. 후식으로 과일이 나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어머니가 아들 자랑을 하십니다.

“우리 아들 있지요. 대학 다닐 때 공부를 참 잘했어요. 좋아하는 여자들은 또 얼마나 많았고요. 지금도 그쪽 부모들이 우리 아들 소식을 묻곤 해요. 미술학원 원장, 피아노학원 원장, 시청에 다니는 처녀. 그런데도 아들이 다 싫다고 하지 뭐예요.”
“참 어머니도 별 말씀을 다하세요.”

여동생이 급히 어머니의 말씀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장모님의 표정이 금세 변합니다. 큰처남 내외분이 분위기 반전을 시도해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그때 장모님이 한말씀 하십니다.

“우리 미숙이도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어요. 지금도 좋다는 남자가 줄을 섰어요. 학교 선생님, 군청공무원, 큰 회사 직원.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어허!”

안되겠다 싶었던지 장인어른이 나섭니다. 장모님에게 그만 하라는 눈치를 보냅니다. 여동생도 나섭니다. 어머니가 아들 사랑하는 마음에서 해본 소리라며 이해를 구합니다. 어머니도, 장모님도 더 이상 언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두 분은 잘 지내십니다. 그때 얘기를 하면 두 분 다 어색하게 웃어넘기십니다.

“10년도 넘은 일이지만 어쨌든 미안하오. 사정이야 어찌됐든 어머니가 먼저 말을 꺼냈으니 내 책임이 크오.”
“호호, 오늘 당신 참 재미있네요. 메밀묵, 맛있게 해드릴게요.”

아내가 메밀묵을 채로 썰어서 대접에 담습니다. 멸치국물을 붓고는 여러 가지 양념을 썰어 넣습니다. 물고추, 김장김치, 대파, 김. 마지막으로 양념장을 뿌립니다. 그래도 한 가지가 빠진 모양입니다. 아내가 찬장에서 참기름을 꺼내더니 몇 방울 떨어뜨립니다. 고소한 냄새가 입맛을 돋굽니다.

“그런데 말이요. 장모님이 만든 도토리묵을 먹고 싶은 거 있지요. 이번 가을에는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소.”
“건강이 좋지 않으셔요...”

아내가 말끝을 흐립니다. 장모님은 관절이 좋지 않으십니다. 어디 관절뿐입니까. 온 몸이 성하지를 않습니다. 이번 가을에는 장모님 대신 우리가 큰산에 가서 도토리를 주워야겠습니다.

저는 메밀묵을 먹기 시작합니다. 그때 갑자기 어머니 얼굴이 떠오릅니다. 메밀묵을 그렇게 잘 만드셨던 어머니입니다. 그런 어머니였지만 아, 이제 어머니는 다시 메밀묵을 만들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만든 메밀묵을 저는 두 번 다시 먹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시력을 잃으셨습니다.

아내는 도토리묵을 먹습니다. 저는 메밀묵을 먹고 있습니다. 아내는 지금 장모님을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저는 지금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두 분 다 홀로 되셨습니다. 그 쓸쓸함을 어찌 우리가 모르겠습니까. 언제 두 분 모시고 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습니다. 아내도 무척 좋아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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