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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3일) 드디어 우리 사무실에도 에어컨을 켰다. 여간 시원한 게 아니었다. 진작 켰어야 했다. 작업능률도 쑥쑥 오른다. 당사자가 제출한 등기신청서가 한눈에 들어온다. 나는 창문 너머로 얼굴을 내밀어본다. 열기가 대단하다. 마당이 아스팔트라서 더욱 그런가 보다. 더운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나는 부지런히 등기신청서에 도장을 찍는다. 부동산이 많기도 하다. 가격도 여간 비싼 게 아니다. 바닷가 일부는 사람들이 몰려 투기지역으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갑자기 피곤함을 느낀다. 나는 시계를 본다. 오후 4시다. 나는 눈을 비빈다. 고개를 좌우로 돌린다. 허리를 힘껏 뒤로 젖힌다. 조금은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
그때였다. 여직원이 불쑥 내게 '팥빙수'를 내민다. 마침 잘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배가 출출하던 터였다. 이맘때면 뭔가를 먹어줘야 한다. 특히 단것이면 더 좋다. 머리가 피곤할 때는 사탕종류가 제일이다. 김 계장은 아예 초콜릿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웬 '팥빙수'지요?"
나는 여직원에게 말했다. 여직원이 부끄럽게 웃었다. 얼굴에 홍조가 가득하다. 여직원 나이 올해 스물 다섯이다. 부끄러움을 타는 것도 당연했다.
"제가 승진을 했어요."
"승진?"
"10등급에서 9등급으로요."
"정말 축하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사실 공무원에게는 승진만큼 기쁜 게 없다. 월급도 올라가고 지위도 그만큼 향상된다. 나도 9급에서 8급으로 올라갈 때 무척 기뻤다. 나는 유독 9급 생활을 오래했다. 인사에는 소위 '정원'이라는 게 있다. 8급 정원이 꽉 차면 정원이 해소될 때까지 그 자리에 올라갈 수가 없다. 언제 정원이 해소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공무원에게는 '관운'이라는 게 있다. 정원해소시점과 승진시점이 맞물리면 그 사람은 승진이 빠르다. 내 동기들은 대부분 그런 혜택을 보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항상 나부터 밀리는 것이었다. 다른 동기들은 3년이면 9급 생활을 면하는데 나는 무려 4년 8개월 동안이나 했다.
법원은 그렇다. 9급에서 8급까지는 시험 없이 올라간다. 그러나 7급은 아니다. 반드시 시험을 쳐야 한다. 말이 좋아서 시험이지 기실 고시와 진배없다. 사실상 이때부터 승진격차가 벌어진다. 그런데 나는 아니었다. 8급 승진이 늦다보니 7급 시험도 늦어졌다. 한 템포씩 처지다보니 지금은 제법 많이 벌어졌다. 따라잡기가 버거울 정도다.
나는 지금 6급이다. 법원생활 17년째다. 17년이면 적은 세월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고향노인들도 내 근황이 궁금한 모양이다. 아주 진지하게 이렇게 묻곤 하는 것이었다.
"자네는 언제 판사로 진급하나?"
아, 그때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나는 그분들에게 이렇게 설명하곤 했다. 판사는 진급하는 게 아니다.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연수원을 거쳐야만 판사가 될 수 있다. 그제야 그분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못내 아쉬운 표정들이다. 그분들이 내게 이렇게 위로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실무는 자네들이 도맡아 하지 않남?"
그때마나 나는 어색하게 웃곳 했었다. 나는 '팥빙수'를 가지고 창가로 간다. 바깥은 열기로 지글지글 끓어오른다. 비록 진급은 늦지만 그래도 나는 내 직업에 만족한다. 나보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직원한테 갔다. 그리고 귓속말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승진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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