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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인 인도네시아로 돌아간 지 2년 가까이 되지만 종종 문자메시지나 전화로 안부를 물어오는 친구가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짠한 걸 느낀다. 결혼할 것을 강권했던 인도네시아인 '헨니'의 이야기다. 지난 월요일, 결혼에 실패한 헨니가 딸이 생겼다는 연락을 해 왔다.

“요즘 세상에 그런 총각 없어요.”
“하루 종일 그런 고된 일을 하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매일 밤 정성껏 간호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자궁 외 임신’으로 쓰러진 것을 빈혈로 잘못 판단하여 장출혈까지 갔던 헨니를 병문안 갈 때마다, 같은 병실을 쓰던 사람들은 헨니의 남자친구 H에 대한 칭찬으로 인사를 대신했었다. 두 사람은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하여 H는 인천에서, 헨니는 서울 구로구에서 일했었다. 이들은 2년 가까이 주말마다 만나며 본국에 돌아가서 결혼할 것을 약속했던 사이였다.

결혼을 약속하고 관계를 가졌다가 자궁 외 임신을 하게 된 헨니를 위해 H는 일을 끝내고 보름 넘는 기간을 매일 밤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병간호를 했던 것이었다. 그런 그를 두고 사람들은 “요새 보기 드문 참한 총각이니 놓치지 말라”고 헨니에게 누차 얘기하고 있었다.

나 역시 평소 두 사람이 잘 맺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의 권유에 힘입어 헨니에게 ‘퇴원하면 결혼할 생각이 없느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헨니는 ‘자신 역시 이제 한국생활을 접고 곧 귀국할 텐데, 귀국하기 전에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결국 헨니의 퇴원 후 나의 권유로 둘은 이태원에서 결혼서약을 하였다. 나는 중간에서 중신아비 노릇을 한 셈이었다. 결혼서약을 한 날, 구로공단 5거리에 있는 뷔페 집에서 친구들을 모아놓고 결혼사실을 전하고, 그들로부터 축하인사와 부조를 받는 것으로 결혼은 간단하게 치러졌다.

결혼식을 올린 후,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헨니는 인도네시아로 돌아갔다. 그러나 H는 출국일정을 미뤘다. H는 헨니가 먼저 귀국하여 살림을 장만하는 등 둘의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더 돈을 번 후 귀국하겠다고 하며 헨니를 먼저 보냈다.

그렇게 귀국하지 않았던 H도 헨니가 출국한 지 반 년 정도 지나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인도네시아로 돌아갔다. 둘이 다 귀국하게 되자, 그들이 잘 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뜬금없는 전화가 걸려온 것은 H의 귀국 후 반년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이혼 소식이었다.

헨니는 H가 한국으로 다시 떠나기 위해 그동안 가게 장만비용으로 자신이 알뜰하게 모아놨던 돈을 싸들고 집을 나갔다고 했다. 문제는 H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긴 것이었다. H는 집에서 들고 나간 돈으로 자신과 여자 친구의 송출비용을 지불하고 인도네시아를 떴다고 한다.

그렇게 H로부터 인생의 큰 배신을 당했던 헨니가 딸이 생겼다는 말에 나는, 이혼 전에 임신이 되었던 걸로 알고, “H도 아느냐?”고 물어 보았다. 나의 질문에 헨니는 “음~얘기하자면 길어요”라며 까르르 웃을 뿐 자세하게 말하려 들지 않았다.

그때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우는 애를 달래는 소리가 잠시 들리더니, 차분해진 목소리로 헨니는 그간 사정을 전했다.

“애기는 하늘이 준 선물이에요. 친구가 자살하려다 실패했는데, 지금은 살 가망이 없어요. 남편이 바람피우는 통에 애를 놔두고 그랬다고 하네요. 제가 기르기로 했어요.”

달리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소식에 나는 ‘미안하다. 중신아비의 뺨을 쳐라’고 말하고 싶었다. 사람을 겉만 보고 결혼하라 하는 게 아니었는데.

덧붙이는 글 | H와 그의 여자친구는 지금 한국에 입국하여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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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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