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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기자는 '두벌식 한글자판, 잘 쓰고 계십니까?'라는 기사를 올렸다. 우리 한글의 구성 원리에 맞는 세벌식을 알리고 졸속으로 정해진 국가표준(두벌식)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자 시도했던 기사였다. 얼마나 관심을 가지랴 했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댓글도 댓글이지만 몇몇 독자들은 메일로 자신의 생각을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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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벌식 한글자판, 잘 쓰고 계십니까?"

가장 인상에 남은 내용은 “옛날에 공병우 타자기 쓰던 나이 먹은 사람들이나 세벌식 타령하는 거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자는 세벌식 살리기에 나선 젊은이들을 만나볼 필요성을 느꼈다. 엄밀하게 말하면 세벌식 사용자일 뿐 이렇다 할 전문지식이 없는 기자는 수소문 끝에, 고등학생 시절부터 여기저기 소개되었고 지난 3월에는 ‘스펀지’라는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세벌식 홍보에 앞장섰던 김용묵씨를 만나기로 했다.

지난 11일 월요일 오후 4시.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지하 커피숍에서 김용묵씨와 그의 후배인 장지한씨를 만났다. 마침 기자는 강남에 볼일이 있었고 대전에 사는 김용묵씨도 때맞춰 서울에 올라와 있었다. 종일 비가 내리는 탓에 꿉꿉했지만 건강한 사회참여의식을 가진 젊은이들을 만나는 일은 그것만으로도 신선한 기쁨이었다.

한글문화원 김용묵씨
한글문화원 김용묵씨 ⓒ 이동환
김용묵씨는 경주가 고향이고 현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 졸업반이다. 장지한 씨는 서울 태생으로 한글문화원장인 송현 선생의 제자이며 올바른 한글기계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인터뷰는 동시 답변 형식으로 한 시간 조금 넘게 진행되었는데 두 젊은이의 기개가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 세벌식을 쓰자는 주장에 대해 거부감까지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장지한)"두벌식에 너무 익숙해서 그럴 것이다. 지난 20 년간 국가표준으로 정해져 써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수 있다. 사실, 세벌식 한글자판이 속도에서 분명 빠르기는 하지만 두벌식에 익숙한 사용자들로서는 체감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편하다, 빠르다, 하는 면만 강조되면 거부반응부터 보인다."

- 그렇다면 세벌식을 꼭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 어떤 말로 설득할 수 있나?
(장지한)"한글은 초성·중성·종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더구나 한글은 같은 소리글자라도 로마자처럼 풀어쓰는 게 아니라 ‘모아쓰기’를 하는 글자다. 다시 말해 초성을 종성으로 다시 쓰기는 하지만 모아쓰기 때문에 구성 원리 자체가 세벌식이 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 한글을 기계로 쓰는 데 세벌식을 써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김용묵)"더구나 한글기계화에서는 자모의 벌수가 엄청난 비중을 차지한다. 몇 벌로 하느냐에 따라서 고성능 한글기계화가 될 수도 있고, 저성능 한글기계화가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자모의 벌수에 따라서 교육, 입력속도, 출력, 글자꼴, 기계구조, 코드, 글자판 통일 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문제들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세벌식일 때에만 우리 한글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다."

한글문화원 장지한씨
한글문화원 장지한씨 ⓒ 이동환
- 사실, 이제 와서 국가표준을 바꾸는 일은 쉬운 게 아니지 않나?
(김용묵)"우선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그들은 지난 110여 년 동안 써오던 쿼티자판이 있는데도 연방표준국이 1984년에 새로운 표준으로 드보락자판을 정했다. 단지 약 30% 정도 빠르다는 것 말고는 타자기나 컴퓨터의 기계구조, 또 글자꼴에서 아무 차이가 없는데도 그렇게 했다. 사실 로마자의 경우에는 옆으로 풀어쓰기 때문에 자모의 위치가 어떻게 배치되든 상관없다."

(장지한)"생각해보자. 단지 속도 문제 말고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그들은 그렇게 했다는 사실이다. 합리성이 우선 된 거다. 우리의 경우는 속도 문제뿐이 아니다. 앞서 얘기한 여러 문제들이 있는데도 한 번 정해진 국가표준이니까 무조건 써라, 하는 식이다."

-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처럼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을 텐데?
(장지한)"먼저 복수표준을 정하면 된다. 두벌식이 국가표준이니까 두벌식만 써라, 하는 건 시대에도 뒤떨어지는 발상이다. 심지어 세벌식 사용자는 PC방에서 ‘꼼짝 마라’ 아닌가? 시스템보안 문제로 거의 모든 PC방에서는 제어판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자판을 바꿀 수 없으니 PC방에서 세벌식 사용자는 간단한 댓글조차 마음대로 쓸 수 없다."

(김용묵)"지금이라도 두벌식과 세벌식을 복수표준으로 정하면 나중에는 저절로 세벌식만 남게 될 거다. 확신한다. 물론 새로운 표준 제정으로 인한 비용문제도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세벌식을 또 하나의 국가표준으로 인정하기만 하면 되니까. 무엇보다도 지금은 컴퓨터 성능이 과거보다 훨씬 좋아지고, 글꼴 처리 기술도 눈부시게 향상되어 음절 자동 구분은 물론이고, 아랍어나 타이어 같은 복잡한 문자까지 처리해 낸다."

(김용묵)"옛한글을 깔끔한 모아쓰기 글자마디로 표현해서 음절 구분까지 자동으로 하는 것 역시 프로그래머라면 일도 아니다. 한글만 유별나게 처리해 줘야 하는 일은 이제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한글의 우수하고 합리적인 구성 원리에 맞게끔 세벌식 한글 기계화를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셈이다. 기술적으로 보더라도 그렇다."

- 김용묵씨가 세벌식 사용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한 이유가 그건가?
(김용묵)"아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공병우 박사님의 자서전을 읽은 게 계기가 되었다. 한글 워드프로세서 3.0b가 나왔을 때, 개발자들의 세벌식에 대한 열정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세벌식 사용자들을 위해 스티커와 친절한 설명서까지 포함시킨 것을 보고 나도 뭔가 세벌식을 위해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본격 개발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다."

- 말 나온 김에 개발한 프로그램 설명 좀 부탁한다면?
(김용묵)"쉽게 얘기하자면 윈도우즈에서 세벌식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이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바로 그것이다. ‘날개셋 타자연습’도 있다. 또 ‘MS IME용 세벌식 파워 업’이라는 프로그램을 윈도우즈 시작 줄에 띄워놓으면 두벌식과 세벌식을 클릭 한 번만으로 쉽게 바꿀 수 있다. 아직 세벌식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필요할 때마다 자판그림이 항상 떠다니게도 만들었다. 이제 철통 PC방에서도 문제없다(모두 웃음)."

- 그런 프로그램과 함께 세벌식을 널리 알리기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나?
(김용묵)"홈페이지를 열어놓고 있다. 누구라도 오셔서 우리 한글기계화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 또 원한다면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제한 없이 다운 받을 수 있도록 꾸며놨다. 물론 자세한 설명까지 말이다(김용묵씨 홈페이지 바로가기)."

(장지한)"이참에 송현 선생님 홈페이지도 꼭 소개해주었으면 한다. 세벌식 한글기계화를 위해 지난 20여 년 동안 고군분투하신 분이다.(송현 선생 한글기계화 이론 바로가기)."

미처 못한 말이나 바람이 있다면?
(김용묵)"세벌식 통합이 빨리 이루어졌으면 한다. 사실 세벌식은 최종, 390, 순아래, 하는 식으로 세 가지나 된다. 이게 빠른 시일 안에 통합되어야 세벌식 한글기계화 역시 빨라질 것이다. 한글문화원이 주력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장지한)"세벌식 한글기계화에 대한 필요성과 시급성을 깨닫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공계 쪽이다. 먼저 나서줘야 할 인문계 특히 어문계 사람들은 오히려 관심이 적다. 서글프기까지 하다."

인터뷰가 끝나고 다정한 형제처럼 두 사람은 지하 역사로 총총히 내려갔다. 기자는 지상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한참 동안 그들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지켜봤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스스로 연구하고 배우며 깨달아 우리 한글의 우수성과 세벌식 알리기에 나서고 있는 저들은 분명 미래를 위한 희망이다. 저런 젊은이들이 있는 한, 올바른 한글기계화의 숨통은 그나마 트여있다. 기자는 한복 바지춤을 추스르며 짙게 번지는 웃음과 함께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섰다.

덧붙이는 글 | ▶김용묵씨와 관련한 언론 보도 
- 일간 스포츠 (1999/4/28) 
- 연합 뉴스 (2000/9/5) 
- EBS 텔레비전, <우리말 우리글> (2002/11/2) 
- EBS 텔레비전, 한글날 특집 다큐멘터리 3부 <세계화 시대의 우리 말글> (2003/10/10) 
- KBS2 텔레비전, <스펀지> (200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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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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