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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아주 옛날에나 볼 수 있었던 잠자리 모양의 안테나를 사용하는 것이고,
하나는 일명 접시라고 일컫는 적도상공의 정지궤도에 위치한 무궁화 3호 위성을 통해 방송프로그램을 디지털 신호로 전송하여 시청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시스템인 위성접시 안테나를 사용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유선전기 통신시설을 이용하여 수신자에게 송신해주는 케이블 방송인 유선방송을 설치하는 것이다.
지붕 위 안테나가 한두 개뿐인 것으로 봐서 잠자리 모양의 안테나를 사용하고 있는 집은 한두 집뿐인 것 같다. 해서 짐작해 보건대 대다수의 집들이 유선방송을 이용하여 TV시청을 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접시 달린 집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그건 유선방송이 눈이 많이 온다든지 비가 많이 온다든지 하면 노후한 선로 탓으로 화질이 급격히 떨어져 TV 시청에 불편을 겪기 때문에 집집마다 위성접시 안테나를 달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일주일에 걸쳐 대대적인 선로교체 작업을 해 고화질 TV시청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채널도 무려 70여개로 늘어났다. 남편이 나를 대단한 아줌마라며 치켜세운 이유가 바로 이 늘어난 채널 중에 낚시방송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70여개 채널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지울 건 지우고 기억시킬 건 기억시키느라 정신이 없다. 70개의 채널. 하기야 걸어다니면서도 TV를 보는 세상인데 이제 70개의 채널을 본다 하여 혀를 내두를 일은 아닌 것 같다.
내 나이 12살 때 매일 옆집으로 TV 보러 가던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어머니께서 빨간색 텔레비전을 월부로 사셨다. 아버지께서 잠자리 모양의 안테나를 지붕 위에다 아주 단단하게 잘 고정시키느라 무진장 애를 쓰신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그렇게 단단하게 잘 고정해 놓은 안테나가 행여 비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늘 말썽이었다. 재미나게 보고 있던 김일 프로 레슬링이 갑자기 중단돼 화면이 지지직 경련을 일으켰다. 아버지께서는 비를 맞으며 지붕 위에 올라가 안테나를 잡고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 보시며 고함을 지르셨다.
"나오나?"
"아직 안 나옵니더. 이리저리 한 번 더 돌려 보이소."
"어, 어, 아부지 나옵니더. 그 방향입니더. 그 방향에다 고정시키이소."
그러나 김일 선수의 헤딩장면이 잠깐 화면에 비칠라치면 다시 또 화면은 지지직거렸다. 지붕을 향해 소리쳤다.
"아부지! 아까 그 방향이라 안 캄니꺼"
아버진들 화면이 안 나오는 방향으로 안테나를 틀고 싶으셨을까. 비바람에 흔들리는 걸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한참이나 지붕 위에서 소리 지르고 나는 화면을 흘끔거리며 지붕을 향해 소리 지르고.
지붕에서 내려오신 아버지는 영락없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고 화면에선 김일 선수가 두 팔을 번쩍 들고 있었다. 철없던 나는 비에 흠뻑 젖은 아버지는 뒷전이고 김일 선수가 이번엔 또 어떻게 이겼는지가 늘 궁금했다.
요즘도 나는 우리 동네에 유일하게 남은 한 두 개의 안테나를 볼 때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저 집에선 지금도 작고 빨간 TV앞에 온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앉아 두 주먹 불끈 쥐고 김일 선수가 그 괴력의 헤딩으로 일본선수를 속 시원하게 KO패 시키는 것을 보고 있는 거 아닐까?'
어쩌면 그 집에선 정말 요지경 같은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30년 전. 감히 꿈이나 꾸어 봤을까. 차에서도 TV를 보고, 걸어 다니면서도 TV를 보는 그런 요지경 같은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