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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두 번째 금강산 기행입니다. 말로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첫사랑 같은 금강산 기행을 두 번이나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참 기분 좋은 일입니다.
첫 번째 금강산 기행은 모든 것이 '첫'이라는 관형사가 붙어 나의 첫 북녘 땅 밟기, 첫 북녘사람 만나기, 첫 북녘에서 식사, 제게 이다지도 처음인 것이 많은 게 아마 처음인 것 같았습니다. 특히 구룡연을 등반하며 만난 북측의 젊은 안내원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동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서로 나이를 물어보며 나는 27살, 자기는 28살, 나이가 아랫집 윗집이니 말을 놓자며 수줍게 웃던 미소, 부드럽게 굽어진 생머리에, 눈매 서글서글하고 똑 부러지는 말솜씨 참 다부졌습니다. 이번 기행에서 그 안내원 동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며 설레어 하는 제 모습에 마치 첫사랑 그녀를 만나기라도 하는 듯해 멋쩍기도 했지요.
두 번째 기행은 저에게 또 다른 설렘과 아름다움을 남겼습니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두살배기 어린 아이부터 아흔한 살의 선생님까지, 이제 막 통일운동을 시작하는 젊은 청춘부터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자신의 인생역정으로 살아온 노통일투사까지, 노점상 아줌마 아저씨들부터 강원도 농사꾼까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이라는 울타리로 묶인 범민련남측본부 금강산 기행이었습니다.
범민련은 유명한(?) 이적단체이기에 90년대 통일운동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때로는 빨갱이로, 때로는 간첩으로 몰리며 민간통일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범민련이라는 이름 하나로 수배가 되고, 옥살이를 하는 온갖 시련과 아픔을 겪어왔습니다.
2000년 6·15공동선언이 발표되고 많은 이들의 금강산 관광이 자유로워졌지만 유독 범민련만은 거기에서 제외 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시인이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곳곳에 38선이 있다고 말했듯이, 사랑도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농담어린 말처럼 통일운동에도 친북친남 합법불법의 모호한 선들에 의해 또 다른 분단의 아픔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어 범민련남측본부 금강산 기행단이라는 이름으로 200여명의 사람들이 당당히 군사분계선을 넘는 순간 저마다 느끼는 감회는 그동안의 범민련의 역사가 주마등처럼 흘러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일행을 태운 셔틀버스가 숙소 앞에 도착하자 연세 지긋한 어느 선생님께서 남측CIQ를 지나 북측CIQ까지 오는데 한 시간이면 오는 길을 60년이나 돌아왔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에 주변 사람들까지 숙연해지기도 하였습니다.
우리의 기행은 군사분계선을 넘기까지가 분단이었고 기행을 시작하면서 통일이었습니다. 기행단은 금강산 구석구석을 다니며 천하제일명산을 눈 속, 마음 속 깊이 담기 위해 이리저리 분주하였고, 북측 안내원들과 주고받는 정다운 대화 속에 웃음꽃이 만발했습니다. 이렇게 만나니 좋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우린 하나인데 왜 이다지도 오랜 시간이 걸린 걸까요.
이번 8월 15일에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민족대축전' 행사를 치르기 위해 북에서 또 많은 손님들이 서울로 온다고 합니다. 자주 북으로 가고 자주 남으로 오다 보면 38선에 있는 그 철조망 곧 걷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들 마음 속에 있는 분단의 찌거기도 하나씩 거두고 합법과 불법의 낡은 틀을 뛰어 넘어 다같이 '하나'가 되겠지요. 올해는 반드시 범민련이 합법화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등산을 참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등산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오르는 등반길입니다. 자신의 한평생을 사심없이 통일운동에 바쳐온 선생님들과 오로지 한반도의 평화적인 통일을 바라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한 금강산 기행은 천하제일 명산과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기행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범민련 합법화 과정의 일환으로 범민련남측본부 금강산 기행은 지난 7월 15일부터 17일까지 2박 3일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사진은 범민련남측본부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