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예비군 제대 후 8년차까지 관리된다. 불참하면 벌금도 내고 교육도 받아야 하는 예비군은 괴롭다고 아우성이다.
예비군 제대 후 8년차까지 관리된다. 불참하면 벌금도 내고 교육도 받아야 하는 예비군은 괴롭다고 아우성이다. ⓒ 예비군홈페이지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예비군과 민방위 훈련을 통해 ‘국민과 함께 일하면서 싸운다’는 예비군 모토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 스무 살 청년시절 군입대를 시작으로 40대 중년에 이르기까지 국토방위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런데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예비군과 민방위 교육현장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마찰음이 끊이질 않는다. 교육을 담당하는 쪽에서는 “예비군들은 도대체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훈련 참가자들 관리가 힘들다고 하소연이고, 교육을 받는 쪽에서는 “예비군의 처우를 개선해 달라”, “민방위 소집점검 뭐 하러 하느냐”는 등 불만의 목소리가 넘쳐난다.

왜 그런지 예비군과 민방위 훈련 사례를 통해 문제점을 살펴보자.

#1. 예비군 동원훈련, 2박 3일 군부대 입소와 3일간 군부대 출퇴근

모 부대에서 진행하는 예비군 동원 훈련. 이른 아침 서울 신길동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훈련장까지 안내하는 수송버스를 타려는 예비군들로 북새통이다. 교통비는 각자 알아서 해결한다. 2박 3일간 부대에서 먹고 자며 예비군 교육을 마치면 여비로 얼마간의 비용이 나온다. 비용은 부대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지만 대개 4천원 안팎이다.

안양에 위치한 모 부대에서 진행하는 예비군 교육. 동원미지정자인 예비군들은 3일 동안 부대로 출퇴근하며 교육을 받는다. 서울에서 안양까지 예비군 교육을 받기 위해 이용하는 수송버스비용은 왕복 5천원이다. 훈련 중간의 점심식사비용은 예비군이 알아서 해결한다. 한끼 식사를 하려면 4천원 가량이 소비된다. 교육이 끝나면 예비군들에게 여비 3500원이 지급된다.

#2. 민방위훈련, 전반기 4시간 교육과 소집점검

오후 2시 30분 민방위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의 한 구민회관. 회관강당 안은 2시부터 시작된 민방위 훈련 참가자들로 가득 찼다. 강당 밖에는 늦게 도착한 사람들로 북적댄다. 400명을 수용하는 강당이 꽉 차서 교육시간에 늦은 사람들이 밖에서 대기 중이다. 대기자들은 결국 교육담당자와의 오랜 실랑이 끝에 교육을 받지 않고 출석확인만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숫자만도 대략 400여 명.

오전 7시 5분 민방위 훈련을 하고 있는 서울의 모 초등학교 운동장. 학교 운동장은 이미 훈련참가자들이 대열을 갖추고 있다. 입구에서 교육담당자들이 교육 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다. 대열이 흐트러지니 운동장으로 들어가지 말란다. 대신 곧바로 소집훈련참가증에 도장을 찍어준 후, 교육이 끝남과 동시에 귀가하라고 한다. 채 3분이 안 걸렸다. 결국 늦게 온 사람들만 혜택을 받은 셈이다. 게다가 주민등록증 등 신분확인은 없다.

예비군들은 훈련을 받을 때 군법의 적용을 받는 군인 신분이 된다. 따라서 훈련을 지휘하는 교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예비군들은 대개 말을 듣지 않는 특성이 있다. 모두 왕년에는 잘나가는 장병이었으니 예비군을 현역장병처럼 대하지 말라며 불평불만이다. 매년 반복되는 훈련은 다 아는 것이니까 대충하자고 투덜대기 일쑤다.

더군다나 훈련 조교들은 현역사병으로 예비역의 후배다. 후배가 선배를 교육시키려니 이 또한 만만찮다. 어찌됐든 예비역들은 마지못해 훈련장에 끌려 와 군인 신분이 돼서, 후배에게 교육을 받아 불만이라서, 알고 있는 내용을 매년 반복해 지루해서 이래저래 괴롭다고 말한다. 게다가 훈련에 들어가는 교통비와 식비를 개인주머니에서 꺼낸다고 불만이 가득하다.

4시간 동안 이뤄지는 민방위 훈련은 주로 재난사고 예방이나 구조활동 등에 대한 강연과 시청각 정신교육 등으로 구성된다. 민방위 참가자들은 내용의 지루함과 연사의 전문성 부족을 꼬집는다. 정신을 집중해 교육을 받고 싶어도 열악한 교육환경 때문에 대부분 시간을 때우려 잠을 청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방위 훈련에 참석하는 것은 벌금도 벌금이고 어쨌든 나라에서 받으라고 하기 때문이라며 불만을 토해낸다. 먹고살기 바쁜 가운데 조는 한이 있어도 참가하고, 채 5분도 안 걸리는 소집점검에 참석하는 것은 오직 ‘훈련참가증’에 도장을 받기 위함이다. 5분 강연 듣고 확인도장을 받기 위해 2-30분씩 기다리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고 지적한다.

“교통비와 식비에 대한 민원제기 이해하지만 예산이 없다”

예비군 훈련을 통솔하는 서울의 한 동대장은 “예비군 훈련을 시키기 위해 동대에서는 많은 노력과 수고를 하고 있음을 알아 달라”며 “많은 부분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는 예비군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비군들이 교통비와 식비 등 훈련참가비용에 대해 민원을 제기하는 건 이해한다”면서도 “현실적으로 국방예산이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데, 모든 예비군들의 차비와 식비를 지원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일선 교육현장에서 예비군을 통솔하는 담당자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국방예산은 계속 감축되고 있고 또 감축하라는 분위기지, 병력자원은 계속 줄어들어 동대에 근무하는 사병들의 업무량은 증가하지, 예비군들은 죽어라 말 안 듣지, 힘든 건 예비군만이 아니라 동대도 마찬가지”라면서 “그래도 서바이벌과 마일즈 등 첨단 장비를 갖춘 훈련이 도입돼 예비군 교육이 활기차게 바뀌고 있으니 국방부와 예비군이 서로 조금씩만 이해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모 지역 동대장을 맡은 지 올해로 3년째라면서 “처음 왔던 2003년에는 훈련불참으로 고발된 예비군들이 50명이었는데, 지난해에는 20명, 올해는 현재까지 1명에 불과하다”며 “동대장과 병사들이 고발만은 안 당하도록 인터넷으로 훈련을 통지하고, 엽서를 보내고, 다시 인편으로 통지서를 보내고, 그래도 안 들으면 2차보충 통지서를 역시 인편으로 일일이 보내는 등 노력하고 있다”며 예비군을 위한 행정으로 정신 없음을 호소했다.

동대에서 근무하는 한 병장은 “현재 예비군 훈련에 불참해 고발되면 5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면서 “예비군 선배님들에게 훈련에 참가하라는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고 통지서를 돌리는데 그래도 안되면 새벽에 집 앞에서 잠복을 하기도 한다”며 예비군들의 훈련을 위해 밤낮이 없는 사병들도 이해해 달라고 부탁했다.

인터넷-엽서-통지서-보충통지서까지 참석 안 하면 고발돼 50만원 벌금

이 동대장은 오후 6시부터 12시까지 초등학교 등에서 하는 향방훈련 때 왜 저녁을 제공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기본적으로 8시간 이상 받는 훈련 때만 식사를 할 수 있고 여비도 지급된다”고 전제한 뒤 “예전에는 지역방위협의회 등에서 빵과 우유 등을 제공했는데 그런 모습이 정치적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이용되기도 해서 가끔 오해의 소지가 생겨 지금은 동대 자체에서 커피나 물 등만을 준비한다”고 전했다.

그는 “경찰, 집배원 등 법에서 정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예비군 훈련에 예외는 전혀 없다”면서 “어차피 받아야 할 훈련이라면 귀찮더라도 예비군들이 스스로 훈련일정과 내용을 챙겨야 하고, 또 그런 의식의 전환이 있어야 진정한 예비군의 모습이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예전에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정관수술을 하면 훈련을 면제해 주고 빵과 우유까지 주었다고 한다. 예비군들은 8시간이든 6시간이든 예비군 교육장에 불려가는 것 자체가 괴롭다고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에서는 예비군 교육의 발상전환에 대한 몇몇 아이디어가 제시 돼 눈길을 끈다.

예비군들은 모두 신체건강한 사람들이니까 1년에 한 번 정도는 헌혈증서 1장을 동대에 제출하면 6시간 교육을 면제시켜 주자, 국방비가 부족해서 못 주는 교통비와 식비를 예비군 사이트의 포인트로 적립해 주고 살면서 교통범칙금이나 과태료 등을 지불할 때 이용하게 하자 등 주목할 만한 의견들이 있다.

'헌혈증서 1장 제출하면 6시간 훈련 면제하자'...예비군교육 발상 전환해야

매년 3월부터 11월까지는 전국 각지에서 예비군과 민방위 훈련이 진행된다. 종종 밤늦게 길거리에서 총을 메고 경계근무를 서거나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예비군들을 보게 된다. 모두들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하기 위해 나라의 부름에 응한 사람들이다.

예비군들의 모습은 가끔 낯설게 느껴진다. 멀쩡하던 사람들도 군복만 입으면 전투모를 삐딱하게 쓰거나 상의 윗단추를 풀어 해치고 하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 등 ‘이상하게’ 변해버리는 예비군. 교육에 불참하면 끝까지 추적돼 벌금을 징수당하고 남은 교육도 받아야 하는 예비군. 생업에 쫓겨 여념이 없는데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며 교육을 받아야 하는 예비군.

군대 면제자들은 민방위 훈련만 받는데, 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했다는 이유로 제대 후 8년간 예비군에 편성돼야 하는 예비군. 국가권력에 의한 처벌은 강한데 왜 대접은 미약하냐고 불평하는 이래저래 고달픈, 오늘을 살아 가는 예비군의 모습이 씁쓸하다.

예비군 제대 후 8년차까지, 민방위 45세까지 교육
불참하면 벌금도 내고 교육도 받는 예비군과 민방위는 괴롭다

예비군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동원지정 예비군으로서 2박 3일간 지정된 군부대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훈련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원미지정 예비군으로 3일간 예비군 훈련장으로 출퇴근하면서 훈련을 받는 것이다. 동원훈련은 1~4년차 예비군에 적용된다.

예비군 5~6년차 지정자는 향방기본훈련 8시간, 향방작계훈련 6시간, 소집점검 4시간을 받아야 하고, 미지정자는 향방기본훈련 8시간, 향방작계 12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7~8년차는 예비군에 편성만 돼 있을 뿐 별도의 훈련은 없다.

민방위 교육은 1~2년차까지는 전ㆍ후반기에 각각 4시간씩 진행되고, 3~4년차는 4시간 교육과 소집점검 각각 한 번이며, 5년차부터 45세까지는 전ㆍ후반기 소집점검만 있다

현재 향토예비군설치법에 따르면 예비군 훈련에 무단으로 불참하면 1차 고발통지서가 배송된다. 통지서를 받은 뒤 또 다시 불참할 경우 검찰에 고발돼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처분을 받는다. 민방위 교육에 불참하면 1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예비군과 민방위 모두 벌금은 벌금대로 내고 교육은 교육대로 받아야 한다.

수송버스, 부대식당 이용 등 군인인 예비군이 민간인을 부양한다?

예비군은 훈련에 참석했을 때는 군인 신분이다. 그러데 여기저기서 군인인 예비군이 호주머니를 털어 민간인을 부양하는 웃지 못할 광경이 벌어진다.

이른 아침 군부대 수송을 위해 지역 동사무소 앞에서 출발하는 수송버스는 민간인이 운영한다. 모 지역의 군부대 왕복비용은 5천원인데 요금은 예비군이 각자 지급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부대에서 예비군이 이용하는 식당도 민간인이 운영한다. 대개 간단한 설렁탕과 육개장 등의 메뉴로 4천원 안팎이다.

한 지역의 동대장은 “관광버스는 국방부, 동대본부와 일체 관련이 없고, 식당 또한 군부대와 관계가 없다”면서도 “하지만 예비군의 편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민간인들을 활용하는 것인데, 이 모든 것은 국방예산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며 예비군 교육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함을 인정했다.

예비군과 민방위 대상자들은 이래저래 괴롭다고 아우성이다.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방예산이 실제로는 자신들을 위해 쓰이지 않으면서 벌금은 칼같이 거둬간다며 따진다. 먹고살기 바쁜 와중에 예비군 훈련에 참석했으면 최소한 교통비와 식사비 정도는 줘야 하지 않느냐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민방위 대상자들도 마찬가지다. 훈련참가증에 도장을 받기 위해 그야말로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소집점검은 없어져야 한다고 외친다. 이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는 건 기자도 예비군을 거친 민방위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 최육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북 순창군 사람들이 복작복작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