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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에안에서
응에안에서 ⓒ 고기복
이 땅에서 2~3년 혹은 그 이상씩 일하다 돌아간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 베트남 출신 귀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현지 실태조사를 지난 6월 20일부터 7월 2일까지 실시하였다.

그 기간 동안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하면서 들었던 가장 흔한 말은 “빚내서라도 이 나라 뜨고 싶어요”라는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그 말이 나에게는 ‘죽는 한이 있어도 이 나라를 떠서 해외취업 하고 싶어요’하는 말로 들렸다. ‘죽더라도….’

“빚내서라도 이 나라 뜨고 싶어요.”
“가짜 여권을 만들더라도 빨리 한국으로 가고 싶어요.”
“불법 체류하다가 잡혀 강제 출국된 사람들에게 5년 동안 입국을 제한한다는 건 빚더미에 얹혀 죽으라는 말과 똑같아요.”

베트남의 국부인 호치민의 고향 응에안(Nghe an)에서 만난 귀환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재입국하여 일하고 싶다는 그들의 속내를 다들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나는 그 중 장기체류했던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다들 5년 넘게 한국에서 일했었는데, 그동안 벌어놓은 돈이 없나요? 왜 그렇게 기를 쓰고 한국에 다시 가려고 하지요? 나 같으면 부모 친지가 있는 땅에서 살고 싶은데”라고 물어 보았다.

나의 질문에 지난 4월 친구의 밀고로 출입국직원들에게 단속되어 강제 출국되었던 통과 타오를 비롯하여 같은 자리에 있었던 여남은 명의 대답은 너무나 쉽고 간결했다.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돈 없어요” “베트남에 일 없어요”였다.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사출공장에서 5년 가까이 일한 바 있던 통과 타오는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하여 삼년을 채운 후, 줄곧 같은 공장에서 성실하게 일했던 사람들이었다.

호치민 탄생 기념다리 위의 타오와 로안
호치민 탄생 기념다리 위의 타오와 로안 ⓒ 고기복
나는 이들의 초대를 받고 1시간 반이 넘게 오토바이 뒷좌석에 동승하여 그들의 집을 방문했다. 그들의 고향은 남강(Nam)이라 불리는 큰 강을 끼고 있었는데, 포장되지 않아 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와 베트남전쟁 당시 피폭 흔적을 아직까지 엿볼 수 있는 ‘호치민 탄생 기념다리’를 지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동네에 들어서자 여기 저기 소들이 퍼질러 놓은 소똥냄새가 바람을 타고 코를 간질이는 게 그다지 싫지 않았다. 그런데 그 비포장도로에서 만난 아이들 대부분은 신발을 신지 않고 있었는데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나다니는 것이 흡사 정지용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광경이었다.

호치민 탄생 기념다리 위에서 본 타오의 고향 하띤
호치민 탄생 기념다리 위에서 본 타오의 고향 하띤 ⓒ 고기복
가장 먼저 방문한 타오의 집은 논과 논 사이를 이리저리 돌고 돌아 대나무가 울창한 대나무 숲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마당 한 편에는 수도 대신 펌프가 있었고, 달랑 한 채 있는 집안에는 가구라고는 영정이 차려진 제사상 하나와 부부가 생활하기에는 너무 좁아 보이는 작은 침대가 전부였다. 까치발을 하고 손을 위로 뻗자 천정이 손이 닿았다. 잠시 앉아 타오의 아내가 내주는 차를 마시는 동안 바람이 거칠게 분다 싶더니 곧 전기가 나갔다.

귀환 이주노동자 사전 귀국 준비
중부 베트남 지역 설문조사 결과

이번 설문조사와 인터뷰는 베트남 전역을 세 개 권역으로 나눠 실시됐다. 세 개 권역은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북부지역, 응에안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부베트남, 호치민을 중심으로 한 남부지역이었다.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 바로는 각 지역이 큰 편차 없이 동일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조사를 통해 이주노동의 문제가 어느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닌 전 지구적 문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체설문대상자 100명중 강제 출국된 이들이 많은 중부베트남(응에안) 지역 34명에 대한 귀국준비와 관련한 결과를 살펴보면, 이주노동자들이 귀국을 위한 계획은 갖고 있었으나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이유로, 65%인 22명이 자금부족을, 23.5%인 8명이 갑작스런 출국(강제출국)을 이유로 들었다. 한편 귀국을 위한 계획조차 세우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88%인 30명이 갑작스런 출국과 준비방법을 몰라서라고 답했다.

이어 귀국을 위한 준비로 출국하지 않은 친구에게 어떤 것을 권하고 싶느냐는 질문에는, 59%인 20명이 저축을, 32%인 11명이 직업기술 습득을 권하고 싶다고 했다. 이러한 귀국을 위한 준비로 가장 많은 사람이 응답한 저축액에 대해서는 34명 중 91%인 31명이 부족하다고 답했고, 그 이유에 대해 32%인 11명이 가족의 생활비로 지출하느라 저축할 수 없었다고 답한 반면, 23.5%인 8명은 가족과 친지의 송출비용을 부담하느라 저축할 수 없었다고 응답했다.

설문에 응한 이들이 귀국을 준비하면서 희망하는 직업교육 1순위로는 56%인 19명이 한국어 습득을 들었고, 그 다음으로 홈인테리어, 인터넷, 컴퓨터교육을 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주노동의 순환, 즉 해외취업에 대한 귀환이주노동자들의 강한 욕구는 사전 준비되지 않은 출국이 상당부분 기여한다는 것을 설문조사 결과가 말해 주고 있다. / 고기복
촛불을 켜는 사이 타오는 누누이 말하지 않아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얘기들을 열심히 늘어놓았다.

“우리 가족 많아요. 형님 있어요. 동생 있어요. 삼촌 있어요. 조카들 있어요. 5년 동안 송출회사에 빚 갚고 가족들 나눠주느라 돈 모으지 못했어요.”

5년 동안 한국에서 일하면서 매달 평균 400달러를 송금했다는 그가 돈을 모으지 못한 이유는 가족과 친지 부양이라는 짐이 그의 어깨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타오의 고향 마을은 매해 8월이면 강이 범람하여 수해를 당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마땅한 특산물이 있는 것도 아닌지라,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다들 고향을 뜨고 싶어 한다고 했다. 타오의 집을 이어 방문한 통, 룩, 로안, 황반의 집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방문하는 집마다 외지에서 사람이 왔다고 반갑게 내미는 손이 몇인지 헤아리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

그들은 모두, 선조들이 살았던 땅에서 마지못해 살고 있음을 하소연했다. 빚이라도 얻어 가족 중에 한 명이라도 해외로 취업을 보내고자 한다는 말이 쉽게 납득이 갔고,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삶은 고단해 보였다.

설문조사 중에 가족의 해외취업비용을 부담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전체 응답자 중, 단 한 명을 제외한 97%가 긍정적인 답변을 한 것만 봐도 그들의 해외취업 욕구가 어떠한 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뜨고 싶다는 그들의 소망은 쉽게 이뤄질 것 같지 않다.

강제 출국되었거나, 귀국한 지 만 1년이 지나지 않은 미등록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 출신들의 한국행에 대한 의지는 보는 이마저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더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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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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