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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7일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면에 실린 '제발 인사 좀 하고 살자'란 제목의 글을 읽으면서 줄곧 우리집 아들놈 생각을 했다.

녀석은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이다. 이젠 좀 컸다고 어딜 가면 그곳이 인사해야 될 자린지 아닌지 알아서 고개를 숙인다. 그래도 썩 내켜서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친척들이 모여 인사하는 분위기가 되면 눈은 고정된 채 고개만 잠깐 아래로 움직이는 모양새가 머리만 스윽 내밀다 쏙 들어가는 자라목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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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인사 좀 하고 살자

그런 녀석이 학교 들어가기 전, 놀이방과 어린이집에서 선생님과 친구들하고 인사하며 어울려 지낸 걸 생각하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안녕하세요? 저는 문00입니다! 어머니는 지금 안 계신데 오시면 누구시라고 전해드릴까요?"

예전에 어떤 집에 전화를 했는데 아들 또래인 듯한 그쪽 애가 깍듯이 인사를 하는 바람에 오히려 내 쪽에서 어리둥절했던 적이 있었다. 반듯한 인사도 그렇지만 '어머니'라는 호칭이 왜 그리 낯설고 근질거리던지 나는 솔직히 좀 놀랐다.

"어쩜, 아이가 인사를 너무 잘 하네요?"
나중에 그 집 엄마와 얘기를 하면서 나는 어떻게 아이를 그렇게 예의바른 아이로 교육(?) 시켰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다. 누굴 봐도 데면데면하고 데설궂은 아들 녀석에겐 도무지 기대할 수 없는 인사였다. 그러기는커녕 어디서 전화가 와도 인사하기가 싫어 아예 받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녀석을 생각하면 그 부러움은 더 했다. 친척들은 그나마 아이의 그런 성정을 알고 있어서 이해를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게 아니었다.

동네를 걷다가 나이 지긋한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만나도 녀석이 그냥 맨숭맨숭 지나칠 때면 내 뒷머리가 먼저 띵했다. 녀석은 인사성이 없는데다가 부끄럼을 많이 타고 숫기도 없어서 그 일로 가끔 내속을 뒤집곤 했다.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동서네 아이와 아들 녀석은 같은 나이로 유년부였다. 누구에게나 붙임성이 있고 예의바른 동서네 딸애는 인사도 똑 부러질 듯 야무지게 했다. 그 애의 인사를 받으면, 누구나 어떻게 그렇게 인사를 잘할꼬! 하는 흐뭇한 얼굴이 되었다.

인사 한번 잘 해서 사람들에게 귀염 받고 사랑받는 조카애 옆에는, 누가 먼저 아는 체를 해도 멋쩍어서 씩 웃고 마는 아들 녀석이 있었다. 묻는 말에 대답도 잘 하지 않고 자기가 별로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친절하게 대하거나 말을 붙이면 오히려 기분나빠하는 이상한(?)녀석이었다.

유년부를 맡은 주일학교 선생도 녀석의 그런 점을 미리 아는 터라 인사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새로 유년부장을 맡은 분이 어느 날, 동서와 내가 같이 있는 곳에 오더니 말하는 것이다.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세요?"
유년부장이 다정하게 웃으며 동서쪽을 바라보자 동서의 표정은 자랑스러움으로 가득 찼다. 그분은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자기 하는 말이 그렇지 않느냐는 은근한 동의를 구하는 표정을 지었다.

유년부장의 말이 동서에게는 '애들 교육을 어떻게 하면 그리 모범적으로 잘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겠지만 나에게는 그 반대로 들렸다. 인사 하는 것 한 가지로 아이교육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 같은 말에 할 말이 없었지만 아들 녀석을 떠올리며 나는 그 자리가 불편했다.

녀석이 2학년이던 때, 우리는 구리에서 살았다. 학교가 끝나면 버스정거장에서 집에까지 걸어오는 시간을 얼추 짐작하며 이따금씩 녀석을 마중 나가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아무리 기다려도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올 시간이 훨씬 지나서 할 수 없이 집으로 되돌아가는데 녀석은 가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저만치 가고 있었다. 빠른 길 나두고 왜 돌아서 가느냐고 했더니 녀석 왈, "00아저씨 보면 인사해야 되는데 하기 싫어서 그래."

정말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이웃어른을 만나면 인사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기는 해서 아는 것과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녀석이 오히려 안쓰러웠다.

요즘은 어쩌다 할머니나 외할머니한테 전화가 오면 옆에서 녀석이 어떻게 인사를 하나 귀가 솔깃해진다.
"안녕,하,세……."
여기까지다. '안녕'이란 말도 다 들리지 않고 '안녀…'까지만 들리거나 '안녀하세…'로 인사는 끝이다. 단음절, 단답형의 네? 아니오! 이 말이 반복되다가 결국은 나를 부르지만, 이만큼 오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녀석은 좋아하는 사람이나 저를 이해하는 사람이 오면 녀석 스스로 기꺼이 인사를 한다. 입은 두 귀에 걸리고 눈은 다정함으로 빛나면서. 한때는 녀석의 입에서 인사가 터지길 기대하고, 데리고 다니면서 내가 먼저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인사를 했던 적도 있었다.

인사는 '엄마처럼 이렇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아주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그 다음부터 녀석의 태도가 싹 바뀌었다. 그리고 내가 들었던 한마디.
"나 이제 엄마랑 같이 안다녀!"

처음엔 내가 아들 녀석을 잘 못 키우는 건가 걱정도 많이 했다. 지금은 아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다르고 성품이 다르듯 표현하는 방법도 다 각각인 것을 받아들이니 녀석의 인사하는 태도에 예민했던 신경이 누그러졌다.

그 대신 내가 발견한 것은 녀석이 '권위'있는 어른을 알아본다는 것이었다. 그 권위라는 게 어깨에 힘주고 어른인 체 하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포용하는 권위이다. 아이들은 열려진 마음과 눈으로 바라보고 '사랑의 권위'를 품고 있는 어른을 기가 막히게 알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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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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