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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지수

자기 자신의 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기존에 소비하던 의·식·주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들이 생겨났다. 우리는 이런 현상에 '웰빙'이라는 단어를 붙였고, 웰빙은 어느 덧, 아이스크림에서부터 속옷에 이르기까지 우리 생활과 연결된 거의 모든 것에 달라붙게 되었다.

웰빙은 순 우리말로 '참살이'라고도 한다. 이전까지의 무의식적인 소비성향에서 벗어나, 하나를 먹고 마시고 입더라도 나 자신을 위한, 스스로에 대한 사랑과 투자를 그 본질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 때는 웰빙이라는 광풍을 틈타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웰빙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였고 심지어는 무조건 비싸고 좋은 것, 과소비가 웰빙인 것처럼 오해되기도 했다.

그 웰빙의 중심에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먹을거리였다. 내 몸을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는 몸에 좋은 음식들, 맛있는 음식들을 먹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 되면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웰빙 음식을 먹으러 길을 나섰다. 새싹이 몸에 좋다고 하여 새싹 비빔밥, 새싹 샐러드가 유행했고, 기존에 흔하게 먹던 음식들도 '몸에 좋은 웰빙식'이라는 겉옷을 갈아입고 대중들 앞에 나서게 되었다.

웰빙 음식이 유행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약선음식' 쪽으로 이동했다. 마침 드라마 대장금에서 주인공 장금이가 멋진 솜씨로 몸에 좋은(어디까지나 임금에게 좋은 음식이었지만) 음식들을 만들어내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그 음식이 무엇인지 궁금해 했고, 그 과정에서 약선은 자연히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약선(藥膳)은 약식동원(藥食同原)과 그 뜻을 같이 한다. 약식동원은 먹는 것(일반적인 식사)과 약의 근본은 서로 같다는 뜻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보통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는다. 거기서 약을 먹거나 해서 병을 치료하게 되는데, 몸이 병에 걸리기 전에 몸에 맞고 영양도 있는 음식을 적절히 섭취함으로써 병을 사전에 예방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약선의 출발점이다.

즉, 약이 병을 치료하는 개념이라면 약선은 병의 근원을 예방하는 예방적인 측면이 강한 것이다. 음식은 어디까지나 음식으로써, 삶을 윤택하게 해주고 몸에 필요한 영양소들을 적절한 방법으로 섭취함으로 해서 몸의 균형을 잡고, 면역력을 높여주어 질병의 발생을 조금이나마 막아보자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들은 오해를 하기 시작한다. 즉, 약선 자체가 곧 치료제인 것처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어느어느 음식을 먹으면 무슨무슨 병이 낫는다더라, 혹은 뭐를 오랫동안 먹고 암을 완치했다는 식의 오해들이 떠돌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약선을 '몸에 좋은 음식' 이 아니라 치료효과를 가진 '약'으로 잘못 생각하게 된 것이다.

어디까지나 약선은 병이 든 후 약을 먹고 회복할 때, 약과 병행해서 회복이 빠르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음식만으로 병을 치료해 주는 것이 아니다. 약선은 병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의 '질병치료약선'과 '식양·식료(食養·食療)약선'의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병의 치료를, 후자는 병의 예방과 체질 개선을 목적으로 한다. 히포크라테스가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약으로도 고치지 못한다'고 한 것도, 이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약선은 그 시초를 중국으로 본다. 중국에서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약선학(藥膳學)이라든가 식료학(食療學)이라고 해서 음식이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 왔다. 그러나 중국의 약선 요리가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중국의 약선은 중국에서 나는 식재료를 중국인들의 몸에 맞게 발전시킨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약선이 꼭 우리에게도 좋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에겐 우리의 몸과 생활 습관에 맞는 약선이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우선 현재의 약선 요리라고 하는 음식들과 사람들의 인식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흔히 약선이라고 하면 무슨 약초를 이용한 요리나 평소에는 구하기도 힘든 산나물, 식재료를 이용해서 새롭게 창조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우리 몸에 맞게 발전되어 온 된장이나 고추장만한 약선 음식도 없다. 여기저기서 약선 요리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결국은 우리가 흔하게 먹는 된장과 고추장이 약선 연구의 출발점이다.

최근 들어 밝혀지기 시작한 된장의 항암효과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제 철마다 나는 각종 과일과 식물들 또한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할 뿐이지, 우리 조상들이 즐겨 먹어왔던 먹을거리들 가운데 알고 보면 그 어느 하나 약선 아닌 것이 없다. 다만, 자기 몸에 좋은 음식을 가려먹는 지혜가 필요할 뿐이다. 결국, 지금의 우리는 가까운 곳에 우리 고유의 약선을 놔두고, 갑작스럽게 밀어닥친 유행으로써의 약선을 좇고 있는 셈이다.

약선 요리를 전문적으로 판매한다는 약선 요리 전문점도 다소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약선 요리의 기본은 자기 몸에 맞는 요리를 먹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자기에게 맞지 않으면 독이 된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중국에서 온 사신에게 장금이가 만한전석 대신 야채를 잔뜩 먹인 것이 그 뜻이다.

그런데 최근의 약선 요리 전문점은 좀 어색하다. 무슨 약초튀김이나 한약재를 넣어서 만든 음식 등을 약선이라고 선보이고 있다. 물론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정한 약선 요리 전문점이 되기 위해서는 주문을 받는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즉, 손님 상태를 봐서 재료의 짜고 싱거움을 조절해야 하며, 체질에 따라서 손님이 먹고 싶다고 해도 먹지 못하게 해야 할 수 있어야 한다. 각기 전혀 다른 체질의 두 사람이 와서 똑같이 준비된 음식을 먹도록 주인이 방치해 둔다면, 그것은 진정한 약선 요리 전문점이라고 하기 어렵다.

약선 요리는 쉽게 생각하면 쉽지만, 어렵게 파고들자면, 의학 못지않게 복잡하고 어렵다.

덧붙이는 글 | 약선요리를 공부중입니다. 조금이나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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