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청소년들의 하루 생활을 들여다보면 애처로워 보지 못할 지경이다. 그 작은 등에 지게 짐처럼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들고, 여러 군데의 학원을 전전하는 그들. 공부를 위해서 사는 건지 살기 위해 공부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지난 5일 하남의 대안학교인 ‘꽃피는 학교’ 교육 현장을 찾았다.
아침 8시, 하남시 미사동 조정경기장 후문 주차장에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어디 놀러 라도 가는 걸까? 하지만 주말도 아니고 아이들의 차림새도 특별하지 않다. 잠시 후, 학년별로 선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인사를 나누고 걷기 시작한다. 조정경기장 한 켠에 있는 숲 속을 향해 걷는 것이다.
발아래 밟히는 풀과 노랗게 깔린 꽃들이 아름답다. 사이사이로 길게 뻗은 나무들에서는 새들이 지저귀고 있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에 합창이라도 하는 것 같다. ‘꽃피는 학교’ 아이들과 교사들의 하루는 이렇게 숲 속을 거니는 것으로 시작된다. 원래 이 시간의 이름은 ‘힘껏 걷기’다.
느긋하게 거니는 산책이 아니라 빠르게 힘껏 걷는 것이다. 그러나 풀과 꽃, 나무와 벌레에 정신 팔린 아이들에게 힘껏 걷기를 요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연과 더불어 배우는 아이들
30여 분의 ‘힘껏 걷기’가 끝나면 아이들은 학교로 향한다. 교실에 가방을 풀고 강당에 모인 아이들은 교장선생님과 함께 합창을 한다. 잠자고 일어난 몸을 깨우는 ‘힘껏 걷기’와 노래로 하루를 여는 것이다.
노래는 꽃피는 학교에 언제나 넘쳐흐른다. 하루를 노래로 시작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업 시간에도 노래와 시가 이어진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피아노 주위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마당에서 놀면서도 노래를 부른다.
돌림노래가 가능한 나이인 3학년부터 6학년까지 합창을 하는 동안 1, 2학년은 마당과 텃밭을 돌본다. 물을 주거나 텃밭의 잡초를 뽑는 아이들도 있지만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있는 아이들이 더 많다. 요즘 아이들의 관심은 정원 한 켠에 있는 살구나무에 있다. 단숨에 나무에 올라간 아이들이 나무를 흔들고 막대기로 쳐서 살구를 떨어뜨린다. 2학년 지원이는 그 달콤새콤한 맛을 못 잊어 쉬는 시간이면 아예 나무에 붙어 있다.
합창이 끝나면 각자 교실의 맡은 구역을 깨끗이 청소한다. 이 시간의 이름은 ‘평화놀이’. 자기가 있는 공간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이 평화의 시작이라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평화놀이’가 끝나면 각 학년별로 수업이 시작된다. 꽃피는 학교의 1교시는 노래와 암송, 서로 이야기 나누기, 리코더 연주 등으로 이루어진다. 리코더를 부는 아이들 앞에는 악보가 없다. 3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악보가 주어지기 때문에 1, 2학년은 악보 없이 교사가 부는 것을 보고 따라서 분다. 여기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언제라도 선생님의 새로운 곡 연주에 잘 따라 배운다.
쉬는 시간 아이들은 모두 밖으로 나간다. 기쁨의 정원에는 아버님들이 맨땅에 비닐을 깔아 만든 연못이 있는데, 여기 주위가 저학년들의 인기 장소다. 처음에는 물이 빠져버려서 아버지들을 고심하게 했던 이 연못은 이제 제법 연못의 모양새가 잡혀있다.
4학년 아이들이 ‘동네학’ 시간에 시장에 가서 사온 미꾸라지들이 헤엄치고 부모님들이 여기저기서 구한 올챙이는 어느새 뒷다리가 나오고 개구리가 되었다. 연못에 심어놓은 수생식물들은 자리를 잡아 예쁜 꽃들을 피우고 있다. 부모님들이 십시일반 땀방울을 모으고, 교사회를 지원하는 꽃피는 학교에는 곳곳에 학부모들의 정성이 깃들어 있다. 부모님들이 지어 주신 정자에도 아이들이 모여 있다.
정자의 지붕에는 아이들이 다 따먹고도 남아 떨어진 오디열매가 새까맣게 지붕을 덮고 있다. 학교 건물 뒤편인 희망의 정원에는 고학년들이 모여 있다. 여기저기서 구한 나무판자들로 지은 집, 땅을 파서 만든 길과 성, 자기들끼리 가꾸는 텃밭이 이곳에 있다.
놀이와 예술로 진행되는 수업시간
30분이나 되건만 아이들에게 쉬는 시간은 짧다. 2교시는 중심공부시간, 한 과목을 한 달 정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이다. ‘수에 깃든 얼(수학)’ 수업이 한창인 1학년은 아예 강당으로 나와서 수업을 한다. 숫자를 세면서 뛰는 활동을 더 넓은 곳에서 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은 공부라기보다는 신나는 놀이를 하듯 재미있게 숫자를 세고 뛰어다닌다.
아름다운 시와 숫자에 담긴 의미, 노래와 어우러진 예술 활동이다. 1부터 100까지 세기를 하면서도 숫자가 쓴 종이를 밟고 뛰며 놀이하듯 수업이 진행된다. 1학년 담임인 최정은 선생님은 “노래와 놀이가 몸으로 들어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수의 의미를 익히게 된다”고 말한다.
4학년은 지도 만들기가 한창이다. 이 과목의 이름은 ‘동네학’. 지난 한 달 동안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살피고 공책에 그려본 그림을 종합해서 각자 하남시의 지도를 그린다.
학교와 자기 집을 중심으로 강이 흐르고 지류가 흐르는 것, 아파트와 건물이 있는 곳을 정성껏 그리고 색칠도 하였다. “아이들이 자기가 돌아다니고 살핀 곳을 몸으로 알아 그리는 과정이 자연스러웠다”고 4학년 담임인 나윤주 선생님은 얘기한다.
꽃피는 학교의 수업은 이렇게 꼭 배워야 할 것들을 예술적인 방식으로 진행한다. ‘글씨와 마음씨(국어)’ ‘셈으로 만나는 수(수학)’ ‘동네학(역사, 사회)’ ‘텃밭 가꾸기’ ‘집짓기’ 등 다양한 수업이 이루어진다.
‘흐름꼴 그리기’와 ‘빛 칠하기’는 예술수업의 좋은 예다. 학년에 맞는 다양한 형태(나선, 원, 직선 등)를 그리고 동작으로 해보는 흐름꼴 그리기와 도화지를 적셔서 그림을 그리는 빛 칠하기 수업은 아이들의 정서를 풍부하게 하고 자연과 친숙하게 하는 직접적인 수단이다.
하루하루 생활을 통해 바른 정서와 습관이 몸에 배이게 하는 꽃피는 학교. 아이들의 웃음과 노래, 즐거움이 꽃피어 나는 그 곳에서는 공부와 학원 때문에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 | "'얼·몬·새’ 철학이 있는 교육이 필요하지요” | | | 꽃피는학교 김희동 교장 인터뷰 | | | | 흔히 어린시절은 미래를 준비하는 곳으로, 미래를 위해 희생하는 시기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명문 대학 진학을 위해 학원으로 과외로 휘둘려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우리 꽃피는 학교도 아이들을 그저 놀게만 내버려 두진 않습니다. 지금 시기에 매일 매일 바른 습관이 몸에 배이게 하고 사람 사이의 예의를 아는 아이로 키우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즐겁고 아름다운 공부도 열심히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얼(정신)·몬(몸)·새(관계)가 두루 조화된 통전철학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 겨레가 오래 전에 이미 갖고 있던 철학이지요. 또한 절기교육을 중요시하여 하늘이 움직여 자연이 변화되고 그 사이에서 사람이 사는 모습을 알게 합니다. 그리고 발달에 따라 아이들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에 맞춘 교육을 시행하는 것이 우리 학교 교육의 특징입니다
| | | | |
| | 대안학교 ‘꽃피는 학교’ 설명회 열린다 | | | 오는 17일 강동구 온조대왕 체육관에서 | | | | 대안학교 ‘꽃피는 학교(www.peaceflower.org)’가 학교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오는 17일 일요일 오후 3시 강동구 고덕역 부근 온조대왕 체육관 대강당에서 열리는 설명회는 대안학교에 관심이 가진 교사와 학부모 등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꽃피는 학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 15년의 학제를 지향하며 설립한 대안학교. 유치원과 초등(5학년 까지)과정은 하남시 미사동과 대전에 터전을 두고 있으며, 내년에 문을 여는 중등과정(6학년부터 9학년)은 기숙형 대안학교로 충청도에 터전을 준비 중이다. 김희동 교장을 중심으로 예비교사를 위한 교사양성 과정인 ‘통전학림’도 운영되고 있다.
이날 학교 설명회는 ‘꽃피는 학교’의 교육 과정과 철학을 교사와 학부모들이 직접 안내하는 자리다. 프로그램은 꽃피는 학교가 걸어온 길을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꾸며졌다. 학교의 1년, 아침열기 시연, 대안 교육 강연, 교육과정 소개와 교사회 합창, 학생들의 편지글 낭송과 합창, 질의응답 시간으로 2시간 가량 진행될 예정이다. 하남 031-791-5683 대전꽃피는 학교 041 -855-7761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