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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다리에 안성마춤인 어린이용 자전거
짧은 다리에 안성마춤인 어린이용 자전거 ⓒ 김정혜
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정말 시원하였습니다. '끽'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구멍가게 앞에 자전거를 세우니 가게 아주머니가 한마디 건네십니다.

"아니, 복희 엄마. 저번에 신랑이 새 자전거 사줬다더니 왜 만날 그 고물 자전거는 타고 다녀. 그것도 아이들이나 타고 다니는 어린이용을…."
"글쎄, 아줌마 참 이상하죠. 전 이 고물자전거가 그렇게 편할 수 없어요. 몸에 착 붙는 게 꼭 제 몸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요."
"그럼, 그 새 자전거는 어떻게 할 거야? 신랑이 생일 선물로 사주었다며? 신랑이 서운하겠네."
"이제 앞으로 자전거 타기 좋은 날들이니까 부지런히 타서 만만하게 만들어야죠."

가게 아주머니에게서 설탕 한 봉지를 건네받아 자전거 앞에 달린 낡은 바구니에 담으면서 왠지 제 어린이용 고물자전거가 측은하게 느껴져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곤 집으로 와서 새 자전거 곁에다 어린이용 고물자전거를 세워놓곤 자전거 두 대를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헌 자전거와 새 자전거
헌 자전거와 새 자전거 ⓒ 김정혜
인디언 그림이 그려 있고 귀퉁이가 약간 부서져버린 파란 플라스틱 바구니가 달린 어린이용 자전거는 이 집에 이사올 때 뒤 베란다 구석에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녹이 많이 슬고 먼지를 뒤집어쓰긴 했지만 아직은 탈만 할 것 같아 깨끗하게 녹을 닦아내고 기름칠을 하여 비닐로 꽁꽁 싸매 다시 베란다에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후에 딸아이가 크면 그 자전거를 아이에게 주려는 속셈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지난 여름. 대곶면 일대에 대명포구까지 이어진 자전거 전용도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아주 잘 됐다며 앞으로 자전거타기 좋겠다고 신나 하더니 뜬금없이 제게 "복희 엄마! 자전거는 탈줄 알지"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답하기가 참 곤란하였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자전거를 타지 못했습니다. 하여 자전거를 타지 못하니 솔직하게 타지 못한다고 이야길 해야 하건만 남편의 묻는 느낌이 당연히 제가 자전거 정도는 탈 줄 알겠지라고 되묻는 것이기에 그 순간 자전거를 못 탄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에 되지도 않은 자존심이란 게 슬며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글쎄. 학교 다닐 때 타보고 안 타봐서 어떨지 모르겠네..."

남편의 얼굴을 피하며 그렇게 슬며시 말꼬리를 흐리는데 남편은 단박에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감지해냅니다.

"뭐야. 우리 마누라 천연 기념물이네. 요즘은 운전면허도 여자들에겐 필수인 세상인데..."
"아니야. 아주 못타지는 않아. 내가 타나 못타나 우리 자전거 타러 한번 가 볼래?"

뒷날 우리 부부는 근처 대곶 초등학교로 자전거를 타러 갔습니다. 남편의 자전거는 당연히 다리가 짧은 제겐 가당치않을 것 같아 베란다에 꽁꽁 싸매두었던 그 어린이용 자전거를 가지고 갔던 것입니다.

물론 제가 남편에게 한 말은 당연히 거짓말이니 그날 엎어지고 자빠지고 무릎 깨고 생난리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린이용 자전거는 다리 짧은 제가 타기엔 아주 안성마춤인지라 서 너 시간 남편이 뒤에서 잡아주고 나니 혼자 탈 수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그것도 어린이용 자전거로 정확히 네 시간 만에 자전거를 배웠습니다.

그 후 남편과 저는 틈나는 대로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리는 아주 좋은 취미생활을 함께 즐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날도 마침 화창한 휴일이어서 남편과 제가 자전거 전용도로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신나게 달리는데 신호대기 중이던 한 짓궂은 운전자가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한마디 툭하며 던졌습니다.

"아줌마! 어지간하면 자전거 한 대 사지 그래요. 아저씨! 아줌마 자전거 한 대 사줘요."

순간 남편도 저도 자전거를 세운 채 괜히 서로 무안해서 얼굴만 마주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어야 했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그 어린이용 고물 자전거를 타면서 한번도 부끄럽다거나 창피하다거나 뭐 그런 일련의 감정들은 전혀 느껴보지 않았는데 그 운전기사의 한마디가 참 충격적으로 들렸습니다.

혹 내 남편이 마누라 자전거도 한 대 못 사주는 무능한 남편으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화도 났습니다. 하지만 제가 창피하지 않으면 그뿐이고 내 남편이 그리 무능하지 않으면 그뿐이라는 생각에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복희아빠, 괜찮아. 남들이 뭐라 그래도 내가 편하면 되는 거야. 그런 데 신경쓰지 마."

하지만 남편은 신경이 쓰였는지 그 후로 함께 자전거 타는 걸 꺼려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리고 올 1월 12일 제 생일에 높낮이가 조절되는 아주 좋은 새 자전거를 한 대 선물해 주었습니다.

남편이 생일선물로 사준 새 자전거
남편이 생일선물로 사준 새 자전거 ⓒ 김정혜
하지만 지금껏 제가 그 자전거를 타 본 횟수는 다섯 손가락을 구부리면 충분할 정도입니다. 왠지 불편하고 꼭 남의 옷 빌려 입은 것처럼 어색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어린이용 고물자전거는 작년부터 늘 타고 다녔으니 몸에 익숙함이 배어서 편안한 것일 테고 새 자전거는 아직 제 몸과 별 친분이 없으니 아직은 서먹서먹해서 불편한 것일 테지요.

그래서 아마도 그런 말이 있나 봅니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비록 많이 낡고 이 아줌마가 타기엔 좀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어도 그 어린이용 고물자전거는 제겐 아주 익숙하고도 훌륭한 명관임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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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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