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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 독살사건
조선왕 독살사건 ⓒ 다산초당
영화와 소설로 많은 인기를 얻었던 작품 <영원한 제국>에서 조선의 23대왕 정조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외롭게 맞서는 고독한 개혁 군주의 모습을 표방한다. 실학을 중시했고 사회 개혁을 통하여 근대화의 토대를 세우는데 앞장섰던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후세의 사가들에게 많은 의혹을 남긴 채 미스터리로 남았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동시에 조선의 개혁 플랜은 정지되었고 수구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조선을 사실상 몰락의 문턱을 넘어섰다는 것이 역사적 평가이다. 역사에 가정이라는 것만큼 부질없는 일도 없다지만, 마치 '나비 효과'처럼 작은 사건 하나가 후세의 역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한 '음모 이론'은 언제나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되어왔다.

<조선왕 독살사건>(저자 이덕일/ 다산초당)은 '만약에…했더라면'이라는 역사적 가설에서 출발하는 전형적인 음모 이론의 이야기이다. 조선 말기의 개혁군주였던 정조를 비롯하여, 소현세자와 고종 황제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모두 조선의 군주이자, 후세에 독살설의 주인공으로 심심찮게 거론되던 인물들. 이 책에서는 '독살'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조선왕조 500년 동안 권력투쟁과 파벌싸움에 휩쓸린 역대 군주들의 어두운 그늘을 조명한다.

막강한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군주를 감히 죽이려하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책에서는 그것을 자신들의 이권을 수호하기 위해 저항하는 수구 기득권 세력이라고 정의 내린다. 우리가 익숙한 TV사극인 <용의 눈물>이나 <제국의 아침>등에서 즐겨 묘사되듯이 왕정 시대의 정치사에는, 언제나 왕권의 강화와 통치체제의 안정을 이루기 위하여 신하들과의 지난한 권력투쟁의 과정이 있었다.

<조선왕 독살사건>에서는 개혁을 표방했던 군주들의 시점에 서서 무너져가는 조선왕조의 부활시키려했던 정조와 소현세자의 에피소드 등을 통하여, 이에 저항하는 기득권 세력과의 대립 과정을 세심하게 묘사한다. 정사와 야사를 넘나들며 음모의 근원을 추격하는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몰랐던 조선 시대의 어두운 정쟁의 흔적이 담겨있다.

겉보기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만인지상의 절대권력이라 할지라도, 그 권력으로 인하여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이 정적의 공포로부터 자신을 보호해나가는 것이 군주의 숙명. 특히 기득권 세력에 저항하여 개혁을 부르짖는 군주일수록 그에게 가해오는 위협은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오늘날에도 미국에서 암살의 미스터리가 완전히 풀리고 있지 않은 존 F.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역시 그의 노선에 반대하는 미국의 기득권 보수세력이 배후에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만 있을 뿐, 아직까지 진실은 베일에 싸여있다.

책이 제시하는 바에 따르면 조선왕조 27명의 군주 가운데서 독살설로 살해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람은 모두 7명, 여기에 소현세자까지 포함하면 8명이 된다. 일례로 소현세자의 경우, 독살이 되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당시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건강이 좋지않아 어의에게 진료를 받고 난후 며칠 지나지 않아 갑작스럽게 사망했는데, 눈코입 등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리고 얼굴이 검은 색으로 뒤덮였는데 증세가 흔히 보던 것이 아니고 끝내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다.'고 되어있다.

사가의 기록은 후세에 절대권력을 지닌 임금이라 해도 볼 수 없다는 조선시대의 엄중한 실록 보존을 감안할 때, 당시의 사가는 결국 소현세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독살의 가능성을 넌지시 흘리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소현세자는 인조의 아들로 병자호란 이후 봉림대군과 함께 볼모로 잡혀갔으나 청나라에서 생활하면서 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귀국 이후, 개혁 패러다임을 표방하던 그의 노선은 오히려 아버지 인조와 보수세력에게 정적으로 부상하여 경계의 대상이 되었고, 의문스러운 죽음이후 그의 아내인 세자빈과 세손마저 아버지인 인조의 손에 무참히 도륙되는 후일담은 독살설에 대한 무게를 높여준다.

과연 벌써 수백 년이나 지금 현재에서 과거의 음모이론을 다시 뒤돌아봐야만 하는 이유는 뭘까? 과거에 대한 호기심도 하나의 정답이 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역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다.

책에서는 왕의 독살 이후 정권을 잡았던 세력들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잘못된 기득권 세력의 반동이 역사를 어떻게 후퇴시키는지를 준엄하게 지적한다. 약간은 어둡고 음울한 과거사에 대한 탐색을 통하여 우리가 교과서에 배우지 못하는, 미처 알려지지 못한 우리 과거사의 진실을 규명해가는 것은, 역사의 실책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우리 스스로의 자정 노력이다.

조선 왕 독살사건 1 - 문종에서 소현세자까지

이덕일 지음, 다산초당(다산북스)(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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