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사흘 내내 내렸다. 잦아드는가 싶으면 또 거세졌다. 일요일 한낮, 빗줄기가 잦아들 때 나갈 준비를 했다. 아이는 제발 집에 좀 있자고 했다. 하지만 집에 있으면 집만 어지럽히면서 서로 싸울 게 뻔했다.
집에서 가까운, 군산시 옥구읍에 있는 마산 방죽에 갔다. 공식 명칭은 옥구 저수지이지만 그 이름 그대로 부르는 사람은 몇 명 없다. 차에서 내리려고 할 때에 빗줄기는 다시 거세졌다. 아이보고 차에 있으라고 해도 따라 나왔다. 흙탕물처럼 보이는 거대한 방죽에 목이 긴 새들이 날고 있었다.
방죽 옆은 평화로운 옛 시골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포장이 안 된 길 양 옆으로는 들꽃이 피어 있고, 수많은 잠자리 떼와 참새 떼들이 날았다 내려앉았다 했다. 걷다 보면 저절로 평온해지는 이 길에서 마산 방죽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사람들 가슴 속에서는 '한일 축구 경기'를 볼 때처럼 짐승 한 마리씩 튀어나올지 모른다.
마산 방죽은 변변한 장비도 없던 일제 강점기 때 쌀농사를 지을 물을 얻으려고 사람들 힘으로만 팠다. 김제나 부안 사람들까지 동원해서 3년 동안 팠다. 그 긴긴 시간 동안 어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더구나 한일병합이 되고 난 1920년부터 1923년에 걸쳐 맨 땅을 바다처럼 넓고 깊게 파들어갔는데.
마산 방죽이 없었을 적에 옥구읍 일대는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만 모를 심을 수 있는 '천수답'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마산 방죽이 생기고부터는 그 물을 끌어서 농사를 짓게 됐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 그 어느 곳보다 일본인 농장 지주들이 가장 많았던 군산은 항구를 끼고 있기도 하지만 들도 아주 넓다.
나는 대학 다닐 때에 마산 방죽을 처음 봤다. 그 때는 전국을 도는 데모대가 꼭 군산에 들렀다. 군산 사람들이 특별히 데모를 못해서 데모 법을 전수해주러 오거나, 특별히 데모 고수들이 많아서 한 수 배울 게 있어서가 아니었다. 군산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땅이라고 써 놓은 미군 기지가 있기 때문이다.
마산 방죽을 처음 본 날도 떼를 지은 데모대가 군산에 왔다. 전날, 선전물을 만드느라 밤을 샜던 나는 자취방에 씻으러 갔다가 잠들고 말았다. 뒤늦게 미군 기지에 갔는데 이미 학생 몇이 미군기지 안으로 들어가는 걸 시도했고, 데모대는 어디론가 쓸려가 버린 뒤였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데 버스를 잘 못 타서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마산 방죽 옆을 바짝 붙어 지났다. 하도 넓은데다 고요하지도 않아서 바다인 줄 알았다.
월요일 아침, 다른 날보다 어쩐지 부담스럽고 바쁜데 남편이 마산 방죽 물을 미군 기지에서 생활용수로 쓴다고 했다. 그것도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쓴다고 했다. 어떻게 아냐니까 어디서 들었다고 자료는 찾아다 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당장 알고 싶어서 시댁에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궁금한 거 있어서 전화했어요."
"으응. 뭐라도 말만 해 봐라."
"근데 15년 전쯤부터 마산 방죽 물로 농사 안 짓는다고 하셨잖아요. 왜 그래요?"
"비행장 미국 놈들이 그 물을 쓴단다."
"그럼 농사는 어떻게 지어요?"
"걱정 없지, 저어~ 금강, 충청도에서 끌어다 농사짓지."
아버지 말씀을 잊어버릴까 봐 적고 있는데 요새 뜬금없이 묻는 걸 좋아하는 아이는 옆에서 고향이 뭐냐고 물었다.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 아빠하고 너는 군산이 고향, 엄마는 영광이 고향."
"아니지, 엄마 고향은 '군산 영광'이지."
아이는 전날도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아무래도 '군산 영광'이라고 못 박고 싶어서 또 그런 모양이었다. 이런 아이가 더 자라서 군산 안에 진짜로 있는 미국 땅 캘리포니아, '군산 캘리포니아'를 알게 되면 어떨까.
군산 소룡동에서 군산 미군기지까지 달렸다가 되돌아오면 그 길이가 마라톤 하프코스랑 딱 맞다. 그래서 거기를 서너 번쯤 달린 적 있다. 내가 집에서 차를 타고 나와 소룡동에서 몸을 풀고 달리다 보면 철조망을 둘러쳐 놓은 캘리포니아 땅을 분명하게 지나 미군이 보초 서고 있는 미군기지 정문 앞을 지나쳐서 되돌아왔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에도, 음식물 쓰레기를 따로 분리수거 하기 시작할 때에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지겹도록 방송했다. 깔끔하게 제대로 내놓지 않으면, 시청에서 벌금이 나오고 쓰레기조차 가져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군산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자기들이 쓴 물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버리고, 쓰고 난 기름도 '군산 캘리포니아' 옆 군산 땅으로 흘려보내서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그래 놓고도 소파 협정에 따르라고 친절한 척 한미행정협정 위원회에 문의하라고 한다. 위로금이라고 준 게 50만원이다.
월요일 낮에 오랜만에 햇볕이 따갑길래 마산 방죽에 다시 가 봤다. 예전에 군산 역에서 '군산 캘리포니아'까지 짐을 실어 나르기 위해 놓았던 철로에는 잡풀이 나 있었다. 그 위에서 네 발 자전거를 타고온 꼬마 둘이 평온하게 놀고 있지만 이 땅의 부족한 '2%'는 채워지지 않았다. 공포 영화처럼 알게 모르게 붙어 있는 '군산 캘리포니아' 귀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데 군산은 군산이면서 군산이 아니다.
덧붙이는 글 | 7월 3일과 4일에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