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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 무성한 감자밭에 하얗게 피어있는 감자꽃
초록이 무성한 감자밭에 하얗게 피어있는 감자꽃 ⓒ 김정혜
오후나절. 지천으로 피어난 감자 꽃에 넋이 빠져 따가운 봄 햇살도 아랑곳하지 않고 꽃구경에 넋이 빠져 있었다.

“복희 엄마. 뭐해? 봄볕에 얼굴 다 태우려고….”
“아, 네. 아줌마. 감자 꽃구경하고 있어요. 그런데 감자 꽃이 이렇게 예쁜지 미처 몰랐어요.”
“감자 꽃? 그래 예쁘지. 감자가 보약이니 꽃도 당연히 예뻐야 하지 않겠어?”
“보약이요? 감자가 그렇게 좋아요?”
“그럼. 감자가 얼마나 몸에 좋은데, 암 보약이지 보약이고말고.”

어디에 어떻게 좋은지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이웃아주머니는 얄밉게도 조각웃음 한 조각만을 남기시곤, 상추밭에 얼른 가봐야 한다며 종종걸음으로 내 곁에서 멀어져 가셨다.

수줍은 새색시를 닮은 듯한 하얀 감자꽃
수줍은 새색시를 닮은 듯한 하얀 감자꽃 ⓒ 김정혜
문득. 작년 여름이 늦은 봄 햇살을 비집고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한낮 내내 이글거리는 태양으로 뜨겁게 달구어진 시골동네를 저녁해거름이 식히고 있을 때쯤. 아주머니는 큰 박스 하나를 낑낑거리며 무겁게 들고 오셔서는 우리 집 마당에다 내려 놓으셨다.

그건 감자였다. 금방 밭에서 캤는지 감자에 묻은 흙의 보드랍고 촉촉한 느낌이 그대로 손끝으로 전해졌다.
“아줌마. 웬 감자예요?”
“응. 이거 친정아버지 좀 드려봐. 찌지 말고 그냥 생으로 갈아서 하루에 두 번씩만 드려 봐. 아마 친정아버지한텐 좋은 약이 될 거야. 이 감자가 원래 보약 중에 보약이거든. 내가 잘은 모르는데 하여튼 감자를 생으로 갈아서 먹으면 몸에 그러게 좋다네. 친정아버지 편찮으신 거 알면서도 뭐 하나 대접해 드릴 건 없고, 마침 오늘 감자를 캐다가 복희 외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무슨 말로 어떻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그저 입안에서만 맴도는 고맙다는 말은 아주머니의 정에 비기기란 너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내 마음을 다 표현해줄 감사의 말을 고르고 또 고르는 그 잠깐 사이.

흙 묻은 손으로 이마를 한번 쓰윽 문질러 대롱대롱 매달린 땀방울을 털어 내신 아주머니는
내 입에서 그 어떤 말이라도 들으면 큰일 날것처럼 쏜살같이 사라져 버리고 마셨다.

연보라색과 흰색과 노란색이 곱게 어우러진 감자꽃
연보라색과 흰색과 노란색이 곱게 어우러진 감자꽃 ⓒ 김정혜
기껏해야 다섯 손가락을 구부린대도 자투리가 남는 시간에, 이미 나는 아주머니의 정겨운 이웃이 되었다는 감격에 멍하니 아주머니가 사라져간 곳을 바라보다 어느 사이 박스가득 철철 넘쳐나는 감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찌나 촘촘하게 담으셨는지 박스 속은 빈 틈 하나 보이지 않았고, 한 개라도 더 담으시려 했음인지 수북하게 쌓인 감자들이 박스 밖으로 금방이라도 튕겨 나올 듯 했다. 거기다가 굳이 이웃의 정이 이렇게 크다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건만 감자는 어른 주먹보다 더 큰 모습을 하고 그 큰 이웃의 정을 새삼 인식시켜 주고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당장에 감자를 갈아서 아버지께 드렸다. 금방 캔 감자라선지 칼로 깎을 필요도 없이 그저 살짝만 문질러도 껍질이 벗겨졌고, 그렇게 껍질이 벗겨진 감자의 속살은 반질반질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아기의 볼 살만큼이나 예뻤다.

강판위에 올려놓고 쓱쓱 문질렀다. 갈다 남은 눈곱만한 조각마저도 아까워 끝내는 으깨기까지 했다. 그릇에 받혀진 감자 즙을 한참 놔두니 앙금은 가라앉고 위에는 불그스름한 물이 고였는데, 아주머니 말씀에 따라 위에 고인 물은 부어내고 밑에 가라앉은 앙금에 꿀을 한 스푼타서 아버지께 드렸다. 아버지는 그 생감자 갈은 것을 여름내 아니 초가을까지 아침저녁으로 꼬박꼬박 드셨다.

둘이 함께 있어 정다워 보이는 감자꽃
둘이 함께 있어 정다워 보이는 감자꽃 ⓒ 김정혜
그래서일까. 장장 9시간에 걸친 대수술인 뇌수술을 하시고도 보약한제 아니, 그 흔한 영양제 한통 드시지 않으셨건만, 기력한번 떨어지는 일없이 늘 정정하셨고, 그 혹독한 추위에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거뜬하게 겨울을 나셨다.

지금도 매끼 고기반찬도 아니건만 그저 김치 한가지로도 밥 한 그릇을 거뜬히 비우신다. 또 의사선생님 말씀처럼 뇌수술 환자가 별다른 후유증 하나 없이 그렇게 단시간에 잃어버린 기억을 대찾고 기력을 회복하는 기적 같은 경과를 보이기도 하셨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기적 같은 소생이 꼭 그 감자 때문만은 물론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웃의 깊고 두터운 정과 보약 같은 감자가 아마도 단단히 한몫을 한 것만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봄 햇살아래 환하게 웃고 있는 감자꽃
봄 햇살아래 환하게 웃고 있는 감자꽃 ⓒ 김정혜
오늘 생각난 김에 감자에 대하여 조금 알아보았더니 정말 감자는 보약중의 보약에 틀림이 없었다. 감자는 장수식품으로 감자에 들어있는 비타민 C의 작용으로 빈혈을 예방하고, 감자에 많이 함유된 칼륨과 식이성섬유의 작용으로 성인병을 예방하며, 알칼리성 저칼로리 건강식품으로 다이어트에 가장 우수한 식품이며, 감자의 탄수화물은 밥이나 고구마보다 낮고 소화는 서서히 진행돼, 쌀밥처럼 혈당치의 급상승이 일어나지 않고 또한 비타민 C가 부족할 때 인슐린 생산이 감소하므로 당뇨병 환자의 주식으로 가장 이상적인 식품이라고 한다.

또 감자에 포함되어 있는 비타민은 노인 치매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고, 코린 메치오닌 등의 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 ‘음주 시 감자안주가 애주가에게는 필수적이다’라고도 하고, ‘음주 후 다음날 아침 감자국은 술 해독에 탁월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도 한다.

또 감자는 먹는 것뿐만이 아니라 가벼운 화상이나 타박상 통풍으로 부운 데에 갈아서 헝겊에 발라 부치기도 하는데 그건 감자에 열을 내리게 하는 작용과 피막을 보호하는 작용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밖에도 감자의 효능은 이제껏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을 초월하여 정말 무궁무진 하였다.이렇듯 감자의 효능은 식용으로 또 습포제로 정말 훌륭한 효능을 발휘하고 있는 식품이었다.

오늘 감자에 대하여 이렇듯 정확히 짚어보고 나니 아주머니의 그 고운정이 살갑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손수 심고 기르고 수확하여 깊고 따뜻하고 고운 이웃의 정으로 주셨으니 그것을 드신 아버지께서 어찌 거뜬하게 기력을 회복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싶다.

오늘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운 하루인가 싶다. 감자에 대하여 또 이웃에 대하여 또 정에 대하여. 하지만 무엇보다 값지게 배운 건 이 세상엔 이웃의 고운 정 한 자락도 정녕 만병통치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늦은 봄밤. 이 시간에도 이웃의 고운 정을 닮은 감자들이 앞 다투어 영그는 소리가 땅속에서 정답게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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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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