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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일 10시 40분. 현재시간 관객은 달랑 나 혼자뿐.
2005년 6월 2일 10시 40분. 현재시간 관객은 달랑 나 혼자뿐. ⓒ 이승열
그 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중문화 개방 후 처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는 이와이 순지의 <러브레터>를 보고 나오는데 표를 받는 직원이 우리를 불렀다. 관객 명부에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적고 가면 할인권 또는 무료 관람권을 보내준다고 했다.

며칠 뒤 C 영화관의 그 직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가 오늘 노는 날인데 마침 같은 지역의 H 극장표가 있는데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황당하고 분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반드시 이 땅의 여성들에게 쏟아지는 숱한 비난도 생각났다.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으면' '뭔가 여자가 틈을 줬겠지. 괜히 그랬겠어?' 즉각 자아비판, 자기검열에 들어갔다. 며칠을 끙끙거리다 또 다른 '나 홀로 영화광 E'에게 내 황당함을 고백했다.

그녀 또한 나와 똑 같은 경험을 진즉 했었다. 워낙 돋보이는 외모로 뭇 남성들의 가슴을 흔들었던 E에게는 지나가는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한 일이, 꽃다운 20대에도 변변한 프러포즈 한 번 받아 본 적이 없는 내겐 엄청난 모욕이요, 상처였다. 나뿐만이 아닌 나 홀로 영화객들에게 모두 했을지도 모를 상습적인 그만의 취미생활이었던 같다. 그러다 걸려들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는.

그 후 되도록 혼자 영화 보는 일을 삼가하고 있지만 10분 거리의 나만의 전용관인 C영화관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영화친구가 시애틀로, 파리로 떠난 겨울 결국 홀로 영화관을 향했다. 허리에 힘을 주고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표를 내고 자리를 잡고 나니 그 큰 영화관에 관객이 달랑 나 한 사람뿐이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3 인터넷 예매권. '오늘도 즐거운 영화관람 되세요^^' 라고?
스타워즈 에피소드3 인터넷 예매권. '오늘도 즐거운 영화관람 되세요^^' 라고? ⓒ 이승열
아침시간이라 제대로 난방조차 되지 않은 찬 공기와 혼자라는 공포감이 온 몸을 덜덜 떨게 했다. 비상구 가장 가까운 의자에 엉덩이를 반쯤 걸치고 초긴장 상태에서 본 영화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흐르고 겨우 긴장이 풀리려는 순간 앞좌석에 파묻혀 영화를 보던 관객이 벌떡 일어났을 때의 모골 송연함. 간이 오그라드는 줄 알았다. 짜식, 기침이라도 하지. 관객이 또 있는 줄 알았으면 푹신한 의자에 파묻혀 제대로 볼 수 있었잖아.

얼마 전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스타워즈를 보러 역시 혼자 영화관을 향했다. 세상에 관객이 또 나 하나뿐이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였다. 표를 물릴 수도 영화를 볼 수도 없는 진퇴양난. 50대 여성 셋이 늦고 있는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발 열두 개의 프로 중 스타워즈를 선택하길.

그녀들이 그 많은 자리를 다 남겨두고 내 옆으로 왔다. 부스럭 과자봉지 뜯는 소리, 영화평을 주고받는 소리, 차라리 덜덜 떨더라도, 또 다시 이상한 지분거림을 당하더라도 나 혼자인 게 나을까?

나는 오늘도 인터넷을 검색하며 홀로 조조영화를 볼 기대에 부풀어 있다. 조조할인 500원, 통신사 할인 2000원, 신용카드할인 1500원에 수수료가 500원.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3500원으로 느끼는 이 행복감을 가끔씩 발견되는 이상한 사람들 때문에 정녕 포기해야 할까?

덧붙이는 글 | <극장전> 공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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