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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한가운데 숯불에 잘 구운 노릇노릇한 삼겹살이 놓여지면 모두들 입이 터져라 밀어 넣는다. 조용하다. 남편은 잘 구워진 고기를 상으로 나르랴, 다시 숯불에 고기 얹으랴, 자르랴, 정작 남편은 고기 냄새만 맡는다. 급기야 남자들은 소주병을 들고 아예 숯불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는다. 쉴 새 없이 부딪히는 소주잔 소리가 경쾌하다.
싱그러운 상추 잎에 잘 구운 삼겹살을 얹고 그 위로 마늘과 풋고추와 쌈장이 곁들여진다. 입이 터져 나갈 듯한 여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소한 일상사로 수다를 떨기에 입이 열개라도 부족하다. 접시 깨지는 소리가 연신 들린다.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시원한 밤바람 속을 가르며 뛰고 구른다. 숨느라 분주하고 찾느라 바쁘고 찾았다고 좋아한다. 까르르 넘어가는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이 여름밤의 허공으로 흩어질 때면 어느새 총총한 별은 마치 쏟아질 듯하다.
소름이 돋는 서늘한 바람과 쏟아져 내릴 듯한 총총한 별과 구수한 냄새를 피우며 잘 익어가는 숯불위의 삼겹살. 우리 모두에게 하루하루는 참으로 고단한 현실이었다. 오로지 앞만 보고 질주를 했었다. 숨 막히는 삶이었다. 하지만 그 여름밤만은 고단한 현실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고 고개 돌려 옆을 바라 볼 수 있었고 숨통 틔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비록 하루 밤으로 끝날 짧은 행복이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남동생 네를 시작으로 이어 시 동생네, 사촌시숙 네, 또 남편의 친구들…. 줄줄이 우리 집을 찾았다. 집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우르르 욕실로 들어가 얼음 같은 차가운 지하수 물로 목욕들을 해댔다. 소름이 돋는다면서도 그들은 욕실에서 나올 생각들을 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 그들이 욕실에서 나왔을 땐 입술이 새파랬다.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 삼겹살이야 뭐 그리 특별한 음식도 아니건만 마당에서 숯불로 구워 먹으니 그게 좋았던 것 같다. 거기에 밤이 새도록 웃고 떠들어도 소음공해를 우려해 이웃들을 염려 할 필요가 없었으니 그 또한 좋았었던 것 같다. 옹기종기 마당에 모여 앉은 건 비단 우리 집만이 아니라 앞집도 뒷집도 온 시골동네가 똑같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적은 곳을 찾을 필요가 없고, 바리바리 짐을 꾸릴 필요가 없고, 바가지 요금에 인상 쓸 필요가 없고,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도로 위에서 귀한 시간을 갑갑함에 허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것이 그들이 우리 집을 찾는 이유라고 했다. 더불어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우리 집에서의 하룻밤은 그저 내 집에서 쉬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좋다고 했다.
그들이 떠나고 그들이 남기고간 흔적들을 치우느라 땀으로 멱을 감을 때쯤이면 어김없이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린다. 잘 쉬었다 가노라고, 고마웠노라고, 고단했던 일상을 말끔히 지우고 새로운 내일을 위해 충분히 재충전을 했노라고.
하지만 정말 고마운 건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지친 그들에게 보잘 것 없지만 뭔가를 해주었다는 기쁨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의 내일이 하룻밤의 휴식으로 충분히 재충전 되었다는 건 물론 그들의 인사 치레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 인사 치레조차도 나는 행복하다. 단지 그들이 우리 집을 찾아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꺼이 행복하다.
여름이라는 한 계절 속에 하룻밤이야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지만 그 밤에 우린 충분히 정을 나눌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충분한 정으로 남은 여름의 타는 듯한 갈증을 또한 충분히 해갈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정이란 건 힘든 세상사 매 순간순간 쓰러지는 누군가를 단번에 벌떡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삶의 힘이기 때문이다.
올 여름. 서늘한 바람과 총총한 별과 구수한 숯불구이 삼겹살로 정을 나누느라 나는 또 많이 행복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