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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물웅덩이에는 아주 작고 까만 날벌레 새끼처럼 생긴 것들이 떼를 지어 다녔습니다. 어쩌면 그것들은 모기 유충들일지도 모릅니다.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하자 웅덩이는 시나브로 연못 모양새를 갖춰갔고 거기에 또 다른 식구들이 입주했습니다. 농약 때문에 요즘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참개구리들입니다.
저만치에서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못가에서 놀던 참 개구리들은 물 속으로 풍덩 풍덩 자맥질을 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도 그 연못에서 신나게 물장구를 치며 놀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풍덩거리면 참개구리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모기유충처럼 생긴 녀석들은 연못 가장 자리로 까맣게 몰려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며칠 내내 줄곧 쏟아 붓던 장맛비가 잠시 그친 날, 아이들과 함께 연못에 가보았습니다. 연못에는 '모기유충'들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다들 모기로 변했는지 아니면 개구리들이 다 잡아먹어 버렸는지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모기유충 대신 연못에는 새로운 식구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습니다. 꼬물 꼬물 헤엄쳐 다니는 올챙이들입니다. 올챙이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아직 천적을 만나지 못했는지 녀석들은 살판났습니다.
"아빠! 물에서 놀다가 올챙이들이 입에 들어가면 어떡혀?"
"넌 어떻게 헐래?"
"올챙이들 쫒아내야지"
"그라믄 연못서 쫓겨난 올챙이들은 어디로 가지?"
"다른 데로 가겠지"
"어디?"
"연못 옆에 개울로"
"저렇게 세게 흐르는 물에서는 올챙이가 살기 힘든겨, 근데 이 연못은 누구네 집이지?"
"…올챙이들."
"그럼 올챙이들이 연못 주인이네, 주인을 쫒아내면 되겠어, 누가 말여 니들이 집에서 잘 놀고 있는디 다른 사람들이 와서 쫓아내면 어쩌겠어?"
"에이! 그냥 올챙이랑 같이 놀어야겠네"
자세히 살펴보니 연못 저 밑에서부터 솟구쳐 올라 고개를 빠금히 내미는 녀석들이 있었습니다. 생김새는 물방개처럼 생겼는데 아주 작은 놈들이었습니다.
"아빠 저건 뭐여?"
"물방개처럼 생겼네, 아빠 어려서 본 방개는 엄청 컸는디, 이건 아마 물방개가 맞을겨"
"물방개가 뭐여?"
"물에도 살고 또 밤이면 집 근처로 날아다니기도 허지, 아빠도 자세히 모르니께, 이따가 집에 가서 곤충도감 찾아보자"
우리는 물속 깊이 들어갔다가 다시 솟구쳐 오르는 놈을 어렵사리 잡아 관찰했습니다. 사진을 찍어 놓고 나중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비교해 보았더니 물방개가 분명했습니다. 인터넷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딱정벌레목 물방개과인 물방개는 수생 곤충으로서 들판과 야산의 연못이나 늪 하천 등의 물 속에서 서식한다. 기관으로 숨을 쉬지만 그것으로 모자라면 딱지날개와 등판 사이에 있는 공간에 저장한 공기를 이용해 숨을 쉰다. 또 궁둥이 끝에서 거품 모양으로 드나들며 물 속에서 산소를 얻는다. 다시 새 공기를 들이마시기 위해서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한다. 성충은 연중 볼 수 있으며, 특히 봄부터 여름까지 많이 활동하고 불빛에 날아들기도 한다. 성충과 유충이 모두 육식성으로 물 속의 작은 동물이나 작은 물고기를 잡아 먹는다.
아이들이 사진을 찍던 물방개가 갑자기 날개를 펼치더니 멀리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히야, 엄청 멀리 날아가네!"
눈이 휘둥그레진 아이들은 집 쪽으로 아주 멀리 날아가는 물방개 녀석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손에서 놓친 것에 대한 안타까움, 손톱만큼 작은 녀석이 아주 멀리 날아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신기함, 그런 표정들이었습니다.
"재 어디로 가는 겨?"
"아마 우리 집으로 가는지도 모르지, 밤이면 우리 집 형광등에 날라드는 곤충들 있지, 그 중에 풍뎅이처럼 생긴 놈들 있잖어, 한번 자세히 관찰해봐 아까 그 물방개도 있을겨."
큰 아이 인효 녀석이 알 뜻 모를 뜻 한 말을 했습니다.
"아빠 말이 맞다, 모든 게 하나로 이어져 있네."
"뭐가?"
"물방개가 우리 집으로 갔으니께 연못하고 우리 집하고 이어져 있잖아."
"그렇지. 우리는 또 물방개네 집인 못에 와 있고. 물방개하고 우리하고 이웃사촌이나 마찬가지네"
꽉 막힌 둥그런 연못,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소금쟁이도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실지렁이들도 가끔씩 눈에 띄었습니다. 다들 어디서부터 온 녀석들일까? 아무런 생명도 없어 보였던 텅 빈 웅덩이가 연못으로 변모하면서 전혀 상상치 못했던 세상이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연못은 생명들이 하나 둘씩 꿈틀거리기 시작했을 태초의 세상 같았습니다.
불과 두 달 만에 텅 비었던 웅덩이가 하나의 생명덩어리가 되고 있었습니다. 그들만의 온전한 세상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식구들과 함께 살아갈 이웃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올챙이 물방개 소금쟁이, 실지렁이 정도가 살고 있어 보이지만 연못 속에는 이 보다 훨씬 더 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식구들이 연못 밖으로 얼굴을 내밀까? 우리는 연못을 꾸준히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연못에 새로운 식구들이 늘어날 때마다 신비로워 할 아이들의 표정을 떠올려보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았습니다.
"인효야!"
연못에서 밭을 건너 저만치 집 쪽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개울물 소리에 묻혀 가늘게 들려왔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벌써 날이 어두워 가고 있었습니다.
"아참, 우리 내일 셤 보는디!"
아이들은 그때서야 내일 시험을 봐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녁을 먹으라고 하는 것인지, 시험공부를 하라는 것인지 재차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를 따라 아이들은 집 쪽을 향해 물방개처럼 내달렸습니다.
나는 손아귀에서 놓쳐 버린 물방개를 바라보던 녀석들처럼 풀숲 사이로 풀쩍 풀쩍 뛰어가는 녀석들 꽁무니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녀석들이 풀쩍 풀쩍 뛸 때마다 양손이 아래위로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마치 물방개처럼 날개를 퍼덕이며 가볍게 날아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녀석들은 뛰어가면서 어쩌면 '물방개는 시험을 보지 않아서 좋겠다'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