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평론가 배진수(전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연구실장) 박사는 최근 유럽연합이 EU 헌법안 비준시한을 연기한 데 이어 예산안 협상 타결에도 실패, EU 통합에 대한 위기감이 커져가고 있는 것과 관련, "가톨릭이 곧 국제정치적 승부수를 띄울 것"이라는 색다른 전망을 내놓았다.
배 박사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유로화 탄생이라는 경제적 통합단계를 거쳐 지난 2004년 6월 브뤼셀 유럽정상회담에서 '유럽 대통령직' 신설을 골자로 하는 'EU 헌법안'이 가결된 것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유럽공동체와 EU헌법에 관한 그간의 경과과정을 짚어보며 "이후 유럽통합 과정에서 교황이 적지 않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배 박사는 이와 관련 "▲유럽헌법안의 비준 절차 방식을 수정하거나 ▲EU헌법안 자체를 폐기하거나 혹은 ▲회원국간 별도의 합의를 통한 '유럽연합 대통령'직 신설 방안 등 여러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하지만 결국 이러한 시도의 최후카드는 교황권의 국제정치적 승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 박사는 이러한 예측의 배경에 대해 "유럽연합 국가들의 모든 지도자들이 합의했던 'EU헌법안'을 부결시킨 유럽 국민들의 마음을 다시 하나로 모으고, 움직일 수 있는 실체가 과연 누가 될 것인가?"고 반문하며 "유럽 출신이면서 유럽헌법안의 비준 투표를 이미 통과시킨 독일 출신의 새 교황 베네딕트 16세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라고 설명했다.
배 박사는 이어 "어쩌면 교황 베네딕트 16세에게는 전임 요한 바오로 2세의 공산권 붕괴에 필적할 수 있는 세계정치의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그간 베네딕트 16세가 교황권의 정통 출신지인 이탈리아가 아닌 독일 출신 교황이라는 점 때문에 유럽지역은 그의 국제정치 무대에 있어서 첫 번째 관문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또한 "유럽합중국의 목표를 향해 항해하던 유럽연합호(號)가 좌초위기에 처했다"는 언론보도 속에 통합유럽의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회원국간 이해관계에 따른 크고 작은 이견들이 돌출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황이 '구원투수'로 사태해결의 전면에 나설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모습이다.
더구나 이달부터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새로 6개월 임기의 유럽연합 순회의장을 맡음에 따라 언론들은 지난 6월 중순 영국의 예산 환급금 폐지와 농업보조금 개혁 등 유럽연합 예산안을 두고 일전을 벌였던 영국과 독일, 프랑스 사이에 긴장감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블레어가 이끌 유럽연합의 앞길이 험난할 것이라는 비관적 시각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처럼 유럽통합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악재 속에서도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취임 3개월이 가까워지는 지금까지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지는 않다.
때문에 이제 단순한 종교지도자의 선을 넘어 막강한 정치세력화된 지 오래인 교황권이 과연 'EU 헌법안'을 통한 국제정치적 승부수를 어떠한 시점에서 어떠한 역할과 모습으로 구사할 것인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한편, 이미 알려진 대로 영국은 두 나라에서 헌법안이 부결되자 내년 상반기로 예정됐던 국민투표를 즉각 무기한 연기했고, 덴마크와 체코, 포르투갈, 폴란드, 스웨덴도 정상회의를 전후해 비준 일정을 연기한 상황이다.
| | "교황권, 미국과 국제정치적 제휴 가능성 높다" | | | 배진수 박사의 향후 국제정세 동향 변화 예측 | | | | 배진수 박사는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우선적으로 역점을 둘 세계정치의 무대는 유럽이 될 것이며, 그 목표는 '서유럽 세속화' 문제 해결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한편,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의 발걸음을 따라 "국제정치적 행보를 활발히 해 나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베네딕트 16세는 가톨릭계 내부적으로 중남미 및 아프리카의 진보그룹은 물론 유럽계 개혁그룹으로부터 극심한 반대와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며 교황은 이러한 장벽들을 헤쳐 나가기 위한 묘수로 "열강들로부터 '왕따'를 당해가고 있는 미국과의 동병상련을 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 박사는 이같은 전망의 배경으로 그의 취임 직후 상황을 떠올리며, 과거 나치 청년단원 전력 및 시대에 역행하는 보수 입장 등에 대해 유럽의 일부 언론 등에서 심상찮은 비난이 제기되었던 점을 꼽았다.
배 박사는 이같은 맥락에서 "자신의 국제정치 첫 무대가 될 유럽에서의 일부 개혁파 반발, 유럽보다 가톨릭 세력판도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는 중남미와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진보그룹들의 반발 등을 헤쳐 나가기 위해 그는 미국과 손잡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가 직접 강조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당시 '시대에의 적응'을 과제로 삼았다시피, 유럽과 중남미 및 아프리카 등 국제정치 실세들로부터의 도전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세계열강들로부터 점차 '왕따' 당해갈 뿐만 아니라, 역시 세속화 문제 해결의 과제를 안고 있는 초강대국 '미국'과 '동병상련'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배 박사의 설명이다.
1848년 비오 9세 당시 20년 정도 외교관계를 지속했던 바 있는 교황권과 미국이 100여년 지난 1984년에 공산주의라는 '공동의 적'을 목표로 당시 레이건 대통령과 요한 바오로 2세가 손을 잡았던 것처럼 말이다. / 김범태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