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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어느 날 가족나들이, '품 안의 자식'이란 말처럼 자식은 크면 부모 곁을 떠나게 마련이다.
20년 전 어느 날 가족나들이, '품 안의 자식'이란 말처럼 자식은 크면 부모 곁을 떠나게 마련이다. ⓒ 박도
우리 가족 네 식구만 하더라도 지금은 세 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지난해 초까지 우리 가족은 한 지붕아래 20년을 넘게 살아왔다.

내가 시골 행을 가장 망설인 점은 가족 해체였다.

하지만 아내는 서양에서는 18세만 되면 자식을 독립시키는데 언제까지 자식들을 주리 끼고 살 수 없다고, 아이들도 독립하겠다고 해서 가족 의사를 따랐다. 그러다가 올해 초, 아들이 직장 이전으로 다시 독립해 나갔다.

지난 주초는 마침 아들 생일이라 우리 부부가 서울로 가서 오랜만에 네 가족이 모여 오붓하게 지내다 왔다. 나는 계속 함께 살고 싶지만 언저리 여건들이 그렇지 못하다. 내 욕심대로 살 수 없는 세상이다.

10여 년 전, 프랑스에 갔을 때, 파리 시내에 사는 젊은이들이 절반 이상은 홀로 독립해서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놀랐는데, 어느 새 우리사회가 그들 사회처럼 돼 버렸다. 민주화로, 인권과 여권신장으로, 산업의 발달로, 앞으로 당분간은 지난날 농경사회와 같은 대가족제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늘날 취업으로, 학업으로 가족이 헤어지게 되는 것은 산업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족 해체는 이따금 가족들이 만나면서 끈끈한 가족애를 이어갈 수 있지만,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이혼이나 부부 별거로 가족 해체가 부쩍 늘어나는 점이다.

내가 교단에 처음 섰던 1970년대 초에는 한 부모 자녀가 한 학급에서 한둘 정도였는데, 지난해 퇴직할 무렵에는 예닐곱 정도로 부쩍 늘어났다(상대적으로 학급 정원은 거의 반으로 줄었음).

조금 더 참으면서 살자

지난날에는 여성들이 혼자 살기가 힘들어 부당한 결혼생활(인권유린이나 가정폭력 등)에도 어쩔 수 없이 참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여성들도 남성 못지않게 사회 활동을 하여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되자 굳이 모든 걸 참고 사는 경우가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남성들 가운데는 여태 고루한 의식구조로 살아가는 이가 많다. 그래서 이혼가정이 더 늘어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혼하는 당사자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중대 결심을 하였을 테다. 그래서 제삼자가 단정해서 뭐라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지난날의 도덕률로 이혼을 굳이 나쁘다고 비난할 수도 없다.

이혼 당사자는 본인이 결정한 선택으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딸린 가족, 특히 자녀들의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들이 겪는 심적 타격은 부모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이혼으로 가족 해체가 늘어간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행복지수를 떨어드리는 일로, 이런 가족 해체를 우리 사회 전체가 미리 막는 분위기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이따금 제자들의 혼인 주례를 설 때, 단골로 하는 말은 '결혼하기 전에는 두 눈을 떠라. 결혼 뒤에는 한 눈만 떠라"라는 말과 '인내'이다. 대체로 이혼한 가정은 이 말을 거꾸로 행하기에 빚어진 경우가 많다.

'사람의 약속'은 지키는게 아름답지 않을까? 제자의 혼인예식에 혼인서약을 다짐하는 필자
'사람의 약속'은 지키는게 아름답지 않을까? 제자의 혼인예식에 혼인서약을 다짐하는 필자 ⓒ 박도
사람은 미묘한 감정의 동물이기에 그 감정의 변덕이 매우 심하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보면, "사람은 자기 자신도 하루에 세 번 이상 미워한다"고 하는데, 아무리 사랑했던 남녀가 만날지라도 한 평생 사노라면 미워질 때가 어찌 없겠는가. 부부는 이때를 슬기롭게 잘 넘겨야 가정을 지킬 수 있다.

가정을 지키는 비결이요, 부부 해로의 명약은 '인내'이다. 나는 최근 몇 해 동안 한 잡지사의 객원기자로 매달 한두 사람씩 열정적으로 산 사람을 만나서 대담을 나눈 적이 있다. 가정을 잘 꾸려가는 부부에게 그 비결을 물으면, 그분들은 하나 같이 '인내'라고 대답하였다.

어느 한 집에는 천장에 아예 '백인(百忍)'이라는 선조의 유묵을 붙여 놓고 매일 쳐다본다고 했다.

또 어떤 가정은 "남이 참는 것은 참는 게 아니다. 남이 못 참는 것을 참는 게 참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대로 참으면 병이 되니까 지게를 지고 산에 가서 지게작대기로 나무를 후려치거나 주막에 가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킨 뒤 콧노래를 부르면서 위기를 어물쩍 넘겼다고도 했다. 해로한 부부치고 자녀를 위해 위기를 참고 넘기면서 가정을 지키지 않는 이가 없을 게다.

남남끼리 만난 부부가 한 평생 해로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혼인서약 때 서로간의 약속을 바보처럼 지키면서 한 평생 살아가는 게 아름답지 않을까?

한 순간의 '욱'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평생을 후회하거나 고통 속에 사는 사람이 많다.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내 가정과 이웃 가정 모두에게 '인내'라는 말을 복음처럼 들려드린다.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가 나라가 건강해 진다. 우리 모두 가족(자녀)을 위해 조금 더 참으면서 살자. 먼저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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