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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6호선. 다섯 개의 굴을 끝이 영화 쉬리를 찍은 강이 보이는 곳이다. 큰길 아래 정약용묘, 팔당이란 이정표를 따라 가면 된다.
국도6호선. 다섯 개의 굴을 끝이 영화 쉬리를 찍은 강이 보이는 곳이다. 큰길 아래 정약용묘, 팔당이란 이정표를 따라 가면 된다. ⓒ 이승열
4차선으로 확장된 국도6호선 주도로를 살짝 비끼어 정약용 묘, 팔당이란 이정표의 옛길로 접어든다. 왼쪽으로 중앙선 철길 옹벽과 오른쪽으로 반짝거리는 강물에 손을 담가도 될 만큼 한강에 닿아있는 구불구불 굽이치는 편도 1차선의 좁은 길이 ‘두물머리’(양수리)까지 이어진다.

한강을 앞에 두고 예봉산을 배경으로 중앙선 철길 옹벽은 온갖 사랑을 확인하는 낙서들로 하나의 설치 예술품을 보는 것 같다. 살풍경한 거친 회색의 시멘트벽에 새겨진 사랑의 흔적들. 끊임없이 확인하고, 증거를 남기고, 세상 사람들을 향해 행복함을 맘껏 자랑하고 싶은 것이 사랑의 속성이듯 싶다. 내 자신을 확인하고, 다시 상대에게 확인하고, 표식을 남기고, 그래도 주체되지 않는 사랑의 감정들을 이 회색빛 벽에 세상을 향해 마구 쏟아내고 있다.

중앙선 철길 아래 사랑의 벽. 2003년 10월 1일 사랑의 흔적을 남긴 창기와 소영이는 인연이 닿았을까?
중앙선 철길 아래 사랑의 벽. 2003년 10월 1일 사랑의 흔적을 남긴 창기와 소영이는 인연이 닿았을까? ⓒ 이승열
사랑의 흔적 가득한 자칫 유치한 낙서판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회색 벽을 ‘사랑의 벽’ 이란 멋진 이름 붙인 이는 이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 선화백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 술을 가장 유쾌하게, 가장 맛있게 마시는 그는 양평 강하면 항금리에 작업실이 있어 아침, 저녁으로 이 벽 앞을 지나며 이곳을 사랑의 벽이라 이름 지었다.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이 신에게 한발 다가서는 곳이듯, 이곳 사랑의 벽도 사랑으로 행복한, 또는 사랑에 상처 입은 영혼을 위한 성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앙선 철길 근처 풍경들. 옹벽에 매달린 동굴집, 이젠 차가 다니지 않는 팔당 공도교. 수채화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 철길.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비각 속에 갇힌 한확 신도비
중앙선 철길 근처 풍경들. 옹벽에 매달린 동굴집, 이젠 차가 다니지 않는 팔당 공도교. 수채화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 철길.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비각 속에 갇힌 한확 신도비 ⓒ 이승열
그 사랑의 벽 철길 위로 안동, 혹은 영주행 중앙선 열차가 달리고 있다. 내가 사는 곳을 세상의 중심쯤으로 착각하고 살던 스무 살 때 읽은 송영의 ‘중앙선 기차’는 언제나 중앙선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꿈을 꾸게 했다. 나라 안의 모든 중고생을 극장으로 끌어들였던 청춘스타 임예진이 교복을 벗고 등장한 성인물이 송영 원작의 ‘땅콩 껍질 속의 연가’였다.

송영의 작품을 한편도 읽지 않고 영화로 먼저 대한 탓에, 그저 그런 황색소설을 쓰는 삼류작가라고 단정한 내게 그의 단편 ‘중앙선 기차’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깜깜한 한밤에 중앙선 철길에서 갑자기 멈춘 기차 안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인간 군상들을 묘사한 ‘중앙선 기차’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지평, 국수, 아신, 신원이란 간이역이 대번에 내게 그립고,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해병대 장교로 복무하다 탈영해 경기도 어느 오지에선가 아이들을 가르치다 체포된 그는, 운 좋게 투계의 작가임을 알아본 법무관의 선처로 풀려나 자신의 경험담을 ‘선생과 황태자’로 풀어낸 작가이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 끊임없이 탈출을 꿈꾸지만 현실이라는 감방은 근본적으로 탈출이 불가능한 우리가 견뎌내야 하는 곳임을 그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늘 떠남을 꿈꾸지만, 떠남 또한 돌아옴이 전제되어 있기에 기꺼이 떠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돌아옴이 예정되어 있지 않다면 견뎌내야 할 일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여행 또한 즐거움도 환상도 가질 수 없는 고통이리라.

중앙선 철길 팔당과 양수 사이에 능내역이 있다. 임무를 마치고 퇴장하는 능내역 시간표가 벽에 기대어 있다.
중앙선 철길 팔당과 양수 사이에 능내역이 있다. 임무를 마치고 퇴장하는 능내역 시간표가 벽에 기대어 있다. ⓒ 이승열
갖가지 세상사를 간직한 사람들로 붐볐을 중앙선 간이역은 이미 퇴화되어 버린 인간의 꼬리뼈처럼 임무를 다하고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팔당역과 양수역 사이의 간이역 능내역사 유리창에는 올해 4월 1일부터 기차가 이곳에 서지 않는다는 안내문만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기차가 서지 않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조그만 역사 마당엔 벌써 풀씨들이 날아와 사람들이 떠난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빨간 함석지붕의 강변 편의점. 불두화 그늘 아래서 어부들이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빨간 함석지붕의 강변 편의점. 불두화 그늘 아래서 어부들이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 이승열
작년 여름 중경에서 시작해 황토 빛 장강을 따라 삼협댐 근처까지 배로 여행한 적이 있었다. 가도 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황토 빛 강에서 해가 뜨고 해가 지고 하루 종일 보인 것은 강과 산과 산골짜기의 오두막만 보일뿐이었다. 강가 골짜기에 둥지를 틀고 사는 사람들. 손바닥만한 농토도 없는 강과 산뿐인 오지에서 도대체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살까가 궁금했었다.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인으로 살고 있는 조선족 3세인 강 선생이 별 질문을 다 한다는 듯 대답했었다. 강가 사람들은 강 속에서, 산사람들은 산 속에서 얻은 먹을거리를 자식을 기르고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척박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행자의 감상일 뿐 강이 품고 있는 풍요로움을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혜택은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이상이라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강 풍경. 철길을 건너는 길은 산수화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강 풍경. 철길을 건너는 길은 산수화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이다. ⓒ 이승열

능내의 겨울풍경. 얼음 속에 두꺼운 얼음이 겹겹이 보이고, ‘쩍 쩍’ 얼음 갈라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강가
능내의 겨울풍경. 얼음 속에 두꺼운 얼음이 겹겹이 보이고, ‘쩍 쩍’ 얼음 갈라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강가 ⓒ 이승열
철길을 건너 가장 아름다운 강가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언제나 내겐 여행지의 풍경일 뿐이었던 철길너머 강가에서 어부들이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여기서도 고기가 잡히나요? 별소리 다 한다는 듯 한마디 던진다. 물이 있는데 고기가 왜 없겠소. 언제나 우문현답.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 곁에는 예비 신혼부부들의 야외촬영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이 시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초록색 편의점 간판이 어부들 뒤로 함석지붕 벽에 붙어 있다.

깜부기도 보리와 함께 익어가고 있었다. 율무를 통째로 볶아 어릴 때 보리차처럼 끓여먹었다. 이팝나무 꽃이 풍성하면 풍년이 든다 했다. 질리도록 먹었던 아카시아꽃
깜부기도 보리와 함께 익어가고 있었다. 율무를 통째로 볶아 어릴 때 보리차처럼 끓여먹었다. 이팝나무 꽃이 풍성하면 풍년이 든다 했다. 질리도록 먹었던 아카시아꽃 ⓒ 이승열

여름을 준비하는 수련못. 꽃을 피우고 줄기를 남기고 겨울을 견디면 다시 봄이 온다.
여름을 준비하는 수련못. 꽃을 피우고 줄기를 남기고 겨울을 견디면 다시 봄이 온다. ⓒ 이승열

야외촬영이 없던 시절에 결혼한 게 천만다행. 겨울 신부는 얼마나 추울까? 부푼 기대감에 추위쯤은? 편의점 앞 일상풍경
야외촬영이 없던 시절에 결혼한 게 천만다행. 겨울 신부는 얼마나 추울까? 부푼 기대감에 추위쯤은? 편의점 앞 일상풍경 ⓒ 이승열
기차가 기적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다. 하얀 아카시아 꽃을 한 움큼 따서 입속에 넣어본다. 언니, 혹시 작산이 논 못자리에 뿌린 볍씨 참새가 먹을까봐 쫒으러 갔다가 아카시아 꽃 고추장에 찍어먹던 생각나? 난 까맣게 잊고 있던 일들을 동생은 아직도 세세히 기억하고 있다. 지긋지긋했던 새를 보러 갔던 일들이, 꾀부리다 혼도 나고 울기도 했었는데, 왜 기억 속엔 슬픔조차 그리움으로 각색되어 남아 있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눈 쌓인 강가는 지난 겨울 사진입니다.
다산묘소가 있는 능내강가 못미쳐 철길 건너 풍경입니다.
이미 유원지가 되어버린 능내 다산묘소, 두물머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한적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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