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갯벌을, 바다를 잃은 사람들이 횟집과 어시장에서 바다를 팔고 있다. 선창포구의 횟집.
갯벌을, 바다를 잃은 사람들이 횟집과 어시장에서 바다를 팔고 있다. 선창포구의 횟집. ⓒ 이승열

선창포구 초입의 튀김집. 5천원짜리 한장이면 셋이 실컷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이 새우튀김을 준다.
선창포구 초입의 튀김집. 5천원짜리 한장이면 셋이 실컷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이 새우튀김을 준다. ⓒ 이승열
그 시절엔 그것만이 능사인줄 알았다. 먹을 입은 하나라도 줄이고, 손바닥만한 땅뙈기라도 늘려 오로지 증산, 개발 말고는 아무것도 안중에 없었다. 온갖 제초제와 농약으로 죽음의 땅을 만들고, 갯벌을 메우면서도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요하며 오만을 부렸다. 그리고 멈출 줄을 몰랐다. 데메테르 여신의 노여움으로 먹을수록 허기지는 배를 채우기 위해 자신의 팔, 다리, 엉덩이를 차례로 베어먹고 결국 이빨만 남은 뒤 신의 노여움에서 풀려난 에릭쉬톤처럼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서야 인간은 우매함에서 깨어날까?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발안리, 행정지명이 '리'에 지나지 않는 서해안 고속도로의 발안 나들목은 수원, 평택, 오산, 화성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다. 입자 고운 뻘에 발이 푹푹 빠지는 서해안 남양만의 갯벌 끝에 자리잡은 작고 오래된 포구로 나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녹색 벼와 붉은 칠면초가 공존하는 사라진 남양만 갯벌
녹색 벼와 붉은 칠면초가 공존하는 사라진 남양만 갯벌 ⓒ 이승열

갯벌 사이로 흐르는 장안천. 사람들은 아직 남은 뻘에 빠지며 낚시나 투망을 한다.
갯벌 사이로 흐르는 장안천. 사람들은 아직 남은 뻘에 빠지며 낚시나 투망을 한다. ⓒ 이승열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고온이 포구와 주곡리 선창 포구는 남양만 갯벌의 물길이 머무는 끝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포구였다. 적어도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와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 바다를 막은 9.8㎞의 화옹방조제가 2002년 3월 완공되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매화향기 가득하던 매향리 고온이 포구는 미 공군 농섬 사격장(일명 쿠니사격장)이 생기면서 일본, 사이판, 괌에서 날아온 미 전투기의 무차별 폭격으로 매화향기 대신 진한 화약냄새가 포구를 채웠다. 전쟁이, 분단의 비극이 먼저 사람들을 포구에서 밀어냈다.

주곡리 선창 포구의 운명 또한 매향리 고온이 포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개발이란 미명 하에 서해안의 지도를 바꾸어버린 갯벌 간척사업이었다. 서해안 바지락과 맛조개가 집단 폐사한 남양만 갯벌 뻘 속에 고깃배가 처박히고, 염분이 덜 빠진 갯벌에는 붉은빛 칠면초 같은 염생식물들이 갯벌을 덮었다.

화옹 방조제 완공으로 남양만 갯벌과 운명을 함께 한 이름마저 무색해진 선창포구. 이젠 배가 드나들지 않는 포구. 화옹 방조제의 갑문이 닫힌 이후 모든 배들은 궁평리의 급조된 선착장으로 뱃길을 돌려야 했다.

싱싱한 바다 내음을 풍기는 참도다리.
싱싱한 바다 내음을 풍기는 참도다리. ⓒ 이승열

놀래미와 우럭의 유영
놀래미와 우럭의 유영 ⓒ 이승열
선창포구의 주 생산물은 남양만 인근에서 잡은 새우로 담은 새우젓이었다. 각종 젓갈과 대하, 조개류를 사기 위해 도매상들이 주로 이용하던 곳이 싸다는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몰린 곳이다. 배가 드나들지 않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 포구지만 옛 명성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인심이 좋은 곳이라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갯고랑을 따라 드나드는 어선과 광활한 갯벌 아기자기한 수평선, 질퍽한 삶이 녹아 든 포구는 이제 사라졌다. 스스로 살아남은 사람만이 도시민들의 여흥을 위해 갯벌이 사라진 포구에 어시장과 초라한 횟집을 열고 손님을 맞고 있을 뿐이다.

이젠 명맥만 유지하는 퇴화된 포구임에도 새로운 바닷물이 공급되는 포구 횟집의 대야 속 횟감들은 싱싱한 생명을 유지하며 펄떡거리고 있었다. 활어회 수송차량 안에 고인 바닷물로 삶을 유지하는 수족관 속의 횟감과는 때깔부터가 달랐다.

우럭, 놀래미 회가 푸짐하다. 딸려 나온 해산물은 왕성한 식욕에 카메라에 담길 틈이 없다.
우럭, 놀래미 회가 푸짐하다. 딸려 나온 해산물은 왕성한 식욕에 카메라에 담길 틈이 없다. ⓒ 이승열

봄, 여름에는 밴댕이가 가을, 겨울에는 전어가 연탄불 위에서 익고 있다.
봄, 여름에는 밴댕이가 가을, 겨울에는 전어가 연탄불 위에서 익고 있다. ⓒ 이승열
쭈구미, 낙지, 가리비 조개, 개불, 참소라, 해삼, 멍게 한 접시에도 만만치 않은 가격을 자랑하는 계절 해산물이 이곳 선창에서는 모두 회에 딸려 나오는 부속물이다. 봄에는 밴댕이가 가을에는 전어가 연탄불에서 지글거리며 익고 있다. 포구의 흥청거렸던 풍요로움이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에 고스란히 남아, 모든 것이 풍요롭고 넉넉하다.

매바위 쪽에서 포구를 바라보면 물이 빠져 쩍쩍 갈라진 갯벌과 화옹 방조제가 아스라이 보인다. 그 갯벌 위로 매바위와 선창포구를 잇는 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붉은색 칠면초로 덮힌 황량한 갯발 위로 이따금 갈매기가 날며 먹이를 찾고 있다. 바지락과 맛이 지천이던 남양만 갯벌은 이젠 전설이 되어 버렸다. 오늘도 지평선으로 변해버린 방조제 뒤로 여전히 붉은 해가 지리라. 무구한 해는 20세기 인간의 오만으로 빚어진 화옹 방조제와 사라진 남양만 갯벌을 기억할까?

2005년 2월 28일 매바위쪽에서 바라 본 선창포구 겨울 석양. 물이 좋아 이곳에 작업실을 마련한 화가는 물이 없는 이곳을 떠나고 싶어한다.
2005년 2월 28일 매바위쪽에서 바라 본 선창포구 겨울 석양. 물이 좋아 이곳에 작업실을 마련한 화가는 물이 없는 이곳을 떠나고 싶어한다. ⓒ 이승열

덧붙이는 글 | 1.서해안 고속도 발안 나들목에서 조암 방면 우회전-82번 국도를 따라 수촌리를 지나 조암에서 멱우리 방면으로 우회전(321번)-멱우리를 지나 사거리에서 직진-선창포구 

2.서해안 비봉 나들목에서 제부도 방향 우회전-화성시청 표지판에서 좌회전-현대,기아 연구소 지나 바로 좌회전-선창포구. 저는 언제나 2번 코스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