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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근
하지만 모든 책이 그렇게 다가오지는 않죠. 읽기 어려운 책도 있고 재미없는 책도 있습니다. 가끔 실망하는 경우도 있구요. 그런데 나는 이번에 참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너무나 비슷한 분의 책을 만난 것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글쓴이와 독자가 서로 상통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 분처럼 딱 맞는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분은 바로 '이오덕 선생님'입니다. 교육자이며 아동문학가이고, 우리말 바로쓰기에 헌신한 아동문화 운동가입니다. 그 분이 쓰신 <거꾸로 사는 재미>를 읽다가 생각이 일체화되는 새뜻한 경험을 했습니다. 물론 나의 생각들은 이오덕 선생님이 지닌 깊은 사상의 끝자락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감히 내 생각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지요. 선생님은 자신의 사상을 펼치기 위해 평생을 매진하셨지만 나는 이제야 그런 생각에 싹이 틔는 단계니까요.

하지만 선생님이 책에 남긴 여러 사장의 편린들은 미숙한 내 생각의 색깔과 너무나 닮아 있었습니다. 놀랍기도 하고 조금 흥분도 되었습니다. 잘 알고 지낸 친우를 만난 것처럼 반갑기도 했구요. 내가 가진 허술한 생각과 달리 단순하면서도 깊은 향이 배어나오는 이오덕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스승을 만난 것처럼 기뻤습니다.

ⓒ 배우근
신발에 흙 묻힐 기회가 없는 도시생활의 안락함에 물들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꽉 짜여진 도시가 마치 콘크리트로 만든 감옥같고 철창없는 동물원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스팔트에 덮여 사라진 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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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서 태어나 흙에서 자란 풀과 열매를 먹고 흙을 밟고 살다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찌 인간만의 운명이랴? 모든 동물과 곤충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까지 흙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이다. 흙은 생명의 근원이요, 고향이다. 배를 타고 다니는 것이 직업으로 되어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하늘에 계속 떠 있는 시간이 바다에 떠 있는 시간에 비교가 안 될 만큼 짧다고 하더라도 땅 위에 내려와 흙을 밟고서야 비로소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에 돌아왔다는 안도의 느낌을 가질 것이다." (흙. 1975년 봄)

이오덕 선생님은 흙과 바위, 그리고 나무가 항상 그 자리에서 넉넉한 마음으로 사람을 아우르는 '산'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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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생겨난 곳은 산이라 한다. 물을 마시고 사는 물고기가 아닌 이상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산에서 나무 열매를 따먹고 살다가 농사를 짓게 됨에 따라 들로 내려온 것이다. 우리가 높은 산을 쳐다볼 때 그 산의 모습에 감탄하고, 본능적으로 오르기도 하는 것은 모두 인간 본연의 생명의 발동인 것 같다. 산, 그것은 자연이 낳은 예술품 중에서 가장 자연다운 것, 그리하여 가장 위대한 걸작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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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를 이고 기이하게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산, 파도 같은 곡선을 겹겹이 그려 놓은 산, 먼 들판 저편 하늘 끝에 점점이 그리운 마음처럼 이어간 산, 저무는 들판 저쪽에서 성자같은 모습으로 다가오는 보랏빛 산, 온통 붉은 꽃으로 물들인 봄의 산, 신록에 덮여 하늘과 땅을 찬미하는 5월의 산, 단풍 든 잡목들이 그 마지막 생명을 장식하는 가을의 산, 백두(白頭), 표향(妙香), 속리(俗離), 설악(雪嶽), 일월(日月), 태백(太白), 한라(漢拏)… 어쩌면 이름도 그처럼 아름다운가!"

"만고의 적설에 덮여 눈부시게 솟아 있는 몇천 미터의 높은 산에서부터, 아이들이 즐겨 뛰어오르는 나지막한 언덕 산에 이르기까지 산은 항상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바다가 아무리 하늘을 닮아 그 색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고 해도, 그 모양이 아무리 구름을 흉내내어 끊임없이 움직인다 해도 온갖 초목들이 사철 옷을 갈아입는 산에 비하면 너무나 단조롭다. 물고기가 아니어서 두 다리만으로 뛰어 들어가 살 수 없는 바다는 우리 인간에게 여전히 거리가 먼 세계다."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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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올라가면 다시 내려와야 하는데 왜 올라가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죠. 하지만 요즘 '산'을 오르기 시작하며 '산'이 우리에게 가지는 커다란 의미를 조금씩 느끼고 있답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산은 자연이 낳은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이며 걸작이었습니다. 시간과 계절별로 아름답게 옷을 갈아입는 산의 자태는 그 어떤 예술가도 근접하기 힘든 아름다움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산은 참 넉넉합니다. 남녀노소, 잘나고 못난 사람이든 누가 다가가도 길을 열어 주며 푸른 하늘에 가까이 다가가 해 준 답니다.

그렇습니다. 산은 하늘과 맞닿아 있습니다. 하늘은 날개를 가지지 못한 인간에게 항상 동경의 대상이었죠. 넓고 푸른 하늘은 사람의 작은 가슴에 큰 꿈을 심어주었고, 자유롭게 흘러가는 구름은 땅에 붙어사는 인간에게 자유를 알려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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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 엎드려 무엇을 하다가 문득 바깥을 바라보고 놀란다. 아, 하늘! 저렇게 아름다운 하늘! 내가 장님이 아니라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삶이 슬퍼도 좋다. 절망, 절망의 연속이라도 좋다. 하늘을 쳐다보는 자유가 있는 한, 우리의 심장은 영원히 싱싱하게 뛰고 있으리라.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화가들이 저 하늘의 아름다움을 그려보려 하였던가?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저 하늘에 공상의 나래를 펼쳤던가? 얼마나 많은 과학자들이 하늘을 쳐다보고 우주의 비밀을 캐어내려 하였던가?"

"오, 하늘! 우리의 영혼은 당신을 닮아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빛이 변하는 호수의 물이올시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람들은 하늘을 쳐다 볼 줄 모르고 하늘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 도시에서는 이미 별과 달이 떠 있는 낭만의 밤하늘은 전설이 되어 버렸다. 어지러운 전등불빛이 낭만의 하늘을 말살해 버린 것이다. 낮이면 하늘이 머리 위에 있는데도 쳐다볼 여유가 없이 살아가고 있다. 더욱 비참한 것은 쳐다볼 하늘이 없는 사람들이다. 시끄러운 기계소리 속에서 온종일 긴장하면서 손발을 움직이고 있어야 겨우 세끼의 밥을 먹을 수 있는 공장의 직공들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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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작은 새의 울음이 하늘에 울려 퍼지듯이, 한 방울의 물이 떨어져 다시 하늘을 돌듯이, 내가 죽으면 우주 속에 돌아갈 것이다. 그것은 분명 즐거운 귀향이다. 그렇다면 하늘과 땅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의 모습이요, 입김이요, 표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곳에 가만히 있는 듯하지만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항시 움직여 흘러가고 정처 없이 어디로 사라지고 있다. 구름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모습인 것이다." (하늘. 1973년)


나는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들에 대한 글을 쓰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었습니다. 항상 우리 주변에 있지만 잊고 사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너무나 순박해 인간이 자행하는 악행에 묵묵히 당하고만 있는 그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공기와 물처럼 항상 같이 있지만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하늘과, 산, 흙, 나무, 돌…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오덕 선생님이 이미 말씀을 남겨 놓으셨더군요. 연약한 나의 생각보다 훨씬 강한 색깔로 그림을 그려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그러면서, 자연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무자비하게 난도질 하는 인간에 대한 불신도 표현하였습니다. 인간이 결국에 돌아가야 하는 자신의 자궁과도 같은 자연에 대한 무자비한 개발에 많은 실망감을 보였습니다.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시선은 결코 곱지 않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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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인간이 달나라에 갔다. 그러나 너무 우쭐거릴 건 없다. 원자탄, 수소탄, 대륙간 탄도탄, 그밖에 온갖 세균무기를 만들어내고 남의 나라를 침략하여 제 속만 채우고 있는 불길한 존재다. 달나라고 별나라고 무슨 소용이 있는가? 거기 가서도 여전히 서로 잡아먹고 또 다시 세계를 더럽힐 것이 뻔하다."

"돈과 권력과 완력이면 제일이라는 인식이 골수에 박혀 있다. 어떻게 해서라도 남을 밀어내고 먼저 들어가야만 산다. 이런 세상을 참 잘도 표현한 유행어가 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어떤 전쟁이든지 그것을 일으키는 것은 나이 많은 교활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싸움터에 끌려가 죽음을 당할 염려가 없다. 수많은 젊은이들을 희생시키고, 그들이 흘린 피로 살찌고 오래 산다."

"풀을 먹고 열매를 먹는 동물은 그 성품이 착하지만 피와 고기를 즐기는 동물은 그 발톱과 이빨이 날카롭게 생기고 영악해서 착한 짐승들을 잡아먹는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인간은 결국 이런 짐승의 자리를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 아닌가. 아니 짐승 중에서도 가장 흉악한 존재일 것 같다." (인간에 대하여. 1970년)

"땅을 불모의 쓰레기더미로 만드는 문명은 무서운 속도로 모든 농촌과 산간벽지를 덮쳐가고 있다. 산천이 초목들의 뿌리가 내릴 수 없는 폐기물로 덮여간다고 말했지만 아이들이 뛰노는 학교의 운동장도 쓰레기로 채워져 가고 있다. 고양이는 땅을 발로 파서 똥을 누고는 묻어 버린다. 돼지도 아무 데나 똥을 누지는 않는다. 우리 한쪽 구석에 누는 것이다. 그 똥들은 흙으로 돌아간다. 동물들은 아무것도 땅에 남기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이 먹는 음식의 포장물을 어디에 어떻게 처리할 계획도 생각도 없이 함부로 만들어 내기만 한다." (과자를 먹는 아이들. 1982년 11월)


그렇습니다. 인간은 동물 중에서 가장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지고서 같은 종인 사람을 스스럼없이 죽이는 무서운 동물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살해와 전쟁과 같은 만행을 거리낌 없이 실행하는 악마의 자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오덕 선생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교육과 환경을 싫어했지 인간을 싫어하지는 않았습니다. 단 1%의 희망만 있어도 푸른 싹을 틔우기 위해 교육자로서 아동문학가로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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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에 참석한 선생님은 관을 묻기 위해 파놓은 구덩이가 여섯 자 길이에 두 자 넓이, 결국 인간이 마지막에 차지할 땅은 불과 한 평도 되지 않음을 보시고, 돈과 편리한 생활을 멀리한 채 평생 가난을 실천하며 순수한 어린이들의 모습에 희망을 걸었습니다. 경쟁에서 탈락하는 꼴찌를 위한 교육을 했고, 획일적 지도방법을 지양하며 자유와 창조의 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뱀과 호랑이까지 이해하는 동심을 느끼고 교육자로서 어린 그들을 지키고 가꿔 주기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아이들과 함께 보냈지만, 책의 끝부분에서 선생님은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교단에서 교육이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하게 했고, 아이들을 꼭두각시로 훈련시킨 교관이었으며, 돈을 징수하는 세금장이였으며,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획일화의 몽둥이를 휘둘러 똑같은 형태로 맞추어온 폭군이었고, 경쟁을 강요한 깡패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낮추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죄인으로 봐달라고 하며, 그 죄를 조금이라도 씻기 위해 있는 힘을 다 할 것이라 선생님은 다짐하며 책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경제개발로 인한 자연파괴와 경쟁으로 인해 인간성이 말소되는 상황에서 느낀 선생님의 안타까움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선생님이 참 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이제 가고 안 계시지만 당신의 고결한 뜻이 세상에 넓게 넓게 퍼지기를 기원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홈페이지 www.seventh-haven.com (일곱번째 안식처..랍니다)


거꾸로 사는 재미

이오덕 지음, 산처럼(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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