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역모 vs 현민네트워크.
일본 역사교과서 채택을 앞두고 일본 안에서도 우익단체와 시민단체 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나돌고 있다. 우익단체의 공세가 매우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시민단체이 힘겹게 저지가 계속 되고 있기 때문.
남은 시간은 불과 두 달 가량. 8월말이면 일본 우익들의 논리를 담은 후소샤 역사교과서의 채택 여부가 결정된다. 각 지역별 교육위원회에서 7월초까지 법정 전시회를 열고, 7월말까지 교육위 산하 교과서 선정자료위원회에서 채택 자료를 작성한 뒤 8월말 검정대상 교과서의 채택 여부를 결정짓는 일정이다.
기자는 지난달 23일부터 26일까지 후소샤 역사왜곡 교과서 채택 저지를 위한 방일단과 함께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했다. 히로시마 제1교육위를 비롯해 24개 교육위에서도 후소샤 역사교과서의 채택 여부를 놓고 논의를 벌이고 있었다.
히로시마는 지난 2001년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후소샤 역사교과서 채택 시도에도 불구하고 단 한 군데도 후소샤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평화의 도시' 히로시마의 상황이 녹록치 않다.
'평화의 도시' 히로시마 안전지역은 단 두 곳
'교과서문제를 생각하는 현민네트워크'(이하 현민네트워크) 나츠하라 노부유키는 "히로시마 지역 가운데 단체장이 우익 인사인 경우 후소샤 교과서를 채택할 가능성이 있다"며 "현재 24개 교육위 가운데 5개 교육위가 위험한 상황이고, 안전한 곳은 2곳뿐"이라고 말했다.
현민네트워크에서 위험지역으로 보고 있는 곳은 미요시시(三次市)·쇼바라시(庄原市)·후츄시(府中市)·구레시(吳市)·오노미치시(尾道市) 등 5곳. 만약 이번에 교과서 검정을 하는 히로시마 내 24개 교원위 가운데 현민네트워크의 우려대로 5곳에서 후소샤 교과서를 채택할 경우 약 50여 개 중학교에서 이 교과서를 사용하게 된다.
그나마 진보적인 시장을 둔 히로시마시와 하츠가이츠시(卄日市)만이 안전지역으로 분류된다. 나머지 교육위원회의 경우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후소샤 교과서를 반대하는 히로시마 시민사회도 채택 저지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시민·현민네트워크 뿐만 아니라 교직원조합를 비롯해 히로시마의 평화시민단체들은 '헌법 9조' 지키기 활동과 함께 후소샤 교과서 채택 저지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25일부터 26일 양일간 히로시마시 동구구민회관에서는 현민네트워크 등이 주최하는 교과서 전시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는 일본의 현행 역사교과서를 비롯해 검정을 앞둔 후소샤 교과서를 전시하고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전시회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연대도 모색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열린 '아이들과 교과서 한일심포지움'은 그 가운데 하나다.
히로시마 시민사회단체들은 후소샤 교과서 채택 저지를 위해서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과 협력해 각 지역별 교육위와 자치단체를 압박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 시민사회 총력 저지... "이번엔 2001년과 다르다" 우익의 반격
우익 세력들의 반격도 거세다. 특히 '평화의 도시' 히로시마를 공략하려고 힘쓰고 있다. 이는 히로시마가 다른 지역에 비해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새역모는 지난 2001년 1차 역사교과서 검정 당시의 수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설욕을 다짐하고 있다. 당시 새역모의 후소샤 교과서 채택률은 0.039%로 미미한 수치를 보였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채택률 10%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자신감도 있어 보인다.
현민네트워크 시바타 모유루 집행위원장(목사)은 "지난 2001년 후소샤 교과서 채택 저지의 승리는 일본 시민사회단체의 활동 가운데 유일하게 승리한 싸움이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우익 세력들은 일본의 우경화 흐름을 발판으로 정치인-미디어를 연계하면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후소샤 교과서의 채택을 위해 한걸음씩을 내딛고 있다. 특히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다양한 선전용 책자를 싼값에 쏟아내고, 대중 행사를 통해 역사교과서의 채택을 위한 당위성을 여론화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후소샤 교과서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진단이다. 시바타 집행위원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무관심이 문제"라며 "왜곡된 역사교과서를 채택하더라도 문제가 없다거나 관심이 없는 시민들의 자세가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를 어둡게 하는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역사를 바꾸려는 일본의 우익과 평화의 역사를 지키려는 일본 시민사회의 격돌의 결과가 어떻게 될까. 이제 두 달 남았다.
| | 일본 서점에서 불붙은 역사 논쟁 | | | 교과서 특별코너 마련하는 히로시마 대형 서점 | | | |
| | ▲ 사진 왼쪽부터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선생님, 일본을 가르쳐 주세요>. 나머지 세번째 책은 후소샤 교과서를 비판한 <미래를 여는 역사> | ⓒ오마이뉴스 이승욱 | 일본 히로시마시(廣島市) 최대 서점인 준쿠도 서점. 지난달 25일 준쿠도 서점을 찾은 기자는 서점 한 편으로 빼곡히 꽂혀 있는 책들이 눈길을 끌었다. 역사관련 서적 코너였다.
자그마한 체구의 한 여성 점원에게 몇 권의 책을 부탁했다. 그는 두 권의 책을 내밀었다.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와 <선생님, 일본을 가르쳐 주세요>. 두 권 모두 후소샤가 펴낸 책으로, 현재 검정을 앞두고 있는 후소샤 역사교과서를 지원 사격하는 성격을 띄고 있다.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는 새역모 회장인 후지오카 노부카츠가 자유주의사관연구회와 지은 것. 도서 가격이 비싼 일본에서 한 권 당 500엔(약 5000원)으로 비교적 저렴하게 팔리고 있었다. 싼가격으로 많은 이들이 책을 읽게 하겠다는 전략의 결과인 셈이다.
<선생님, 일본을 가르쳐주세요>는 가장 최신작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사관연구회 이사인 타케시 하토리가 지은 이 책은 후소샤가 사회과 수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교재용으로 만든 것이다.
두 책은 판매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준쿠도 서점에서 시판되고 있는<교과서가…> 판매량은 다른 인문사회과학 서적에 비해서도 높다는 게 점원의 설명이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의 책들도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한·중·일 역사학자들이 공동 집필해 3개 국어로 동시 발행한 역사교과서 <미래를 여는 역사>. 준쿠도 서점에서는 <미래를…>를 비롯 후소샤 교과서의 왜곡을 지적하는 <이것이 문제, 쯔쿠루가이 교과서>, <사용하면 위험한 쯔쿠루가이 역사·공민 교과서> 등이 후소샤 서적들과 함께 비치돼 있었다.
여성 점원은 "오는 8월 중학교 역사교과서 검정을 앞두고 후소샤의 역사교과서와 관련한 책들이 자주 나오고 있다"면서 "후소샤 역사교과서를 찬성하는 입장의 책들 뿐만 아니라 반박하는 책들도 나오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손님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어 내일(26일)부터 특별코너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