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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 안의 먹이를 홀짝이는 진홍잉꼬새 무리
접시 안의 먹이를 홀짝이는 진홍잉꼬새 무리 ⓒ 정철용

이번 여행에서 건진 뜻밖의 보물

우리가 커럼빈 야생동물원을 거의 다 둘러보고 나오면서 마지막 남은 볼거리인 '진홍잉꼬새 먹이주기(Lorikeet Feeding)'를 거의 기대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나는 이것도 그저 다른 야생동물 쇼처럼, 조련사가 나와서 잉꼬 새들을 불러 먹이를 주고 그러면 새들은 재롱부리는, 평범한 쇼의 하나인 줄로만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이었다. 모든 여행지마다 보물 하나씩은 숨겨져 있는 법인데, 이번 골드 코스트 여행에서 우리가 발견한 뜻밖의 보물은 바로 커럼빈 야생동물원의 이 '진홍잉꼬새 먹이주기'였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것은 몹시도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 시간에, 하루 두 차례씩 벌어지는 '진홍잉꼬새 먹이주기'를 구경하기 위하여 우리가 출입문 안쪽의 넓은 광장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4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둥그렇게 설치해 놓은 철책 바깥쪽에 빽빽이 들어서고 있었고, 주위 나무들에도 깃털 색이 화려한 잉꼬들이 몰려들어 시끄러웠다.

예정된 시간인 오후 4시가 되자, 동물원의 직원 몇 사람이 커다란 은색의 금속통과 주전자와 접시들을 들고 나왔다. 그러자 주위 우거진 나무들에 몰려든 진홍 잉꼬새들의 술렁거림이 더욱 커졌다.

새들이 몰려 들기 전의 나뭇가지와 철골 바람개비는 텅 비어 있다.
새들이 몰려 들기 전의 나뭇가지와 철골 바람개비는 텅 비어 있다. ⓒ 정철용
잠시 후 새들이 몰려들어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화려한 꽃이 피어난 듯 하다.
잠시 후 새들이 몰려들어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화려한 꽃이 피어난 듯 하다. ⓒ 정철용

사람들 접시로 몰려든 잉꼬들

동물원 직원들이 둘러 선 사람들에게 은색 접시들을 나눠주기 시작하자, 딸아이 동윤이도 잽싸게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접시 하나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나서 직원들은 주전자를 들고 다니면서 금속통에서 덜은 쌀뜨물 같은 새의 먹이를 사람들의 접시에다 부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광장 가운데에 설치되어 있는 바람개비 모양의 철골 구조물 두 개에도 새의 먹이를 가득 담은 접시 몇 개를 올려놓았다.

과연 잉꼬들이 날아들 것인가. 사람들의 긴장된 마음은 단 몇 초가 지나기 전에 탄성이 되어 터져 나왔다. 잉꼬 몇 마리가 그 접시들 위에 날아들고, 그 무게 때문에 철골 구조물이 바람개비처럼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옆에 가지만 앙상하게 드러나 있는 나무에도 잉꼬들이 수십 마리 몰려들어 마치 단풍 곱게 든 가을 나뭇잎처럼 보였다. 그 주위 나무들에는 족히 수백 마리가 넘어 보이는 잉꼬들이 앉아 마치 꽃이 핀 것 같고 주변 하늘에도 소식을 듣고 몰려드는 새들로 새까맸다.

눈치만 보고 있던 수백 마리의 그 새들 역시 오래지 않아 광장으로 내려와 앙상한 나뭇가지에, 다시 철골 바람개비에, 그리고 마침내는 사람들이 들고 서 있는 접시 위에까지 날아가 앉았다. 얼굴 가득 웃음을 물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야생의 진홍잉꼬들은 전혀 두려움 없이 접시 위의 먹이를 홀짝였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탄성과 웃음소리. 비록 먹이를 매개로 한 새와 인간과의 만남이었지만, 그 모습은 감동적인 데가 있었다. 천진난만한 자연의 친구였던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수도사의 모습이 저러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동윤이가 서 있는 쪽으로는 어쩐 일인지 좀처럼 잉꼬들이 날아들지 않았다. 동윤이는 부러운 눈으로 반대편 쪽을 쳐다보면서, 자신의 접시에도 잉꼬들이 날아들기를 안타깝게 기다렸다. 그렇게 아무 소득도 없이 벌받는 자세로 30분 정도를 보냈을까. 잉꼬들이 몰려들어 먹이 먹이기에 성공한 한 떼의 사람들이 무리에서 빠져나가자, 참지 못한 동윤이는 마침내 그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새들은 이미 배가 많이 불렀는지 좀처럼 날아들 기미가 안 보였다. 거의 울상이 다 된 동윤이의 얼굴.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아내와 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동윤이에게 그만 가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포기한다면, 딸아이는 새들로부터 버림받은 기억을 평생토록 간직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30분을 기다렸어도 딸아이의 접시에는 새들이 날아와 앉지 않았다.
30분을 기다렸어도 딸아이의 접시에는 새들이 날아와 앉지 않았다. ⓒ 정철용
마침내 날아든 새들의 모습에 딸아이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마침내 날아든 새들의 모습에 딸아이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 정철용
오랜 기다림은 마침내 보답을 받았다. 뒤늦게 찾아온 가슴 부근이 빨간 잉꼬들이 동윤이의 접시에 가득 몰려들었다. 동윤이의 얼굴에 가득 번지는 웃음. 너무나 많이 몰려들어서 그 무게 때문에 접시를 들고 있을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잉꼬들은 사진을 찍어주느라 접시를 들고 있지 않았던 내 머리 위에까지 날아와 앉았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마치 내가 성 프란치스코처럼 착한 사람이라는 보증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뉴질랜드의 새들도 사람들을 별로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기는 해도, 이렇게 내 머리 위에까지 날아와 앉은 새들은 한 마리도 없었던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카페 안에까지 들어와 접시를 쪼는 참새들과 먹을 것을 좀 던져달라고 빤히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는 갈매기들도 야생의 본능은 남아 있어 늘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렇게 사람이 들고 있는 접시 위에 날아들어 아무 두려움 없이 먹이를 홀짝이고, 사람의 머리와 어깨에까지 날아와 앉는 야생 새들의 모습은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사람의 머리 위까지 날아와 앉은 새
사람의 머리 위까지 날아와 앉은 새 ⓒ 정철용
동윤이도 이번 골드 코스트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으로 커럼빈 야생동물원에서 오랫동안 기다려 마침내 성공한 '진홍잉꼬새 먹이주기'를 손꼽았다. 나중에 돌아와서 꼼꼼하게 안내책자를 읽어보니, 커럼빈 야생동물원의 시작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1947년에 알렉스 그리피스(Alex Griffiths)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름다운 정원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 주변에 살던 야생 진홍잉꼬새들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이 일대에 더 많은 진홍잉꼬새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장관을 이루는 이 광경은 오래지 않아 골드 코스트의 관광상품이 되었고, 현재의 커럼빈 야생동물원으로까지 이어지는 관광명소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커럼빈 야생동물원의 '진홍잉꼬새 먹이주기'는 앞서 사용한 천박한 의미로의 관광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호주 토종동물로만 이루어진 매우 자연적인 환경의 동물원이라고 해도 '야생'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 동물원에 '야생'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도 바로 이 '진홍잉꼬새 먹이주기' 때문이다.

한 번도 자연과의 친화력을 경험해 본 일이 없는 사람도 자신이 들고 있는 접시에 새들이 날아들어 먹이를 홀짝이는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자신이 자연에 속하는 존재임을 뜨겁게 자각하게 되리라.

그러니 호주의 골드 코스트에 가거든 테마 파크들만 둘러보지 말고, 커럼빈 야생동물원에도 꼭 다녀오기를 권한다. 커럼빈 야생동물원에 가서도, 그냥 우리 속에 갇힌 동물들과 야생동물 쇼만 보고 오지 말고, 이른 아침 8시와 늦은 오후 4시에 벌어지는 '진홍잉꼬새 먹이주기'를 꼭 하고 오도록 하라.

새들과 친구가 되는 그 특별한 경험을 하고 난 뒤라면, 여행에서 돌아와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조금 더 착해져 있을 터이고, 우리의 일상도 자연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될 터이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번 글로 호주 골드 코스트 여행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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