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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노 포르나>에서 '페니스 수난사'를 선보인 우리나 최초 비뇨기과 여성전공자 윤하나씨.(오른쪽)
ⓒ 배원정
포르나 포르노(porNO porNA). 포르나는 포르노의 여성형 명사. 그동안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운동을 주관했던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대표 엄을순)에서 대안적 성문화를 제안하기 위해 18일 안티성폭력 페스티벌 '포르나 포르노'를 열었다.

이번 '포르나 포르노 페스티벌'은 폭력적 포르노로 상징되던 남성과 남근, 이성애자, 비장애인 중심의 성문화를 비판하고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등 누구나 즐길 수 있고 함께 교감할 수 있는 대안적 성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국민사회자'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진 최광기씨 사회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는 이유명호, 고은광순 등 여성운동가를 비롯 국악인 김영동, 영화기획자 김광수, 페미니스트 가수 지현과 개그우면 강유미·안영미·김세아씨 등 '쟁쟁한' 인사들이 뮤지컬, 연극, 패션쇼 등을 통해 무대에 올랐다.

그중 '페니스'를 무대에서 세운 이들이 있다. 수년전 우리나라 첫 비뇨기과 여성전공의 탄생으로 화제를 모았던 윤하나(36·이대 목동병원)씨. 영화기획사 대표 김광수씨와 함께 '페니스 수난사'라는 제목의 콩트를 선보였다.

세고, 강하고, 오래가는 ‘포르노적 남성’에 미달하는 환자가 비뇨기과를 찾아 국내 최초의 여성 비뇨기과 의사와 은밀한 의료상담을 나누는 내용을 다룬 작품. 실제 이대 목동병원에서 비뇨기과 전문의로 활동 중인 윤하나씨가 비뇨기과 의사 역할을 맡았다.

지난 99년 전문의를 시작, 6년째 '금녀의 공간'이었던 비뇨기과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는 윤씨. 전공의 수련기간을 포함해 비뇨기과 진료생활만 벌써 10년째이다. 그가 '포르노보다 현실이 더 포르노'라고 외치는 이번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된 얘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이메일 인터뷰 요약이다.

"남성이라고 무조건 공격적이고 능동적일 필요가 없다"

- 포르노는 알겠는데 포르나의 뜻은 잘 모르겠더라구요.
"남성중심의 여성비하적이고 구속적인 '포르노'를 탈피하고, 여성도 원하고 여성도 즐길 수 있는 건전하고 건강한 성문화 콘텐츠의 기초를 만들어나가자는 의도로 만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성이 성의 도구가 아니라 성의 또 다른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말이죠."

- 이번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전공이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실제 제가 진료하는 분야는 비뇨기과 중에서도 요실금, 배뇨장애 등 소변을 잘 보고 못 보는 기능적인 문제와 여성의 성기능 장애입니다. 성병, 남성의 발기부전 등 비뇨기과에서 만날 수 있는 남성특유의 질환도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접할 수 있죠.

오랜 기간 이 분야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 성인의 잘못된 성지식과 성에 대한 태도인데요. 이번 페스티벌이 남녀를 막론하고 기존 성문화 틀을 깨고 속설이 아니라 근거있는 과학적인 정보에 접할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습니다. 개인적으론 말로만 듣던 '페미니즘' 단체에서 어떤 식으로 행사를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구요."

- <페니스 수난사> 작품에 직접 출연도 하던데, 어떤 메시지를 담은 것인가요.
"성병, 남성의 성기, 성에 대한 남성중심의 잘못된 상식 등 사람들이 평소 궁금하지만 주위에서 이리저리 들은 풍월이나 속설로만 알고 있던 것을 짚어서 설명해주는 역할입니다. 간단히 말해 남성이라고 해서 성에 있어서 무조건 공격적이고 능동적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아름다운 게 모두 강할 필요는 없거든요(강한 것이 아름답다는 카피를 거꾸로 적용한 것). 남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잘못 알고 있어서 여성이 당하는 상대적 피해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 작품을 보니 비뇨기과를 찾은 한 남자의 은밀한 성상담을 소재로 했던데, 실제 상담 사례가 모티브가 되지는 않았는지요.
"네. 사례가 담겨 있지요. 대부분인가?(웃음)"

▲ '페니스 수난사'의 한 장면.
ⓒ 배원정
- 정말 수많은 '비뇨기과 남성환자'를 만났을 텐데 이젠 남성환자들의 반응이 익숙한가요.
"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의사는 환자의 성별을 보고 진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아픈 부분을 보고, 인간을 대상으로 진료를 하거든요. 남성이나 여성은 그 이후의 문제이죠. 의사가 되는 사람이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지는 마음가짐입니다."

- 그래도 여성 비뇨기과 의사에게 진료받기를 거부하는 '남자'도 있을 텐데요.
"아직까지는 없었어요. 더구나 환자가 저를 선택하는 대학병원에 있는지라(웃음). 일부러 찾아오는 경우는 가끔 있어요. 매스컴에 자꾸 알려지니까."

"성교육부터 남녀 성차별 없애야"

- 비뇨기과를 찾는 남성환자 중 생리학적 질병보다 잘못된 관습이나 한국의 폐쇄적 성문화로 인한 환자도 많을 듯해요.
"자신의 성기에 대해 이상한 집착을 가지는 환자도 있지요. 예를 들면 발기되었을 때 이상하다고 찾아온 환자가 있었어요. 약물주사 놓은 뒤 발기시켜서 검사해봐야 한다고 하니까 주사 안 맞는다고 집에 가더군요. 부인이 임신 7개월인데 중국에 출장 가서 매독 옮아온 환자도 있었고요."

- 아시아에서 성생활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우리나라 남성들이 건강한 성생활을 즐기기 위한 교육이나 정보제공 기회는 과연 얼마나 될까요.
"거의 없다고 봐야겠지요. 우리나라 공공의 성교육은 초등학교 수준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전혀 업그레이드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체적으로 알아가는 거지요. 요즘 몇몇 대학에서는 교양과목에 넣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 '성의 폭력을 일상화하는' 포르노. 이같은 측면에서 볼 때 남성들이 포르노의 피해자이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그러니까 문제이지요."

- 최근 성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고 일어납니다. 제도나 법령이 강화되고 있는데 성폭력 사건은 오히려 늘고 있으니 왜 그럴까요.
"잘못된 성지식, 그리고 올바른 성교육이 일관적으로 지속되지 않는 게 원인이라고 봐요. 또 인터넷에 무방비로 노출된 각종 음란물과 외국의 성관련 문화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 하고 있지요."

- 네덜란드, 핀란드, 스웨덴 등 성에 개방적인 나라일수록 성범죄가 적다고 하던데요.
"그런 나라들은 개방적인 동시에 성을 당연한 생리현상의 하나로 가르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여러가지 방법으로 성교육을 지속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국민성도 있겠지만요."

- 성문화, 성담론이 양지로 나왔지만 여성의 성문제는 아직도 조선시대 수준을 못 벗어나는 것 같아요. 여성들에게 성은 언제까지 금기대상이 되어야 할까요.
"이젠 아니지요. 하지만 저는 지나치게 공격적인 여성의 움직임도 오히려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한단계 한단계 풀어가야 할 숙제인데, 학교의 성교육에서부터 남녀의 성차별을 없애고 개방적이고 편안한 성교육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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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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