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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감자가 맛있다. 흙만 털어내고 솥단지 바닥에 밥그릇 하나 엎어두고 덜커덩 천둥소리마냥 울리도록 쏟아 붓고, 굵은소금 한 줌 뿌려 바닥이 노르스름하다가 남은 물이 모두 소진하여 거무튀튀할 때까지 불을 조절하여 삶는다.
막 캐낸 얇은 껍질이 영화에서 지구 겉 표면이 융기하듯 사르르 볏겨진다. 살이 맘껏 일어나 돌기하는데 설컹설컹 부셔진다. 바닥은 조금 눌어붙어 마치 구운 듯 고소하다.
소금을 내 오리까 고추장을 바르리까. 된장도 그만이다.
'후후' '호호' 불며 젓가락 꽂고 손바닥에 굴려가며 둘로 쪼개 입에 쏘옥 밀어 넣으면 이건 정말이지 모레처럼 부서지다가 자잘한 알갱이가 혀에 감겨 흩어지니 찰흙을 손에 개는 느낌보다 부드럽다. 달콤한 키스의 추억은 단 한 번인데 먹을 양은 정해져 있다.
'아이쿠나! 몇 개 더 삶을 걸….' 아이 둘이 서로 자기 것 몇 개씩 챙기기 바쁘다. 엉기지 않고 포근포근 수만 개 원자(原子)가 손놀림을 부채질한다. '앗 뜨거!' 이건 분명 '핫도그'를 부르는 말이 아니다. 뜨겁다고 내 지르는 괴성이 아니다. 장마전선이 오락가락하는 '6말(末)7(中)'까지 내지르는 찬미(讚味)다. 맛있다는 표현 아니고 무엇일까?
땅속에 묻어둔 묵은 김치 몇 가닥 꺼내면 어릴 적 내 혼미한 추억이 되살아난다. 이 시절을 1년 동안 기다린 거야. '저녁밥 없다'고 했던 어머니를 탓할 겨를도 없었지.
무에 그리 거추장스럽게 수고를 하는가. 격식 차리다 전분(澱粉)이 딱딱하게 굳어 앙갚음을 하면 어쩌려는가. 그냥 손으로 나눠 드시게. 먼저 한 조각 내서 궁금한 입으로 가져가고 남은 건 쉴 새 없이 나눠보잔 말일세. 오늘 오랜만에 태고 적 원시인이 되는 건 어떤가.
아! 내 몸은 막걸리 한잔에 삶은 감자를 밀어 넣었더니 졸리는도다.
나른한 때 옆에선 또 한 번 축제가 준비되어 있다. 일부러 잘게 갈아 넣을 필요 없이 씹히는 맛을 즐기자 했다. 얇실얇실하게 채 썰어 쑥갓, 애기 파에 향긋한 들깻잎 몇 장과 풋고추 쫑쫑 썰어 낡은 프라이팬에 기름 두르니 처마에 걸린 빗소리보다 즐겁다.
"차아~."
"차르르~ 차르르~."
노릇노릇 누릇누릇 구워지고 부쳐지니 보드랍게 끌어당기는 맛이 있다.
예전 우리 마을 이장댁 정산댁이 손으로 쭉쭉 찢어 혀를 쭉 뽑아서는 "아따 참말로 맛있구만. 떡자반은 이렇게 묵어야 제 맛이랑께"하고는 양 볼을 연신 움직이며 게걸스럽게 먹던 모습을 떠올리며 한마디씩 나누면 맛이 더 진해지는 것 아닌가.
여름철 갈치조림엔 감자가 들어가야 맛있다. 무 뿌리에 수분이 많고 조직이 여리기도 하거니와 매우면서도 달큼한 향이 없으니 감자로 보충을 해야 맛이 난다. 어떤 생선이든 토막토막 썰어 되직하게 끓이면 국물마저 걸쭉해져 금세 밥그릇이 동난다.
새끼감자는 설탕과 멸치국물 내서 쪼글쪼글 쪼그라들도록 잔불에 졸여서 두고두고 먹어도 좋으리라. 맨밥이 심심하면 보리쌀 앉혀 감자 두어 알 넣어 후식으로 먹으면 그만이었지. 된장국이나 어떤 찌개와도 잘 어울리는 감자는 여름이 절정일 때 조리하기 간편하고 누구 입맛에도 벗어나지 않으니 이 한철 함께 하면 속이 든든하다.
아이들 야외 놀이 갈 때 서너 개 쥐어주고 채 썰어 양파와 볶아주면 젓가락을 부지런히 놀리겠지. 비가 잠시라도 그치면 서둘러야겠다. 아궁이 속에 파묻어뒀다가 얼굴이 검게 오순도순 나눠 먹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 따뜻한 아랫목이 그립구나.
덧붙이는 글 | 어제는 <산채원시험포지>에서 감자를 캐다가 이것 저것 해먹었습니다. 열가지가 넘는 감자, 예전에 배고팠던 시절엔 없어서 못 먹었지만 이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좋은 음식 재료입니다. 호박이 나올 때까지는 감자요리를 즐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