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눈길에서
저만치 벗어나 저 혼자 피었다
저 혼자 스르르 지는 꽃
그늘 한 점 없는 오뉴월 땡볕
밭이랑에는 하얀 꽃 자주 꽃
생명의 빛이 주렁주렁 열린다.
-<감자 꽃>, 한석종-
5월 하순부터 6월 중순경의 밭이랑에는 하얀 자주색 감자 꽃이 사람들의 눈길에서 저만치 벗어나 저 혼자 피었다 저 혼자 스르르 진다. 감자 꽃이 필 무렵 촉촉한 흙 속에서는 주렁주렁 감자가 여물어가고 인근의 논밭에서는 보리걷이와 모내기가 한창이어서 유월의 농촌 들녘은 더 할 나위 없이 바쁘기만 하다.
우리에게 강한 생명감과 진한 동질감으로 다가오는 밭곡식 꽃, 그 꽃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다른 어떤 꽃보다도 그늘 한점 없는 오뉴월 땡볕을 잘 이겨내고 당당한 자태를 잃지 않는 꽃은 감자 꽃이었다.
또 꽃의 빛깔은 대부분 하얗거나 자주색을 띄고 있어 흰색과 자주색이 인간에게 주는 생명의 빛이로구나! 하는 깨달음까지 얻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감자가 뿌리 번식을 하기 때문에 줄기번식을 하는 고구마처럼 꽃이 피고 진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특히 꽃이 수수하면서도 들여다보면 볼수록 정감이 넘쳐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하지만 농촌 사람들은 그 꽃을 들여다보며 음미해 보는 그런 사치(?)를 좀처럼 부릴 줄 모른다.
감자에 얽힌 말들을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들을 수 있다. 실없는 행동을 했을 때 흔히 "감자 같은 놈"이라거나 "옛기 감자!"라고 표현함으로써 상대방을 깔보거나 무시하는 의미로 곧잘 사용되기도 한다.
이렇듯 사람들이 감자를 얕보고 너무 쉽게 대하다 보면 언젠가는 뜨거운 감자를 만나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으므로 사랑하는 <오마이뉴스> 독자여러분들께서는 이 점 유의하시기 바란다.
나의 기사 소재의 대부분은 어머니로부터 비롯된 것들이 많다. 이 기사 또한 지난 일요일(5월29일) 시골집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갔다가 우연치 않게 순간 포착한 것들이다.
점심을 보쌈으로 먹을까하여 어머니와 함께 뒤 안 텃밭으로 나가 상추를 뜯다가 옆 밭이랑에서 오뉴월 땡볕을 당차게 견디며 함초롬히 피어있는 생명감 넘치는 감자 꽃에 홀려 쪼그리고 앉아 한 참을 들여다보면서 나도 모르게 탄성인지 탄식인지 모르는 소리를 내지른 모양인데, 지나가다 이런 내 모습을 지켜 본 옆집 아제가 울타리 너머로 "달켄네! 그만 좀 보소마" 하는 외마디 소리에 깜짝 놀라 벌러덩 엉덩이에 흙을 묻히고 말았다.
어머니!
이 아름다운 생명의 빛을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