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 선생 아드님 정우씨가 아버지가 남긴 동시를 모아 <까만 새>라는 책을 엮어서 우편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나는 늘 그 아버지와 아들의 ‘부자유친’을 부러워했습니다. 세상의 누구보다 자식에게 존경받는 아버지 어머니가 성공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플라타너스 그늘에 가서
땅뺏기를 하자.
손바닥으로 곱게 땅을 닦고
동그란 사금파리 조각 하나씩으로
우리 모두 빙 둘러앉아
시원한 점심시간을 보내는 거기
손가락으로 알맞게 겨냥을 해서 퉁기면
나는 한 뼘을 재고
너도 잘 맞추어야지.
흙 묻은 바짓가랑이로 서 있는 아이야,
너도 오너라.
내 땅이 많으면 네 것으로 절반을 나눠주마.
플라타너스 그늘엔 바람이 찾아오고,
쳐다보면 우거진 잎 사이 하늘이 보이고
손바닥만한 하늘이 뚫어져 보이고,
애들아, 배고프면 우리 모두
땅뺏기 놀이 하러 가자.
이 책에 실린 동시 ‘땅뺏기’입니다. 이 시를 읽으니까 문득 시간의 수레를 타고 내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집니다. 그때 우리들은 계집아이 사내아이 없이 학교운동장 미루나무나 플라타너스 그늘에서 땅뺏기 놀이(우리 고향에서는 '땅따먹기 놀이')를 하였습니다. 그 놀이가 지겨우면 사내아이들은 말타기, 제기차기, 자치기 따위를 하고 계집아이들은 고무줄넘기, 공기놀이 따위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놀이도 싫증이 나면 개울에 가서 멱을 감으면서 기나 긴 여름날을 보냈습니다.
지난날의 아이들은 그렇게 자랐습니다. 자연 속에서 흙을 만지며 공부보다 놀이에 더 시간을 보내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놀이들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학교 수업이 끝난 운동장에는 아이들 보기가 힘든 세상으로 변해갔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원 차들이 교문 앞에서 아이들을 싣고 가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제는 그런 아이들조차도 없어서 문을 닫는 학교가 숱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문을 닫은 학교를 심심찮게 봅니다. 그나마 남은 시골학교를 찾으면 전교생이 20~30 명 안팎인 학교가 태반입니다.
그 언제부터인가 사교육비 망국론이 나오고, 이런 교육풍토 때문에 어린 아이 때부터 해외로 나가는 이들이 쏟아져 나와도 우리나라에는 사교육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자연 속에 놓아 기릅시다
내가 사는 산골 마을길에도 하루에 몇 차례씩 무슨, 무슨 학원 승합차가 드나들면서 아이들을 태워가고 데려다 줍니다. 시골아이조차도 자연과 더불어 놀지 않고 흙을 만지지 않는데 도시의 아이들은 말하여 무엇 하겠습니까?
“… 사람이 사람답게 자라나려면 반드시 겪어야 하는 삶이 있는데, 그것은 일하기와 가난과 자연 -세 가지다. 그런데 지금의 교육은 이 세 가지를 싹 쓸어 없앤 자리에 살벌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우고 그 속에 아이들을 가두어 놓고는 책만 읽고 쓰고 외우고 아귀다툼을 하게 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무슨 수로 아이들이 그 목숨을 지키고 가꾸어 가겠는가.
이대로 가면 바로 낭떠러지다. 우리 민족은 말할 것도 없고 온 인류가 머지않아 반드시 망한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지만 사람들이 마치 죽음의 바다로 달려가는 수만 마리의 쥐 떼처럼 미쳐서 뛰어가고 있는 그 앞길이 너무나 훤하게 보인다.…”
이 글은 이오덕 선생님이 필자에게 주신 글 가운데서 뽑아 가다듬은 것입니다. 또 선생님은 “일이 놀이가 되고 공부가 되어야 학생들의 몸과 마음이 싱싱하게 자라나게 되고, 창조하는 힘과 슬기가 한없이 뻗어나게 될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지난해 초 미국에 가서 한 동포 집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생활의 좋은 점을 물었더니, “아이들 교육에 한국과 같은 극성스러운 과외와 사교육비가 들지 않고 아이들을 자연 속에서 길러서 좋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부모들은 내 자식을 잘 가르치겠다고, 남도 보내니까 나도 보낸다고 덩달아 아이들을 학원으로, 공부방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시골마을에, 도시 동네골목에, 학교 운동장에 아이들이 없는 세상은 사람다운 사람을 기르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 이제라도 아이들을 학원에서 사교육에서 풀어줍시다. 아이들을 양계장 닭 기르듯이 교육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사육입니다. 그러면 무서운 세상이 옵니다.
아이들을 대자연의 둑에 놓아기르면서 그들 스스로 생각하며 배우게 합시다.
송아지야,
너는 구름을 보니?
너는 물소리를 듣니?
이리 오너라, 풀을 주마.
아침 이슬에 젖은 푸른 풀잎을
하얀 이빨로 씹어 봐라.
또박또박 조심스레
걸어오는 송아지야,
너는 어제도 하루 종일
어미 따라 밭고랑을 걸어 다녔지?
오너라, 예까지.
네 가느다란 다리를 만져 보자.
…
- 이오덕 ‘송아지’
덧붙이는 글 | 이 책은 1974년에 나온 책을 ‘아리랑나라’ 출판사에서 다시 펴냈습니다.
책값은 6,000원으로 인터넷 누리집 이오덕학교(25duk.cyworld.com)에서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