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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유치원에 다니는 장세린. 요즘 유치원에서 누에를 키우는 데 누에가 귀엽다면서 집에 가져온다고 하네요. 난 징그럽던데.
즐거운 유치원에 다니는 장세린. 요즘 유치원에서 누에를 키우는 데 누에가 귀엽다면서 집에 가져온다고 하네요. 난 징그럽던데. ⓒ 장희용
요즘 눈병이 걸려 3일째 회사도 출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참 눈병이라는 놈 고약하대요. 첫날은 쓰린 것이 굉장히 아프더라구요. 그 다음 날부터는 간지럽기도 하고, 자꾸만 끈적끈적 눈물 같은 것이 나오기도 하고, 티끌이 들어간 것처럼 꺼끌거리고, 잘 보이지도 않고…. 아무튼 '좋겠다'는 회사 동료들의 부러움(?) 속에서 저는 사회와 격리된 채 집에서 낫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오전에 안과 갔다 오고 점심 먹고,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가슴 한 켠으로 밀어냈던 상념들을 불러와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방 안 창문 너머로 본 하늘이 심상치가 않네요. 거실에서 아들과 놀고 있던 아내에게 묻습니다.

"오늘 비 온다고 했대?"
"응. 오후부터 온다고 하던데.”
"세린이 우산 가지고 갔대?"
"아니."
"그럼 이따 유치원에서 올 때 어떡해?"
"우산 가지고 나가면 되지."


순간 TV에서 본 것처럼 제가 딸 아이 마중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내한테 몇 시에 오냐고 물으면서 제가 마중나간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약간은 의아한 표정을 짓더만, 괜찮겠냐면서 정말 나가겠냐고 묻더군요. 그런 아내가 저는 오히려 더 이상했습니다. 아빠가 유치원 차에서 내리는 딸 데리러 가는 게 뭐 이상하다고 저러나 싶었죠. 하지만 아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마중 나가서야 알았습니다.

일단은 그 이야기는 좀 뒤에 하기로 하고요. 딸 아이 올 시간이 됐는데 천둥번개, 바람 몰아치면서 비가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큰 우산 하나, 작은 우산 하나, 세린이 우비를 챙겨 가지고 나갔습니다. 아내는 올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며 옷 젖지 말고 조금 있다 나가라고 했지만 비바람 때문에 마음이 급해서인지 듣는 둥 마는 둥 엘리베이터로 향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막 제가 살고 있는 동 앞을 나서려고 하는데 아내가 창문을 열고 8층에서 소리칩니다.

"그런데 자기 세린이 유치원 차 어디서 내리는 줄 알어?"
"길 건너 아닌가?"
"아니야. 거긴 아침에 타는 곳이고, 501동이야"
"501동. 알았어."


501동 앞에 섰습니다. 유치원 차가 하나둘 아파트 앞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우산을 건네주는 엄마와 조잘대는 아이들을 보면서 엄마가 아닌 아빠가 마중을 나온 것에 대한 딸의 표정을 생각합니다. '이그, 귀여운 놈. 깜짝 놀랄 거야!' 전 잠깐이나마 놀랄 딸을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봅니다.

비바람에 바지가 다 젖기는 했지만 딸 표정을 생각하니 그저 즐겁기만 합니다. 이쯤이면 올 것도 같은데, 좀 늦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가 와서 좀 늦나보다 하면서 501동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다른 유치원 차들은 계속해서 오는데, 우리 아이가 탄 차는 오지 않습니다. 휴대폰도 집에 놓고 와서 몇 시인지 알 수도 없고,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하네요. 좀 일찍 나왔으니까 그럴 거야 생각하다가, 하늘에서 치는 번개처럼 갑자기 번쩍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으니….

"근데 여기서 내리는 것 맞나?"

문득 든 생각이었지만, 한 번 그 생각이 들자 자꾸만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501동 앞에서 기다리는 엄마들의 모습이 안 보인다는 사실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옵니다. 순간 불안감이 확 밀려오대요. 천둥번개에 비바람 몰아치는데 혹시나 딸아이가 비를 맞으면 어떡하나,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아 무서워서 울면 어떡하나 해서요.

불안한 마음에 당연하게 생각됐던 501동에 대한 생각이 갑자기 뒤죽박죽입니다. '아까 분명히 501동이라고 했지. 501동이면 당연히 501동 앞을 말하는 거겠지? 가만 가만, 여기는 아파트 진입로라 차가 많이 다니니까까 위험하게 아이들을 여기에 내려 줄 것 같지는 않고, 그럼 아까 501동이라는 말이 501동 앞이 아니라는 건가?'

혹시나 해서 얼른 501동 뒤편으로 뛰어갔습니다. 주차장으로만 쓰이고 있는 곳이라 직감적으로 여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혹시 큰 길가인가?' 501동이 아파트 입구에 있다 보니 혹시 큰 길가를 아내가 501동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 그쪽으로 가 볼려고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 아이 유치원 차가 막 지나가는 게 보였습니다.

'으이그, 501동이라고 알려주면 어떡해. 아파트 입구라고 해야지' 아내를 원망(사실은 원망보다 강도가 조금 셌음)하며 아파트 입구 쪽으로 마구 뛰었습니다. 막 유치원 차가 지나갔으니 아이가 비 맞고 있을까봐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거기서 내려 준 게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코스였나 봅니다. 아이들이 눈에 띄었을텐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 그럼 어디야? 이 사람은 똑바로 알려줘야지. 그나저나 어떡하지?'

집에 갔다가 오자니 그 사이에 딸이 올 것만 같고, 어디서 내리는지 모르니 갑갑하고…. 아내한테 짜증 반, 아이 걱정 반으로 어떡해야 할 줄 모른 채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슈퍼 아저씨가 거기서 뭐하냐면서 말을 붙입니다. 딸 아이 기다린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저는 전화 한 통 쓸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내한테 정확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은 겁니다.

"똑바로 알려줘야 될 거 아냐. 세린이 내리는 데가 501동 맞아? 501동 어딘데? 안 오잖아!"

아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화를 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분명히 501동, 그리고 501동 앞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애가 아직 안 온다면서 진짜 501동 맞냐고, 혹시 비 오는 날에는 비 안 맞는 다른 곳에 내려주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아내는 분명히 501동 앞이라면서 다시 가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직 시간이 5분 가량 남았다는 말과 함께...

저는 501동 앞이고 뭐고, 혹시나 딸아이를 못 만날까봐 아직 시간이 남았다니 아내한테 마중을 나가라고 할 심산으로 제가 살고 있는 동으로 막 뛰어갔습니다. 그런데 저 앞에서 걸어오시는 한 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딸아이와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바로 옆집에 사는 엄마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순간 '이 곳이 맞구나!'하는 확신이 들자 그때서야 마음이 '휴우~'하고 안도가 됩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몇 분 후에 있을 딸아이와의 상봉을 생각하며 또 다시 흐뭇한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차가 어느 방향에서 오나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지네요. 차가 온다는 걸 알았죠. 드디어 우리 딸아이 탄 차가 모퉁이를 돌아옵니다. 혹시나 딸아이가 보일려나 고개 쭈욱 내밀고 봤지만 잘 안보이네요. 차가 멈췄습니다. 저는 차가 서자마자 차 출입문 맨 앞으로 나갔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 망신. 저는 아이들이 그냥 우르르 내리는 줄 알고 딸 아이 비 안 맞게 할려고 맨 앞으로 나간건대, 그게 그러니까 유치원 선생님이 부르는 순서대로 아이들이 내리더라구요. 그때서야 뒤돌아보니 다른 엄마들은 일렬로 서 있는데 저만 혼자 대열에서 이탈해 앞쪽에 서 있었습니다.

엄마들이 다 저만 쳐다보대요. 극성스러운 아빠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여서 얼굴이 '화끈화끈', 더군다나 다들 엄마들인데 나만 아빠라는 생각이 그때서야 갑자기 들면서 또 다시 얼굴이 '화끈 화끈',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손으로 입 가리고 웃고 있는 옆집 엄마와 시선 부딪히자 또 다시 얼굴이 '화끈 화끈'.

더 결정적인 것은 아이들이 차에서 내렸는데도 엄마들이 집으로 가질 않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창피해 죽겠는데 엄마들이 집으로 안 가고 쭈욱 서 계시니, 거기에다 제 딸아이가 제일 늦게 내리고 보니 그 짧은 시간 동안 머쓱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차에서 내리자마자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다 내리고 나면 다함께 '안녕히 가십시오'하고 인사를 하대요. 처음 알았습니다. 하긴 생전 처음으로 딸아이 유치원 마중 나간 것이니 처음 알 수밖에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딸아이를 기다리고, 둘이서 우산 쓰고 집으로 오는 동안 우리 딸과 더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우리 딸, 엘리베이터 문 열리고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엄마한테 말합니다. "오늘은 아빠랑 잘 거야!" 참고로 우리 딸은 그날 그날 자기하고 친했던 사람하고 잠을 잔답니다. 에구, 우리 딸 기특한지고….

덧붙이는 글 | 제 딸아이가 맨 마지막으로 내렸는데, 저를 보고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아빠아~"하고 아주 큰 목소리로 저를 불렀답니다. 엄마들이 다 쳐다보는 바람에 조금 부끄럽긴 했지만 했지만 그렇게 크게 불러주니까 기분은 진짜 좋더라구요. 다른 아빠들도 시간 되면 한번 아이들 유치원 마중 나가보세요. 새로운 사랑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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