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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발언을 단독 보도했던 <서울신문>이 또 하나의 단독 보도를 내놨다. 김중권 전 민주당 대표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연대‧통합 방안에 적극 개입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김중권 전 대표가 이명박 서울시장을 한나라당과의 연계 통로로 삼기로 했다는 대목이다.

이쯤 되면 지금까지 ‘공상’ 정도로 치부됐던 과거의 한나라당-민주당 통합 주장을 되새김질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통합을 처음으로 입에 올린 사람은 한나라당의 정형근 의원이다. 정형근 의원은 지난 4월, 민주당과의 통합을 위해서는 한나라당의 기득권도 내놔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시기상 뜬금없고 제기한 인물이 의외여서 듣는 이들을 뜨악하게 만들었을 뿐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한나라당의 홍준표 의원이 다시 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지난 14일 국회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당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밝힌 것. 홍준표 의원은 “양당의 합당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면서 “내년 지방선거 이후 분위기가 무르익을 것”이라고 전망하기까지 했다.

홍준표 의원의 발언이 예사롭지 않았던 것은 그의 마지막 한마디 때문이었다. “내년 지방선거 이후”로 시기까지 못 박으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을 것”이라고 ‘예언’함으로써 지금 물밑에서 뭔가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중권 전 대표가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을 잡겠다고 나섰으니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합당 주장은 ‘공상’에서 ‘상상’으로 한 단계 급이 올라갔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른바 ‘이명박 계열’로 분류되는 홍준표 의원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합당을 주장하자마자 김중권 전 민주당 대표가 화답이라도 하듯 이명박 서울시장과 민주당 간의 메신저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으니 일단 ‘그림’의 규격은 갖춘 셈이다.

그럼 이쯤에서 진단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통합 ‘상상’은 얼마나 현실 가능성이 있는 그림일까? 일단은 부정적이다.

김중권 전 대표는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내고 민주당 대표까지 맡는 등 국민의 정부에서 잘 나가던 정치인이었지만 지금은 ‘낭인 정치인’에 가깝다. 국민의 정부에서 중진의 위치를 지켰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후광에 의한 것이었다. 국민의 정부가 막을 내린 후 김중권 대표는 총선에서 낙선하면서 하락세를 면지 못해왔다. 게다가 그는 민정당 출신으로 민주당에 조직 기반을 갖고 있지도 않다.

이런 김중권 대표가 설령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을 잡는다 해도 그 위력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의 행보는 개인적 차원, 즉 대선 때 흔히 보는 ‘줄서기’ 차원이지 민주당의 전권특명대사로서의 행보는 아니라고 보는 게 맞다.

이같은 점은 민주당의 몇가지 사정에서도 확인된다. 민주당 지지 세력의 정서는 여전히 ‘반 한나라당’이다. 민주당이 지지 세력의 이런 정서를 무시하며 한나라당과 합당을 강행하는 건 무리다. 또 차기 대권 후보 가운데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고건 전 총리를 영입해 대선 지분을 최대한 키우려는 민주당이 ‘과속’을 하면서까지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을 잡으려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그런데도 여운이 남는다. 두 가지 점 때문이다. 하나는 물 밑에서 뭔가를 모색하고 있다고 시사하는 듯한 홍준표 의원의 말이다. 민주당과의 합당이 단지 희망사항이라면 “내년 지방선거 이후에 분위기가 무르익을 것”이라고 ‘예언’까지 할까?

또 하나는 민주당의 묘한 태도다. 민주당은 한나라당과의 통합 얘기가 나오자 “지역문제는 뿌리가 있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이런 역사성을 무시하고 정당간 이합집산과 정치공학에 의해 지역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말미에 가서는 꼬리를 흐렸다. “민주당도 집권 경험이 있고 한나라당도 야당을 하는 지금 로미오와 줄리엣 집안처럼 원수로 지낼 필요는 없다”는 말을 덧붙인 것. 열린우리당이 합당을 주장했을 때 “민주당을 이불 삼아 죽겠다”던 한화갑 대표의 말과 비교하면 그 강도가 천양지차다.

그럼 도대체 뭐가 진실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아무도 모른다. 언론 보도에서 운위되는 이명박 서울시장이나 김중권 전 대표조차 종착점을 모른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왜? 지금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가 아니라 탐색전을 펼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김중권 전 대표의 행보, 그리고 홍준표 의원의 묘한 발언을 종합하면 물밑에서 뭔가가 모색되고 있다는 가설을 인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모색의 주체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아니라 이명박 서울시장과 김중권 대표로 한정된다. 정당 차원이 아니라 정파 차원에서 연합을 모색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박근혜 대표라는 당내 경쟁자를 넘어야 하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입장에서는 정파의 외연을 넓히고 명분도 쌓을 수 있는 카드라면 효과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일단 집어들 필요가 있다. 김중권 전 대표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 재기하는 데 대선처럼 효과적인 계기는 없다. 민주당이 한화갑 대표 체제 아래서 호남의 지역 기반을 다지는 상황이기에 자신이 민주당에 죽 몸을 담을 이유도 없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서울시장과 김중권 전 대표의 이해관계는 일정하게 겹친다.

그래도 남는 문제는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나 김중권 전 대표의 이해관계는 그렇다 하더라도 민주당의 모호한 태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여기서 되새겨야 할 게 있다. 바로 과거의 대선 경험이다. 민주당의 입장에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게 바로 과거의 대선이다. DJP연합과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시도는 군소정당의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이인제‧정몽준 후보의 중도포기는 군소정당의 한계를 보여준다. 즉 민주당이 고건 전 총리를 영입해 대선에 나선다 해도 ‘순간 돌풍’에 그칠 수밖에 없다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지금으로선 현명한 길이다.

민주당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면 그건 당 전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민주당 당원 개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중권 전 대표의 활동 여지가 생기는 것이고, 민주당 전체로선 과속해서 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는 사정으로 작용하기 한다.

이렇게 보면 한 가지 정리되는 게 있다. 앞으로 전개될 이합집산이 정당 대 정당 간이 아니라 정파 대 정파, 개인 대 개인 간의 이합집산으로 시동을 걸게 되리라는 점이다. 역대 대선에서 심심치 않게 목도한 바 있는 현상이 앞으로도 재연될 것이란 얘기다. 특히 이런 현상은 개헌 문제가 공론화되면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정당이야 당론을 정해 밀어붙이려 하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연출된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관철코자 하는 사안, 즉 선거제도 개편 문제도 새 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개헌 논의가 대통령제와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가운데 어디로 쏠리느냐에 따라, 선거제도 개편을 둘러싼 이해 다툼도 첨예해질 것이다. 대선 국면에서 당 공조직의 통제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정파가 자파의 이해를 우선시하면서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연대와 배척의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는 것이다.

선거제도 개편 문제는 올해 논의사항이 아니라 내년 논의사항이고, 연정은 현 권력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차기 권력구조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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