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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꿈꾸는 책들의 도시> ⓒ 들녘
'부흐하임'이라는 도시가 있다. 그곳은 '책의 도시'다. 도시의 어느 곳에 발을 들여놓아도 서점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어느 길에 들어서도 자신의 작품을 알리기 위한 시인과 소설가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또한 1년 365일 내내 책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람들의 관심도 온통 책에 관한 것이다.

이 도시에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일흔일곱 살의 어린공룡 '미텐메츠'가 발을 들여놓는다. 위대한 작가이자 미텐메츠의 대부 단첼로트가 남긴 유언 때문이다. '오름' 즉 현대 소설가들이 곧잘 '뮤즈'라고 표현하는 글쓰기의 신성이 담긴 원고의 작가를 찾아가 배움을 얻으라는 것이었다. 미텐메츠는 어린 나이에 오름 따위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가 보여준 원고에 반했으며, 또한 대부의 뜻을 거스를 마음도 없어 살던 곳을 떠나 부흐하임으로 떠나온 것이다.

하지만 찾는 이의 이름도 모르고, 찾는 이의 다른 작품에 대해서도 아는 것 없는 미텐메츠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작가를 찾는 일은 갈수록 오리무중에 빠져든다. 하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는다. 부흐하임은 호기심 많은 어린 나이의 그를 완전히 위로해주기 때문이다. 작가를 꿈꾸는 미텐메츠는 당연하게도 처음 접해 본 부흐하임의 면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특히 부흐하임의 지하 세계를 드나들며 귀한 책을 구해오는, 목숨을 내놓고 숨겨져 있던 고서적을 지상으로 꺼내오는 레겐샤인과 같은 책 사냥꾼들의 모험에 매료되고 만다.

그런데 아주 뜻밖에 미텐메츠는 작가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를 작가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던 출판업자 하르펜슈톡 덕분에 부흐하임 최고의 유명인사이자 실종된 책 사냥꾼 레겐샤인의 충실한 동료로 알려진 서적 전문가 슈마이크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레겐샤인에게 반했던 미텐메츠는 당연하게도 슈마이크에게도 반하고 모든 걸 그에게 맡긴다.

슈마이크도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미텐메츠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려 한다. 그들의 만남 이후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만 같다. 하지만 최고의 작가를 찾는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예상치 못한 일로 미텐메츠는 부흐하임이자 부흐하임이 아닌 곳, 책 사냥꾼들도 출입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고 알려진 곳, 그림자제왕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살고 있다고 알려진 곳, 그러나 그 어떤 책들보다 귀한 책들이 있다고 알려진 지하세계로 빠져들게 되고 그곳에서 책으로 인한 파란만장한 모험들을 겪게 된다.

기발한 상상력 무장한 '책을 위한 책'

책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있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처럼 책이 사건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거나 귀뒬의 <도서관에서 생긴 일>처럼 이미 존재하는 책의 내용을 이용해 또 다른 책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그렇다. 이런 책들은 책의 내용을 떠나서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책 속에 책에 대한 애잔함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는 것과 이런 내용의 책들을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갑게도 미텐메츠의 모험이 담긴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도 책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책의 도시 부흐하임이 등장하는 것에서부터 쉽게 볼 수 없는 책이라는 것을 눈치 채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웬일인가. 이것은 보통 수준이 아니다. 책을 이야기하는 기존의 책들이 보여준 정도는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 비하면 책을 이야기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책은 정말 책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책을 도구로 삼는 책이 아니라 책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책이다. 책에 눈이 달려 있고 책이 책장들을 펼쳐 날아다닐 수도 있으며 또한 책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기발한 상상력을 무장한 이 책은 가히 책 타령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책에 시선이 닿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미텐메츠의 모험과 글쓰기와 관련된 오름에 관한 것들을 지켜보는 것 외에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는데 그것은 책을 이야기하는 대목 대목이다. 기발함을 넘어 기상천외하다고 해야 할까? 장정 열 명이 달라붙어야 책장을 넘길 수 있는 거대한 책이나 곁에 땀 닦는 손수건이 함께 놓여 있는 모험소설, 기묘한 효과를 갖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무서운 책, 날아다니는 책 같은 책을 보는 순수한 상상력부터 책을 보면 배가 부르다는 부흐링족 이야기나 책으로 먹고 사는 책 사냥꾼들에 대한 환상적인 상상력까지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상투적으로 책을 말하지 않고 있다.

"상상력에 실려오는 메시지 강해"

그렇다고 해서 <꿈꾸는 책들의 도시>가 단순히 상상력에 의지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작품에서 저자의 상상력은 단연 돋보이는 것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저자는 책에 관한 중요한 메시지들을 잊지 않고 있다. 그것은 책을 보는 것,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 그리고 책을 쓰는 것 등에 대한 마음가짐에 관한 것이다.

필시 그것들은 평소에도 상투적으로 여겨졌던 메시지들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희망과 절망 속에서 다르게 받아들여지듯이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책들의 세계에서 비평가와 출판업자, 작가와 독자, 그리고 책에 의해 그 말을 듣는다면 결코 그것을 상투적이라고 여길 수는 없을 것이다. 하다못해 사람들이 들은 척 하지도 않는, '책을 사랑하자'라는 말조차도 말이다.

책의, 책에 의한, 책을 위한 세계를 그려낸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놀라운 상상력으로 환상의 모험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또한 책에 대한 사람들의 애잔함에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까지 남겨주고 있으니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모험을 선사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들녘(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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