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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주변 중국집들이 호황을 맞았다.
난데없이 주변 중국집들이 호황을 맞았다. ⓒ 양중모
"어, 중국집 아저씨 또 왔네? 요새 왜 이렇게 자주 오지?"

요즘 서경대학교(서울 성북구 정릉동) 학내에서는 소위 '짱깨(중국집)' 오토바이가 평소보다 눈에 많이 띈다. 이 대학 사람들이 가격이 저렴한 대학 구내 식당을 두고 비싼 돈을 들여 가며 식당 밥을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식당 위생검사해 보니... 덮개 없는 양념통, 곰팡이 핀 무

곰팡이가 핀 곳
곰팡이가 핀 곳 ⓒ KBS
지난 12일 KBS의 <좋은나라 운동본부>의 한 코너인 '황정민의 안전밥상 수호대'에서는 몇몇 대학 구내 식당의 위생 상태를 점검했다. 서울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서울식약청) 직원을 대동해 3개 대학의 식당 위생 검사를 벌였는데 서경대도 그 곳 중 하나였다(실제 방송에서는 학교 이름을 이니셜 처리했다).

문제가 된 곳은 서경대 교직원들이 주로 이용하는 한림관 식당. 음식을 조리하는 곳마다 찌든 때와 음식물 찌꺼기가 발견됐고 양념통은 덮개가 없이 방치돼 있었다. 조리에 쓰이는 식기구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조리대는 종이로 덮여 있는 게 고작이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 사용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 사용 ⓒ KBS
식재료 처리 또한 문제였다. 이 식당에서는 식재료를 위에서 아래의 시멘트 바닥에 굴리는 형태로 운반하고 있었다. 또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와 아직 지나지 않은 재료를 섞어 놓았다. 이중에는 썩어서 해충이 생기고 구멍이 생긴 무까지 적발됐다.

이날 방송에서 한림관 식당은 서울식약청으로부터 '영업정지' 혹은 '과태료 부과'라는 판정을 받았다. 서경대를 제외한 한 군데는 시정 조치를, 다른 한곳은 문제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영업정지' 방송 후에도 대학 식당 영업 계속

여전히 영업 중인 식당.
여전히 영업 중인 식당. ⓒ 양중모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방송 후에도 문제의 구내 식당이 문을 열고 영업을 계속한 것. 비록 학교 이름이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방송에서 자신의 학교임을 알아본 서경대 학생들이 식당 교체 등의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한림관은 교직원 식당이긴 하지만 학생들도 종종 이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림관 식당 관계자는 "영업을 계속해도 법적인 하자가 없다"고 설명했다. 방송상 영업정지와 과태료 등의 판정을 받았지만 아직 관할 기관에서 정식 통보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영업을 중지할 이유가 없다는 것. 또 "방송을 찍어갈 당시에도 방송으로 나간다는 소리도 없었고 2, 3주 후에 식당을 좀 깨끗하게 하라는 얘기만을 전달 받았다. 그렇게 보도될 줄은 몰랐다"고 해명했다.

식당측에서 붙인 사과문
식당측에서 붙인 사과문 ⓒ 양중모
관할 책임이 있는 성북구청 식품위생과에 문의한 결과 "6월 말쯤이나 처벌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식품위생과 관계자는 "식약청에서 관련 자료들이 넘어오긴 했는데,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인 (유통 기한이 지난 식재료 등) 증거 사진이 넘어 오지 않았다. 자료를 받고 이의 제기 등 여러 절차를 거치려면 적어도 보름 이상은 걸린다. 6월 말쯤이나 처벌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방송이 나간 이틀 후에야 식당업자는 '청결과 정직과 봉사 정신으로 식당을 운영'하지 못하고 '불미스러운 사건을 일으켜 죄송하다'는 내용의 간단한 사과문을 한림관 식당 게시판에 게재했다. 이처럼 식당 측이 늑장 사과하자 학생들은 더욱 흥분한 상태다. 서경대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여태까지 먹은 밥값 다물어내욧!" "난 방송 나간 후에도 밥 사먹었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식당업자는 취재 과정에서도 거듭 미안하다는 의사를 밝히긴 했지만 식당 운영에 법적 하자가 없는 만큼 관할 기관의 조치가 떨어지기 전까지 계속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원하는 사람이면 위생 점검 가능하게"

학생들의 분노는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학교 당국으로 번지고 있다. 서경대 총무처는 서경대 홈페이지에 '대학의 명예를 실추 시키고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지 못한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엄중한 상응조치를 취하고 향후 철저한 관리 감독 체계를 갖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학생들은 대학 당국이 좀 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양중모
대학 관계자 A모씨는 "방송이 나가자마자 학교 측이 업체에게 나가줄 것을 요구했으나 업체가 법적인 문제를 들어 거부했다. 또 "실제로 지금은 법적인 하자가 없는 만큼 당장 영업을 정지하라고 할 방법이 없다"며 "이번 7월 말에 계약이 만료되는데, 절대 재계약을 하지 않고 새 업체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학교 당국이 구내 식당에 대한 정기 위생 검사 등 감시를 게을리 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정밀하게 위생 점검을 할 수 있는 것은 식약청 직원 같은 신분의 사람들 뿐"이라며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것에 대해서는 몇 번이고 사과해도 부족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식당 운영에 대해서는 "공개입찰제든 직영제든 앞으로 식당 운영 방식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상태에서 계속 논의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식당업자 선정에 학생이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점검일지제도'를 운영해 학생 등 대학 구성원이 상시 감시할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점검 일지는 학생 등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식당 조리실 등에 들어가 구석구석을 살피며 위생 상태를 점검하게 하는 제도다.

안대영(26·수리정보통계학부) 학생복지위원장은 "공개 입찰제를 도입하는 게 시급하며 거기에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현재 가격, 맛 설문 조사에 의존하고 있는 학생 식당 모니터링 제도도 조리실 등 내부 위생 검사도 가능하게 바꾸는 방안도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영세한 하청업자, 대학 식당에 뭘 바라?

총학생회가 내건 플래카드
총학생회가 내건 플래카드 ⓒ 양중모
대학 구내 식당에 대한 불만은 비단 어느 한 대학의 문제는 아니다. 맛뿐만 아니라 가격, 위생 상태, 서비스에 대한 불만은 늘 있어 왔다. 한 대학식당업자는 "학교 식당에 들어오는 업체들이 아직까지는 자금력이 넉넉하지 않고 경영에도 어려움이 있다 보니 유통 기한이 지난 식재료라도 원가 절감 때문에 쓰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학생들의 참여가 보장된 공개입찰제 등이 시행되고 있다. 학교에서 직접 직원을 고용해 운영하는 직영제가 이상적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 여기에 학교 당국과 학생들의 지속적인 감시와 관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업자 스스로 원칙을 지키려는 자세다. 12일 방송에서 위생 상태가 양호하다는 판정을 받은 대학 식당은 자체적으로 '안전밥상'이라는 제도를 실시 중이었으며 유통기한을 크게 표시하고 원산지 등을 알 수 있게 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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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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