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서 대규모 테러가 발생한 후 우리 정부도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테러정보통합센터’를 즉각 가동해 대테러 경계태세를 강화했고, 합동참모본부는 자이툰 부대에 각별한 주의와 대책을 강구하도록 지시했다. 당연한 조치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기본’은 될지언정 ‘근본’은 될 수 없는 대책이다. 이라크 아르빌에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한 한국은 과격 이슬람 세력의 테러 대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사실 확인이 더 필요하긴 하지만 세계 언론은 런던 테러를 자행한 단체로 ‘유럽 알카에다 비밀조직’을 꼽고 있다. 실제로 이 조직은 웹사이트를 통해 ‘영국의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 개입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테러를 가했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이라크 파병 규모 3위국이다. “이라크 전쟁 개입”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다.
이런 ‘막연한’ 우려에 현실감을 더해주는 사례는 많다. 지난해 10월 1일 알자지라 방송은 알카에다 조직 2인자인 아이만 알 자와히리가 “이슬람 세계를 침공한 십자군과 미국,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동맹들의 시설을 공격하기 위한 저항에 나서라”고 촉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또 지난해 12월 22일, 이라크 저항단체인 안사르 알 순나가 자이툰 부대에 대해 차량 폭탄 테러를 가하도록 산하 조직원들에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고, 지난달에는 자이툰 부대에 대한 포탄 공격이 발생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자이툰 부대의 임무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윤광웅 국방 장관은 지난달 13일 국회에 출석해 아르빌에 설치될 UN의 이라크 원조기구 청사 경비를 맡아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뿐인가. 윤 장관은 올해 말에 자이툰 부대 파병 연장 동의안을 제출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맞서 여야 의원 9명이 자이툰 부대 철군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히긴 했지만 아직은 메아리 없는 외침에 머물고 있다.
오히려 국군 통수권자인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여야 의원의 철군 촉구 주장을 무색케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런던 테러가 발생하기 몇시간 전, 청와대에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을 만나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원조기구 청사 경비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아직 결정을 내리지는 않고 있지만 결정하기 이전에 파병 명분을 벗어나느냐를 따지고 그 다음에 안전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이툰 부대의 철군 및 감군에 대해서는 “한미관계의 현실적 토대에서 파병한 것이므로 이를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는 않고 있다” “우리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며 여운을 남기긴 했지만 노 대통령의 의중이 자이툰 부대 계속 주둔, 임무 범위 확장에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설령 노 대통령이 철군 및 이라크 원조기구 청사 경계 거부 입장을 갖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 의지를 관철시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노 대통령 스스로 밝힌 ‘한미관계의 현실적 토대’ 때문이다. 미국 내 강경파가 한국과의 ‘우호적 이혼’을 주장하고 있는 마당에, 이라크에 투입하기 위해 주한미군 1개 여단을 빼내간 마당에, 또 북핵 문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마당에 철군을 하겠다고 하면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 정부는 이 점을 고민하고 있다.
게다가 UN은 런던 테러 직후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 규탄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과격 이슬람 단체에 대한 단기 공세를 예고하는 신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발 빼겠소”란 말을 꺼내기란 쉽지 않다.
이라크 문제를 둘러싼 국제 질서 속에서 한국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는 자명하다. 이건 현실이다. 하지만 현실은 변한다. 특히 외교 현실에서는 여론이 힘으로 작동한다. 한국 내 여론이 자이툰 부대 철군으로 기울 경우 한국 정부의 대미 발언력은 커진다. 대통령의 의지보다 여론의 향배가 자이툰 부대의 앞날을 결정하는 더 큰 요인이다.
하지만 오늘자 조간들은 이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있다. ‘테러정보통합센터’ 가동 사실은 전하면서도 자이툰 부대 거취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급작스런 테러라 일단 속보를 내기 급했다고 믿는다면 내일, 모레의 조간을 지켜볼 일이다. 숨을 고른 후에도 의제를 설정하지 않는다면 그건 ‘경황이 없어서’가 아니라 ‘의지가 없어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