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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하버가 보이는 주택가
시드니 하버가 보이는 주택가 ⓒ 윤여문
호주는 거대한 섬이면서 동시에 대륙이어서 '섬대륙(The Island Continent)'이라고 부른다. 대륙 하나를 한 나라가 몽땅 차지한 나라도 호주가 유일하다. 총면적 768만2300평방킬로미터. 한반도의 35배이고 알래스카를 뺀 미국과 거의 비슷한 크기다.

유럽면적의 두 배나 되는 드넓은 땅을 차지한 호주의 인구는 2천만 명을 약간 웃도는 정도다. 당연히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낮아서 1평방킬로미터에 대략 두 명 정도가 살고 있을 뿐이다. 텅 비어있는 대륙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널찍한 나라의 부동산 가격은 얼마나 할까. 놀라지 마시라. 시드니의 부동산은 서울의 웬만한 부동산 가격 뺨친다. 도심의 건물이나 상가를 얘기하는 게 아니고, 중산층이 사는 주택가의 집값을 말하는 것이다.

한 예로 중산층이 주로 거주하는 시드니 서북부의 방 3개짜리 주택가격은 5억 원을 호가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시드니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혀를 내두른다. "시쳇말로 '널널한' 땅에다 '헐렁하게' 지은 집들인데 왜 이렇게 비싸냐?"는 것.

시드니의 집값이 비싼 이유

바다가 내륙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는 천혜의 항구도시인 시드니는 호주에서 가장 큰 도시다. 호주 전체인구의 20%인 4백만 명 남짓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시드니는 경기도보다 약간 작다.

숲 속에 들어앉아 있는 호주의 주택
숲 속에 들어앉아 있는 호주의 주택 ⓒ 윤여문
시드니에는 동네마다 큰 공원이 몇 개씩 있고 도심에서 10분 정도만 나가면 수십 개의 골프코스가 산재해 있다. '예비지(reserve)'라고 불리는 공터가 곳곳에 널려있을 뿐만 아니라 국립공원도 상당하다.

이런 시드니의 집값이 30년 전에 비해 크게 올랐다. 30년 전엔 토지가치가 집값의 20%였는데 지금은 60%를 육박하기 때문이다. 왜 일까.

가장 큰 이유는 환경친화적인 쾌적한 도시를 유지하려는 시드니 시민들의 욕구 때문이다. 이 곳에서 공원이나 예비지를 택지로 개발하는 건 상상조차 힘든 일이다. 또 많지 않은 상업지구를 제외한 도시전역의 건축물에 엄격한 고도제한이 적용된다. 호주인구의 도시집중도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인구의 약 95%가 인구 2만 명 이상의 도시에서 살고 있는 것. 그러다보니 택지난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도제한으로 낮게 짓고 있는 주상복합건물
고도제한으로 낮게 짓고 있는 주상복합건물 ⓒ 윤여문
또 다른 이유는 호주가 미국이나 영국 못지않게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경제시스템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유방임에 가까운 시장 메커니즘(market mechanism)에 부동산시장을 방치해버린 집권보수정당 자유-국민 연립정부와 호주의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은행(Reserve Bank of Australia)의 책임이 크다는 게 호주경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첫 주택구입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의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를 꾀했던 존 하워드 정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고, 부동산 가격이 수직상승하는 상황에서 2001년 한 해에만 여섯 차례에 걸쳐 6.25%이던 기준금리를 4.25%로 인하했던 연방준비은행의 이자율 정책이 오늘의 상황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특히 존 하워드 총리가 부동산정책을 선거 전략에 이용한 사실은 지금도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2004년 10월 총선 당시 이자율에 관한 네거티브 캠페인을 통해 승리했다. "노동당이 집권하면 이자율이 오른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수많은 유권자들을 협박한 것.

그러나 존 하워드 총리는 재집권에 성공하자마자 이자율이 올라 큰 빈축을 사고 있다. 정부로부터 독립된 결정을 내리는 연방준비은행이 "이자율에 관해서 아무런 권한이 없는 하워드 총리가 사실과 다른 발언을 했다"고 비판하면서 총선 뒤 이자율을 세차례나 올렸기 때문이다.

호주 중산층이 사는 주택의 모습
호주 중산층이 사는 주택의 모습 ⓒ 윤여문
2000년 이후 3년간 주요도시 집값 50% 상승

호주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호주 주요도시의 집값은 2001년 15.5%, 2002년 18.4%, 2003년 18.9%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드니 올림픽이 열렸던 2000년 이후에만 50% 정도 상승한 셈이다. 중산층이 거주하는 시드니 북서부의 경우, 부동산 가격이 바닥을 쳤던 1996년과 최고치를 기록한 2003년을 비교해 보면 네 배나 차이가 난다.

여윳돈이 있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평범한 봉급생활자들까지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부동산 시장은 한 몫 잡겠다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시중은행들은 경쟁적으로 주택담보대출 세일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이런 현상을 두고 호주독립연구소의 피터 손더스 연구원은 "1986년부터 2004년 사이에 주택가격이 무려 310%나 급등했는데, 같은 기간 동안 봉급생활자의 급여는 128% 상승에 그쳤다"고 분석하면서 "호주노동자들의 노동의욕과 저축의지를 저하시키는 약탈적 자본주의가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이처럼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만 빠르게 부를 축적하다보면 부의 불균형도 문제가 되지만 더 큰 문제는 사회적 균열현상"이라고 지적하면서 "여당의원인 말콤 턴불 의원이 지적한대로 부동산 붐과 관련된 자본이득세 포탈도 집 없는 서민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사회병리현상"이라고 우려했다.

정원이 거의 없는 다세대 주택의 모습(전에 없는 주택형태다).
정원이 거의 없는 다세대 주택의 모습(전에 없는 주택형태다). ⓒ 윤여문
한편 전국무주택자동맹(National Housing Alliance)은 "호주부동산 가격폭등이 무주택자의 숫자를 늘리고 있다"면서 "주거비 과다지출로 인한 '주택스트레스'가 결국은 1만여 명에 달하는 전에 없던 홈리스를 양산했다"고 당국의 무책임한 주택정책을 비판했다.

주택가격의 폭등은 서부호주 출신의 킴 비즐리 노동당 총재의 개인생활에도 타격을 주었다. 그는 야당대표의 정치활동을 위해 올해 초 시드니에 주택을 구입할 예정이었는데 터무니없이 오른 집값 때문에 결국 방 두 개짜리의 아파트를 셋집으로 얻어야 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호주부동산 거품 붕괴 조짐

호주도시개발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호주에서 부동산투기를 통해서 자본이득을 챙기는 그룹은 전체인구의 10% 미만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국경을 넘나들면서 투기를 일삼고 있는 국제부동자금이 가세해 호주의 부동산 가격상승을 부추겼다는 분석결과도 나왔다.

그 결과 견실한 중산층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호주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빠르게 심화됐다. 한 예로, 시드니에서 주택소유자와 세를 사는 사람 간의 재산 차이가 무려 43만 호주달러(약 3억4천만 원)에 이른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던가. 천정부지로 치솟던 호주의 부동산 가격은 지난해부터 주춤하기 시작했다. 호주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04년 호주 전국의 주택가격 상승률이 0.4%를 기록해 1996년 이래 최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채널7의 <썬 라이스> 프로그램은 "거주 목적이 아닌 투자 목적의 주택 가격이 정점보다 10% 가량 하락했다고 알려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하락 폭이 훨씬 더 큰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 이유는 실질적인 부동산 거래가 거의 없는 상태이고, 그나마 급매물로 나온 부동산들이 최고 20%까지 할인되어 거래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한 노인이 매물로 나온 주택의 광고판을 보고 있다
한 노인이 매물로 나온 주택의 광고판을 보고 있다 ⓒ 윤여문
<썬 라이스>는 호주 부동산 가격이 하락세에 접어든 이유를 연방준비은행의 공격적인 이자율 정책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2004년 11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0.25% 금리인상을 단행해서 부동산 시장을 급랭시킨 연방준비은행은 2005년 3월, 집값이 꿈틀거릴 조짐을 보이자 또다시 0.25%를 올렸다. 현재 호주 기준금리는 5.5%로 미국의 3.25%, 캐나다의 2.5%보다 훨씬 높은 편이다.

결국 지난 2000년대 초반 연방준비은행이 이자율을 낮추면서 부동산 가격이 뛰기 시작했고, 2004년에 이자율을 높이면서 부동산가격의 하락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ANZ은행 케이티 딘은 "연방준비은행이 부동산 시장의 저승사자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 전세계 부동산 거품 깨기의 신호탄?

연방준비은행의 이 같은 극단적 조치는 부동산 개발업자 및 경제계로부터 "최근 5년간 90% 가까이 오른 부동산 가격이 거품붕괴로 이어질 경우, 금융계가 악성부채에 시달리면서 부실화될 것"이라는 반발을 받고 있지만 부동산 거품 제거에 일정부분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이달 초 "과대평가된 호주부동산 가격이 붕괴 조짐을 보이면서 꽁꽁 얼어붙었다"면서 "호주의 사례가 부동산 버블이 꺼지는 전 세계적인 신호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연방준비은행 측은 호주의 낮은 실업률이 금리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완화했다고 보고 있다. 29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5.0%대의 실업률 덕에 부동산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경기 급랭현상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 또 부동산경기 과열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우려했음에도 인플레이션이 적정수준인 연 2~3%로 유지됐던 것도 연방준비은행의 금리인상 행진에 힘을 보탰다.

한편 연방준비은행의 금리인상 행진은 애꿎은 서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이자율이 낮을 때 무리해서 주택을 구입(심한 경우는 95% 이상의 담보대출까지 이루어졌음)한 서민들이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서 올린 이자율 때문에 빚더미에 오르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 실제로 일부서민들의 경우 채무불이행(디폴트)으로 인해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하고 있다.

또 <뉴욕타임스>는 7월초, 지난 1986년 이후 부동산 가격이 310%나 올랐음에도 노동자들의 임금이 128%밖에 오르지 않았던 불균형이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의 연착륙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연방준비은행으로부터 시작된 부동산 시장 거품 깨기 행진은 지방정부로도 확산되며 번지고 있다. 뉴사우스웨일스(NSW) 주 노동당 정부는 부동산 매각세와 투자부동산 토지세를 신설, 부동산 투자이득 환수에 나섰다. 부동산 매각세와 투자부동산 토지세에는 엄격한 누진세율이 적용돼 선의의 부동산 구입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했다.

한편 호주의 부동산 시장이 하강국면에 접어들자 보수집권당인 연방정부는 NSW주 정부에 부동산 매각세의 폐지를 권고했고, 일부 개발업자들은 투자부동산 토지세를 폐지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봅 카 NSW주 총리는 "부동산투기로 부를 축적하는 풍토가 서민에게 상처를 주고 사회정의를 해친다"는 비판과 함께 두 종류의 세를 폐지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답변을 마무리 하면서 다음과 같은 전국무주택자동맹의 주장을 덧붙였다.

"호주의 최하위 소득층 20%가 소득의 절반 정도를 주거비에 지출하면서 '주택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의 숫자가 25만 명에 이르고 있는데 오는 2020년에는 1백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누가, 누구를 위하여 부동산 붐을 부추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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