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던 대학이 부끄러움을 털겠다고 나섰다. 역사는 불멸성의 기록이다. 경북대학이 대학 가운데 가장 먼저 핏기어린 학생운동사 그 불멸의 가치를 정사로 수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편찬사업에 착수했다. 이름하여 경북대학교 학생운동 60년사.
개교 60주년 기념사업 가운데 가장 값진 역사가 아닌가 싶다. 비록 편찬사업 가운데 일부기는 하지만 학생운동사는 경북대 전체사가 될 전망이다.
지난 5월 26일 경북대학 개교 59주년 기념으로 열린 '경북대 학생운동의 회고와 전망' 토론회는 사업 중간보고회 자리 같았다. 경북대 60년사 편찬 작업의 학생운동사 부분은 어제의 투사들과 오늘도 현장활동을 하고 있는 전사들의 증언으로 채록되었다.
60쯤 살다보면 세상의 순리를 이해하는 철이 드는 것일까. 경북대학이 학생운동을 학교의 역사로 기록하는 것은 대학사의 새 역사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학생운동 60년 기록사에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대학은 현대를 양육한 근대다. 여기서 우리는 탐미주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근대는 비극을 희극의 옷 속에 감추고 위대한 진실도 평범하게, 혹은 추악하게 혹은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틀림없는 근대성이란 것이다"는 말에 유념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의 투쟁혼을 대학의 희극 속에 가두는 촌극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대학은 학생들을 대학의 중심에 올려놓는 탈근대화 작업을 실천해야 한다. 그런 노력을 빠뜨린 채 추진하는 편찬사업은 대학의 역사를 덧칠하는 환경미화사업류로 전락하고 만다.
경북대학에는 이재문, 여정남이라는 불세출의 영웅비가 엉거주춤하게 세워져 있다. 학생들이 열사정신 계승을 위해 세운 기념비다. 걸핏하면 공안당국은 기념비를 문제삼았다. 언젠가는 경찰병력을 동원해 비석을 뽑아가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대학은 그때 침묵하고 있었다. 경찰 병력 나가라고 호통치며 항의할 줄 몰랐다. 상아탑은 그렇게 짓밟히고 무시당했다.
빛나는 기록은 그저 기록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기왕지사 불멸의 가치를 따르겠다고 나선 마당이라면 총장님이 조문이라도 하면 어떠랴. 돌아오지 않은 학생들을 수소문해 나서는 후속작업이 뒤따르면 금상첨화다.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마친 분들에게 졸업장이라는 명예를 안겨주는 대학이라면 모교라 부르겠다.
살아 있었더라면 졸업장이 누렇게 바랬을 세월이 흐르지 않았는가. 개교 6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학생들을 지키지 못하고 스승의 도리를 다할 수 없었던 시절에 대한 통절한 참회가 있으리라 믿어본다. 그렇게 '한' 시대를 마감하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그 하 세월에 대학이 학생운동을 새롭게 인식하는 새 장이 열렸다. 대학 스스로 부끄러운 과거사를 바로잡겠다고 나선 것으로 이해한다. 경북대학이 학생운동사 편찬사업을 계기로 불멸의 가치를 섬기는 대학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영남일보 [문화산책]에 기고한 글에 새롭게 살을 붙여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