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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화면 촬영

MBC 보도국에서 7개월간 보도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던 이상호 기자의 이른바 'X파일'이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MBC는 22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97년 안기부 내부보고용으로 만들어진 삼성 불법대선자금 도청테이프의 핵심내용을 전면 공개했다. 또 도청테이프에 등장하는 홍석현(전 중앙일보 사장) 주미대사와 이학수(당시 삼성그룹 비서실장)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의 실명을 적시했다.

이어 삼성 대선자금을 받은 당시 신한국당 대선후보 이회창씨, 돈을 전달한 창구로 지목된 이 후보 고교 후배 서상목씨와 중앙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고흥길씨 이름도 공개하고 그들의 반응도 보도했다. 실명을 적시하지 말라고 결정한 법원의 가처분 결정조차 뒤엎은 '파격'이다.

또 삼성그룹이 홍 대사를 통해 당시 야당 후보인 김대중 후보에게 접근하려 했다는 것과 함께 삼성의 대선비자금 제공 뒤에는 이건희 회장이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MBC가 보도한 문건 내용이 사실이라면 홍 회장은 삼성그룹과 이건희 회장의 정계 로비스트이자 불법비자금 '배달부'였던 셈이다.

MBC "계획대로 됐다면 이회창씨에게 지원된 자금 100억이 넘을 것"

ⓒ MBC 화면 촬영
ⓒ MBC 화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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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는 "문건에 나온 홍 사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장의 계획대로 됐다면 이회창씨에 지원된 자금은 100억원이 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MBC 보도에 따르면, 신한국당 경선 전 홍 사장이 이 실장에게 "그쪽(여당후보측)에서 안을 짜가지고 오겠지만 한 15개정도 요구하지 않을까?"라고 말했고, 경선 후에는 "30개 줬는데 다 쓴 것 같다, (또다른 측근에게) 18개 전달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미지 만드는 작업에 11억원이 소요된다"고 하자 이 비서실장이 그자리에서 "그러지요"라고 즉각 승락했다고 MBC는 밝혔다.

한달 뒤 이 실장이 "회장님 방침"이라며 "추가 지원을 위해 30개를 더 주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고 MBC는 보도했다. 여기서 '회장님'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화에서 오가는 단위인 '개'는 '억'을 가리킨다.

대화에서 오간 돈을 모두 합하면 총 104억이 나온다.

MBC는 "서상목씨와 고흥길씨가 맡았던 정치자금 창구는 선거전이 본격화되면서 이회창씨 친동생 이회성으로 일원화됐다"면서 "(홍 회장은) 둘이서 15개를 운반했고 30개는 무거워서 삼성비서실 임원과 자신, 이회성이 백화점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뉴스시간 3분의 2 할애
이상호 기자가 직접 테이프 들고 나와

ⓒMBC 화면 촬영

<뉴스데스크>는 이날 'X파일' 보도에 뉴스시간의 3분의 2 이상을 할애했다. 첫 꼭지는 '문제의 안기부 도청 테이프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면서 시작됐다. 리포트는 이 사건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취재한 이상호 기자.

이 기자는 <뉴스데스크> 스튜디오에 직접 출연, "1시간30분짜리 도청 테이프에는 당시 이학수 삼성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의 대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또 테이프 입수경위에 대해 "지난해 말 '삼성 비자금 건인데 보도할 수 있겠느냐'는 제보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 제보자는 전 안기부 직원과 친분 있는 사람이고, 이 기자는 미국을 두 번 갔다 온 뒤 올해 1월초 녹음테이프를 입수했다는 것.

그러나 그는 "사안이 사안인지라 사실확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목소리가 일치하고 편집 조작된 흔적이 없음을 확인한 뒤에야 보도여부를 논의하게 됐다"며 MBC가 오랫동안 보도하지 못한 이유를 해명하기도 했다.

홍석현 "여와 야에 양다리 걸치기 해야한다"

ⓒ MBC 화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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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는 홍 대사가 당시 야당후보인 DJ에게도 접근했다고 밝혔다. MBC는 "당시 홍 사장은 97년 9월초 야당후보였던 DJ를 찾아간 사실을 이학수 부회장에게 보고했다"면서 "홍 사장은 DJ가 회장께 편지를 보내왔다며 곧 보내겠다고 말한다"고 보도했다. 이어 "편지는 단지 호의에 대한 감사내용일 것 같다고 본인의 생각을 나타냈다"고 전한 MBC는 "여기서 '회장의 호의'는 정치자금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해석했다.

MBC는 "김 전 대통령과 홍 사장 사이에는 당시 해당 언론사 부국장이었던 모씨가 중개역할을 했다"면서 "홍 사장이 언론사 사주임을 이용해 삼성과 여야간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MBC는 "당시 홍 사장은 여야 대선후보를 번갈아 만나며 선거전략까지 조언했고 자신과 중앙일보 간부들이 여러 형태로 정치에 관여했음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또 "홍 사장은 여와 야에 양다리걸치기를 해야 한다며 중앙일보의 또 다른 간부가 야당 후보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MBC는 "대선 두달 전에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측근이 중앙일보 고위 간부를 찾아와 이회창 후보를 교체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자 이 간부가 반대했다고 홍 사장은 말했다"고 전했다.

또 MBC는 당시 홍 사장이 검찰 최고위급 간부에게 '떡값'을 돌렸다고 주장했다.

화면에 <월간조선> 비춰

ⓒ MBC 화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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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당시 홍 사장은 다른 언론사가 야당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서 강도높은 취재에 들어갔다는 언론계의 내밀한 정보까지 삼성측에 제공했다고 MBC는 보도했다. 그리고 홍 사장의 이같은 말은 나중에 상당부분 그 언론사 지면에 반영이 됐다고 MBC는 주장했다.

MBC에 따르면 "이 언론사의 최고위층은 누가 되든 김대중이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를 위해 가장 큰 약점인 건강문제를 거론하기로 했다"고 홍 사장이 전했다는 것. 두 사람의 대화에 언급된 문제의 언론사가 다음달 발행한 잡지는 DJ의 처방내역을 분석해 당뇨와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을 DJ가 앓고 있다고 보도했다고 MBC는 덧붙였다.

MBC는 이를 보도하면서 해당 언론사를 실명으로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화면에 <월간조선>을 보여줌으로써 <조선일보>임을 나타냈다. MBC는 97년 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 보고서를 근거로 "유독 두 신문의 이회창 후보 편향보도가 심했으나 이 언론사는 '사실과 다른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고 덧붙였다.

MBC, 방송금지가처분 이의신청서 제출

MBC는 22일 '9시 뉴스데스크'에서 법원에 방송금지가처분 결정을 취소할 것을 요구하는 이의 신청서를 제출했다.

MBC의 이의신청 근거는 세 가지다. 첫째, 가처분 필요성이 소멸됐다는 것이다. MBC는 홍석현 주미대사와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스스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함으로써 오히려 녹음테이프의 대상자가 누구인지 이미 다 알려졌을 뿐 아니라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MBC가 보도를 못하는 동안 다른 언론에서 경쟁적으로 보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는 과잉처분이라는 것. MBC는 진상규명을 위해 대화 내용은 빠질 수 없는 부분인데도 대화 내용을 직접 전달하지 못하게 하고 인용보도조차 금지한 것은 과잉처분이라고 이의 신청 근거를 제시했다.

셋째, 통신비밀보호법상 개인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알 권리 및 언론의 자유도 중요한 헌법적 권리라는 것이다. 불법도청 가능성이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방송금지 근거가 되지 않으며 MBC가 도청한 것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MBC는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아 억측이 난무하는 상황을 마무리짓고 테이프 내용을 전면 공개해 공론의 장에서 국민과 사법부의 심판을 받게 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 김덕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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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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