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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로 고 김선일씨가 이라크에서 죽음을 당한 지 1년이 됐다. 저항세력에 잡혀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김선일씨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정부가 추가파병 원칙만 밝히지 않았더라도 살릴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에게도 다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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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유엔기구의 청사 경비를 자이툰부대가 맡는 문제를 정부가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한 모양이다. 국방부장관은 13일 국방위에서 이라크 파병기간을 연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라크문제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지금 이라크 정세는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한때 주춤하던 저항세력의 공격도 하루 70여건으로 늘어났다. 미군이 압도적인 화력을 동원해 수많은 소탕작전을 벌였지만 자살공격을 마다않는 저항세력의 항전의지는 꺾이지 않고 있다. 지금으로 봐서 이라크전쟁은 미국의 실패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이런 분위기는 이라크 파병국들의 움직임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파병국의 상당수가 철군과 감군을 하고 있다. 전쟁당사자인 미국에서도 철군과 감군이 공공연히 얘기되고 있다. 파병 연장과 역할 확대를 생각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혼자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건 아닌지 매우 걱정스럽다.

점점 혼미해지는 이라크 정세

이 시점에서 정부가 이라크문제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정책은 철군뿐이다. 왜냐하면,

첫째, 이라크 정세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 5월 1일 미국 부시대통령의 전쟁종결선언, 올해 1월 30일 총선에 의한 과도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저항세력의 공격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30일 이라크 주둔 미군 대변인은 지난 1월 30일 총선 이후 저항세력의 공격이 소강상태를 보이면서 4월 중순에는 하루 30건대로 떨어지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하루 70여건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미군 사망자도 매우 늘었다. 미군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5월 이라크에서는 최소 77명의 미군이 사망해 107명이 숨졌던 지난 1월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다. 이로써 이라크 침공 이후 5월까지 사망한 미군은 1685명, 부상자는 1만2630명으로 늘어났다(YTN 2005년 6월 1일).

저항세력의 자이툰부대 공격은 현실

둘째, 자이툰부대에 대한 공격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5월 30일 자이툰부대 주둔지 외곽에 무장세력이 쏜 로켓포 4발이 떨어졌다. 이라크 저항세력들이 공언해온 자이툰부대에 대한 공격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외곽에 떨어졌으니 망정이지 부대 중심부에 떨어졌더라면 어떤 참사가 벌어졌을지 알 수가 없다.

치안상황이 좋다던 아르빌은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아르빌에서는 지난해에도 쿠르드 정당 사무소 2곳이 공격당했고, 지난 5월 4일에는 차량 자살폭탄 공격으로 70여명이 숨지고 130여명이 다쳤다. 6월 20일에도 차량 자살폭탄 공격이 일어나 15명이 숨지고 백여명이 다쳤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미국의 압력을 뿌리치지 못하고 거절했던 유엔기구 청사 경비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라크 저항세력들은 여러 차례 유엔사무소를 공격한 전례가 있다. 자이툰부대가 총을 들고 청사 경비를 선다면 저항세력의 공격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라크에서 발을 빼는 파병국들

셋째, 많은 파병국들이 이라크에서 발을 빼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에는 모두 37개국이 파병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26개국만이 남아 있다. 지난해에 스페인, 헝가리, 도미니카, 온두라스, 니카라과,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뉴질랜드 등 9개국이 철군했다. 올해는 포르투갈과 몰도바 2개국이 철군을 완료했고, 네덜란드, 폴란드, 우크라이나 3개국은 철군을 진행 중이다. 이탈리아와 불가리아도 올해 안에 철군을 시작할 예정이다.

전쟁당사국인 미국과 영국도 병력을 줄이려고 하고 있다.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올해 4월 1일 바그다드를 방문해 이라크 주둔 병력을 2006년 초까지 14만2천명에서 10만5천명으로 줄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4월 4일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영국 국방부도 향후 12개월 내에 이라크 주둔군 병력을 9천명에서 3500명으로 줄일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국회의원도 철군결의안 제출

넷째, 미국 국회의원과 국민들도 이라크철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6월 16일 미국에서는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초당적 결의안이 하원에 제출됐다. 결의안은 월터 존스(공화ㆍ노스캐롤라이나)와 닐 애버크롬비(민주ㆍ하와이) 등 4명의 양당 의원이 발의했고, 민주당 의원 200명 대다수와 공화당 의원 6명의 지지 서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전에 대한 미 국내 여론도 부정적인 의견이 절반을 넘어섰다. 6월 10일 블룸버그통신에 의하면 AP통신과 Ipsos가 미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1%만이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에 찬성했다.

6월 7일 A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가 여론조사기관 TNS를 통해 성인 1002명을 조사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무려 58%의 응답자가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가치가 없다"고 평가했다. 45%는 이를 "또 다른 베트남전쟁"이라고 규정했다.

파병연장은 유엔결의안 위반

다섯째, 파병연장은 유엔결의안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자이툰부대를 파병하면서 UN 안보리의 이라크 결의안 1511을 근거로 들었다. 그런데 2003년 10월 16일 채택된 결의안 1511의 본문 제1항에는 "이라크의 주권과 영토의 보전, 유엔 결의안 1483에 의한 임시연합당국(다국적군)의 특정한 책임과 권한, 의무는 일시적임을 재확인한다. 이는 이라크에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대의제 정부가 들어서면 종료된다"고 되어 있다.

이라크는 지난 1월 30일 총선을 치렀고, 4월 6일 쿠르드계 잘랄 탈라바니를 대통령으로 하는 과도정부를 출범시켰다. 이로써 다국적군의 임무는 끝났다. 네덜란드, 폴란드, 이탈리아 등도 이를 근거로 철군을 추진하고 있다. 자이툰부대도 금년 말까지 파병기간이 끝나면 돌아와야 한다. 파병을 연장하는 것은 UN 결의 1511호 위반이다.

철군만이 국가 위신 회복시켜

여섯째, 철군만이 떨어진 국가위신을 회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6월 초 나는 세계법률가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프랑스를 다녀왔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만난 많은 법률가들이 한국의 이라크파병을 얘기했다. 미국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따르는 비주체적인 나라라는 것이었다. 국가 위신이 땅에 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 임종인 의원
지난 50년동안 우리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등을 통해 그 역량과 위상을 세계만방에 과시했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으로 땀 흘려 이룩한 정치·경제 선진국 이미지는 큰 손상을 입었다.

미국과 영국조차 발을 빼려는 마당에 자이툰부대가 계속 이라크에 머물러야 할 이유는 없다. 빠른 철군만이 떨어진 국가위신을 회복하고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물려주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임종인 기자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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