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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저녁때였다. 장맛비에 눅눅해진 방에 군불을 넣느라 연기를 마시고 있던 때였다. 아궁이 앞에 엎드려 불을 지피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입으로 불씨를 살리느라 얼굴이 빨개지게 바람을 불고 있는 이런 순간에 전화가 다 오나 싶었지만 연기 때문에 흘리던 눈물을 슥 문지르고 전화를 받았다. 홍성 풀무농업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었다. 딸애가 거는 전화는 언젠가부터 참 여유롭다.
“아빠아~.”
“응, 새날이구나. 왜?”
“후후, 뭐 하세요. 지금?”
“안 보이냐? 나는 네가 지금 뭐하는지 다 보이는데?”
“제가 전화 거는 거요? 저도 아빠가 전화 받는 거는 보여요.”
“너 지금 저녁 먹고 생활관에 왔지? 밥 엄청 먹었구나. 저 배 좀 봐라 똥 돼지!”
그런데 내 지레짐작이 빗나갔다. 아직 밥은 안 먹었다고 했다. 이제 막 농사시간이 끝나고 밭에서 나오는 길인데 오늘 캔 자주감자 보랏빛이 너무 예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아빠, 아빠, 아빠’하고 다급하게 부르더니 ‘지금 우리 집 밭에 무엇 무엇이 어느 정도 자라고 있는지 맞춰 볼 테니 들어 보라’는 것이었다.
새날이가 하나하나 새기며 대는 작물 이름을 들으며 나는 풀무학교 실습지에서 저런 곡식과 채소가 자라나보다 하고 눈앞에 떠 올렸다. 내 입가에는 저절로 웃음이 머금어졌고 특별한 용건도 없이 그냥 전화를 건 딸애가 왈칵 그리웠다.
집을 다녀 간 지도 한 달이 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열일곱 살 나이에 객지에서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하며 살아가기가 벅찰 텐데 한 마디 투정도 없이 전화기 저 너머로 재잘대는 딸 애 모습에 가슴 한 구석이 저릿해왔다.
“아빠. 그런데요. 부탁 하나 있거든요.”
“뭔데? 새날이 부탁 들어주는 재미로 아빠는 살아가지~.”
“저기. 방학 때요. 제가 농사지을 밭 좀 주실 수 있어요?”
이 말에 나는 잠시 딸애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되새겨야 했다. 내가 어떻게 가꾼 밭인데 밭을 달라고? 벌써 아빠 재산에 욕심을 내다니. 미리 상속 해 달라는 말? 아니지 설마 그럴 리야.
새날이 얘기는 방학 때 자기가 맡아 농사지을 밭을 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농사를 잘 짓고 못 짓고를 떠나서 방학계획에 이런 기특한 계획을 포함시킨 새날이가 대견했다.
이어 새날이는 대학을 안 가면 안 되겠냐고 했다. 당연히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 물었다. 새날이 학교에 정농회 4대 회장을 역임하신 ‘정상묵’ 선생이 특강을 오셨는데 그 강의를 듣고는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아빠처럼 그렇게 살면서 필요한 것은 그때그때 공부 하면 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고등학교에 갓 입학 한 새날이가 자기는 ‘어떤 대학을 가면 좋겠냐’고 묻기에 ‘아빠가 이미 다 정해 놨으니까 새날이는 걱정 마시라’고 했더니 서울대 수학과가 제일 좋다는데 아빠 생각은 어떠냐는 것이었다. <실상사 작은학교>를 다니면서 좋은 수학 선생 덕분에 수의 원리와 신비에 맛을 제대로 들인 새날인지라 수학자가 되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었다.
그보다 서울대라는 말에 깜짝 놀란 나는 엉겁결에 숨겨놨던 카드를 내 보이고 말았다.
“안 돼. 서울대는 안 돼. 너는 성공회대 가야 돼. 우리나라에 진짜 스승들이 계시고 제대로 된 대학은 성공회대뿐이다.”
물론 이렇게 말 해 놓고 나는 후회했다. 너무 단정적으로 말을 하는 게 아닌데 섣부르게 한 말이 혹시 부작용은 없을까 걱정도 되었었다. 그런데 이제 한발 더 나아가 대학을 안 가도 되겠다고 하니 이 녀석이 뭐가 되려고 이러나 싶어 나는 좀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새날이의 생각은 즉흥적인 것일 수도 있겠다 싶어 천천히 또 얘기 하자고 했다.
방학 때 새날이 몫으로 밭을 떼어 주겠다는 것은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