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머스톤 노쓰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20여분을 달려 폭스턴에 도착해 보니 과연 4∼5층 건물 높이의 커다란 풍차 한 대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가벼운 바람을 맞아 그 커다란 양팔을 슬슬 돌리고 있는 모습이 마치 우리를 환영한다는 몸짓처럼 여겨졌다.
문외한인 나의 눈에는 일단 겉보기로는 그저 평범한 풍차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 입구에서 받은 안내책자를 들여다보니 '드 몰렌(De Molen)'이라는 이름의 이 풍차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전통 풍차를 그대로 복원해 낸 것으로서 그렇게 만만하게 볼 것이 결코 아니란다.
1990년 첫 발의에서 2003년 개관까지 10년 이상을 공을 들인 이 풍차는, 네덜란드를 직접 방문하여 현지의 건축가로부터 직접 디자인과 사양을 받아왔으며 이후 뉴질랜드내 네덜란드 커뮤니티의 재정 지원과 자문을 얻어서 이 마을 사람들이 자원봉사로 제공한 노동력으로 완성한 하나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고전적인 작품의 아름다움을 좀 더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 내부로 들어가 보아야 한다. 우리는 골드 코인(색깔이 황금색인 뉴질랜드의 1달러나 2달러짜리 동전을 말함) 기부금을 입장료로 내고 풍차의 내부 2층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을 기어 올라갔다.
제법 넓은 다락방처럼 느껴지는 그 내부 공간은 다시 5층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복잡한 기계장치들이 층간에 이어지고 있었다. 톱니처럼 맞물려 있는 기어, 그들을 이어주는 축, 맷돌이 들어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둥근 통 등 대부분의 기계장치들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희뿌연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것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직원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그 기계장치를 실제로 작동시켜 움직이는 모습을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풍차는 이처럼 실제로도 작동이 되어 밀가루를 빻아내며 그렇게 빻은 밀가루를 아래층 매장에서 기념품으로 팔고 있다고 한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 기능까지도 17세기 네덜란드의 전통적인 제분 방식을 그대로 복원하기 위하여 풍차 내부에 쓰인 기어와 맷돌, 풍차의 팔(돛대) 등 주요 자재까지도 네덜란드에서 직접 들여와 만들었다고 그는 덧붙인다.
2003년 4월에 이 풍차가 문을 열고나서 한 해 동안만 6만 명에 이르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다녀갔고 또한 네덜란드의 전직 총리까지도 다녀갔다는 사실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떠나기 전에, 주민 수가 모두 합쳐서 5천명도 채 되지 않는 이 바닷가 작은 마을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른 '드 몰렌' 풍차를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이 풍차가 있어 뉴질랜드는 드디어 그 이름에 걸맞은 관광명소를 가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풍차인가. 그러나 바람을 경영하여 매년 수만 명의 관광객의 돈을 빻아내고 있는 '드 몰렌' 풍차는 자랑하는 기색도 없이 얌전하게 슬슬 돌아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해 4월 뉴질랜드 북섬 남서부지역 일주여행을 다녀오고 쓴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