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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이기원

물 뜨러 오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나무 아래를 지나다가 반색을 하고 살구를 주워갑니다. 벌레 먹은 놈 빼고, 흙 많이 묻은 녀석을 제외하고 잘 익은 것만 골라 줍습니다. 많이 주울 때는 옷자락에 담기도 하고 주머니에 넣어가기도 합니다.

ⓒ 이기원

어떤 꼬마 녀석은 어디서 주웠는지 긴 막대기 들고 와서 살구를 따려고 합니다. 하지만 녀석이 휘두르는 막대기는 살구나무 가지에 스치지도 않습니다. 몇 번을 휘두르던 녀석은 제 마음대로 안 되어 화가 났는지 막대기를 허공에 던져봅니다. 그래도 살구를 따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지친 녀석은 아무 소득도 없이 그냥 사라집니다.

한 남자 어른이 왔습니다. 땅바닥에 흩어진 살구는 주울 생각도 않고 살구나무 밑동을 걷어찹니다. 그 서슬에 놀라 살구가 우수수 떨어집니다. 먼저 떨어져 검게 변한 살구는 내버려두고 금방 떨어진 때깔 좋은 녀석만 골라 줍습니다.

그 뒤로도 걷어차고 줍고를 몇 번이나 되풀이했습니다. 그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다 실패했습니다. 카메라를 잔뜩 경계하는 아저씨는 기분이 상해서 한참을 노려보다 사라졌습니다.

ⓒ 이기원

아저씨가 떠난 뒤 때깔 고운 살구 몇 개를 주워 집으로 왔습니다. 아내와 아이들과 하나씩 나누어 먹었습니다. 살구 특유의 새콤한 맛이 미각을 자극했습니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 두 조각으로 갈라놓은 살구를 보니 저절로 입에 침이 고입니다.

ⓒ 이기원

집중 호우가 내린 뒤 살구나무가 있는 공원을 찾았습니다. 비바람에 살구가 다 떨어졌습니다. 비바람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는 살구는 이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래도 저렇게 나뒹구는 살구 열매들은 새 생명의 씨앗을 하나씩 품고 있을 겁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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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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