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적다고 한 건 중국설날인 '춘절' 바로 후라 사람이 생각보다 적었다는 뜻이지 빈자리가 있다는 말은 아니다. 배낭 올릴 공간도 없다. 쓸데없이 배낭들고 왔다갔다 하다 결국 화장실 옆 쓰레기 버리는 곳에 걸터앉을 만한 공간을 발견했다. 미리 앉아있던 아가씨에게 양보를 구하고 자리를 잡았다.
쓰레기 국물로 넘쳐나는 공간에 차마 배낭을 내려놓고 싶지 않았지만 어쩌라 사람이 편해야지. 배낭은 더러운 바닥에 방치했다. 졸음, 추위, 배고픔,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서글픔까지 겹쳐 글자 그대로 비몽사몽간에 '회화(懷化)'역에 도착했다.
(필자주: 표가 없을 경우, 즉 입석표인 무좌를 사신 경우, 객실담당 승무원에게 말씀하시거나, 식당칸 쪽으로 가시면, 표를 침대칸이나 좌석칸으로 바꿔주는 곳이 있습니다. 또 식당칸을 좌석으로 이용하실 수도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 졸문 '중국기차에 자리 없으면 식당칸으로!'를 봐주시길 바랍니다. 회화로 가는 기차표는 http://www.0743.net/wj/skb.htm 에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역 근처에 지도 파는 데가 없다. 네 군데 확인하고 포기. 식당아줌마에게 물어보니 가깝다고 한다. 서버스터미날에서 봉황 가는 버스가 있고, 버스로는 1위안이고 택시타면 5위안(기본요금)이란다.
(필자주: 꼬옥~ 교통편이나 가격은 미리 확인하시는 것 잊지 마세요.)
버스를 기다려도 안온다. 7시 정도는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안다니나? 택시타고 가기로 결정. 택시기사에게 슬쩍 물어보니 '10위안' 나온다고 한다. '안타!' 도로 내렸다. 다시 다른 사람에게 가서 물어봤다. 걸어가도 된단다. 한 사오백 미터 정도라고 한다.
흠. 버스 한정거장정도인가 보다. 생전 처음 가는 길을 걸어갔다. 큰 길이 나오길래 간이판매아저씨에게 물어보니 마침 '마양'가는 버스안내양 겸 차장에게 알려준다. '이 사람 봉황가!' 타란다. 이럴 때 얼른 타면 내릴 때 피곤해진다.
'봉황 을매?'하니 '내가 사람 속일 것 같냐?'며 개구리 본 뱀눈에서 아기 보는 엄마 눈으로 변한다. 이 사람아! 당신 얼굴에 다 쓰여 있어! 중국은 이렇다. 외지인 쉽게 말하면 같은 사투리를 안 쓰는 모든 사람은 속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을매?' 다시 물었더니 '38위안' 달란다. '안타!' 다시 길물어서 터미널도착. 화장실부터 갔는데 1위안이나 받는다. 비싸긴. 투덜투덜. 우리 동네(제가 있었던 산동 위방)는 2마오(0.2위안) 비싸야 5마오인데 흘! 본전 뽑기 위해 평소부터 노리고 있던 화장실 촬영.
(필자주: 제 졸문 '중국에서 화장실 가기가 두렵다고요?'를 참조하시면 '회화서버스터미널'화장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안내판에는 22위안이라고 적혀있는데 '31위안'달란다. '춘운요금'(춘절전후에 올라가는 요금)적용인가? 적용하려면 전국 다 하던가. 지역마다 다르니.
2시간 내내 경적을 울리며 그 험한 산길을 속도한번 안 줄이는, 이제 중학교나 갓 졸업한 것 같은 소년처럼 보이는 총각이 운전수다. 커브길에서는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것 같다. 이럴 때는 속 편하게 잠자면 되는데 경적소리하고 쏠리는 몸과 시도 때도 없이 넘어지는 배낭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
결국 배낭은 검은 색이 오히려 깨끗하게 느껴질 정도로 더러운 바닥에 눕혀 놨다. 거의 배멀미 수준의 차멀미가 나는 운전 솜씨 때문에 잠도 못잔 내 몸 전부가 망가지는 기분이다. 거기다 중앙선을 추월차선으로 생각하는지 시도 때도 없이 추월에 급정거에 정말 시골로 내려갈수록 운전을 붉은 피로 넘치는 B급 공포영화처럼 한다.
맞은 편에 역시 중앙선 넘어 추월하는 차라도 나오면 척추를 타고 경악과 전율이 다 흐른다. 내가 타본 몇 안되는 롤러코스터도 중국 시골버스만한 스릴을 준적은 없다. 내가 본 수많은 공포영화 중에서도 이런 공포를 준적이 없다. 하느님! 하나님! 부처님! 알라님!
봉황도착. 유스호스텔 뽑아놓은 것이 있어 꺼내보면 되는데 배낭열기가 귀찮아 무조건 걸었다. '청년여사' 발견. 길을 서너 번 잃고 다리를 왔다갔다 두 번 쯤 한 후에 결국 찾았다. '국제'라고 앞에 안 붙은 건 생각도 안하고 갔는데, 문이 잠겨있다. '문 잠긴 유스호스텔'은 생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문이 따로 있나 하고 괜히 한바퀴 다시 돌았다.
문을 두드리니 아가씨 하나가 칫솔 문 채 열어준다. 분위기가 영 아니다. '국제청년려사(유스호스텔)'맞냐니까 아니란다. 이런. 배낭 메고 한참 헤매다 결국 배낭열고 자료를 꺼내 확인하니 '홍교 동관문' 옆이라고 써있다. 물어물어 5분 만에 도착. 왜이리 미련한건지 게으른 건지.
6인실 두개 합쳐진 12인실 이층침대 아래 칸 20위안, 난방 하라고 갔다 준 전기담요 플러그가 콘센트하고 너무 안맞아 헐렁하다. 휴우~ 이런 일을 어디 한두 번 겪어봤나. 배낭에서 비상용 박스테이프를 꺼내 대충 땜질.
몇십 분, 아니 몇 분만이라도 버텨다오. 기원하며 점심 먹으러 갔다. 오늘도 점심은 쌀국수다. 계림 쌀국수와 다르게 갖은 고명(고기종류)를 올려주고 5위안 받는다. 계림 쌀국수의 깔끔한 맛이 그리워진다. 계림에서 멀어질수록 중국식으로 기름이 많아진다. 군밤 반근 사서(4위안) 비 때문에 유스호스텔에서 불 쬐고 있는 중국 여행객들과 같이 먹었다. 친해지는 데는 먹는 것이 제일 효과적이다. 중국여행이야 웬만한 중국여행객보다 많이 하고 있지 않은가? 여행에 관한 걸로 짧게 대화.
앞의 일본 노트북도 아닌 일본 노트패드, 타자판이 없고 펜으로 찍거나 쓰는 형태의, 그 비싼 걸 들고, 위성위치확인시스템인 GPS라도 달린 건지는 몰라도 전자지도로 자기가 본 여행코스와 여행지를 알려준다. 음매! 기죽어! '카스라'인지 중국 서북쪽 끝을 남경에서 출발해서 두 번이나 갔다 왔단다. 음매! 기죽어! 휴우~ 정말 돈 많은 중국인은 웬만한 한국사람보다 훨씬 잘쓰고 다닌다. 게다가 나는 웬만한 한국사람보다 돈이 없지 않는가!
곁불 쬐고 있으니 졸음이 온다. 날샌 걸 보충하기 위해 낮잠. 헐렁한 전기담요 플러그 때문에 얼마 자지 못하고 추워서 깼다. 한 시간이나 잤나? 다시 저녁 먹으러 가다 길가에서 '신무우' 발견했다. 1위안인데 계림처럼 발효된 맛보다는 초절임에 가깝다. 음식은 정말 계림이 잘한다.
아까 쌀국수집으로 다시 갔다. 자기들 먹는 밥이라고 안판다는 걸 '쌀국수만 먹음 모잘라!'라고 강력항의. 1위안짜리 밥 한 그릇해서 저녁 먹는데 7위안.
다시 숙소로 가서 화롯불 옆에 미적대다 중국인들 숫자가 워낙 많아 겸사겸사 아까 봐둔 포장마차로 이동 40개짜리 꼬치가 5위안이란다. 맥주는 3위안. 지역맥주인데 무척 싱거운 맛이다. 양은 적지만 한입한입 꼬치 빼먹는 재미가 술안주로 제격이다. 25위안 어치 사서 화롯불 옆 중국인들에게 팍 안겨줬다. 노트패드 일행 특히 여자들이 환호한다. 연탄불에 구워먹음 더 맛있지. '훗! 나 기 안죽었어!'
인터넷 좀 하고 있으니 꼬치 탓인지 몰라도 몇 명이 '주빠(酒巴, 중국식 술집)'에 가자고 한다. ‘불감청이언즉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다. 맹자님이 들었으면 화 좀 냈을지도. 얼른 따라갔다. 젊은, 경제력 있는, 중국 사람들 술 문화가 평소에도 무척 궁금하지 않았던가. 생각보다는 건전하게, 무척 심심하게 논다. '007빵'을 하다니. 작은 버드와이저 한 병으로 두 시간이나 보냈다. 왜냐면 양주(?)라서인지 20위안이나 받기에. 3초면 마실 수 있는데. 주사위 놀이 하면서 놀았다. 흠! '가무'없는 술자리는 좀 맹맹하다.
옆 테이블에는 시바스 리갈에 맥주를 섞어 남녀들이 폭탄주 돌리기를 한다. 헉. 저것이 원자폭탄이여 수소폭탄이여 쳐다 보는데 여자들도 한입에 다 마신다. 부.럽.다.
돈 계산은 일본식 각자내기인가 아니면 옛날 한국식 서로 내가 낼께 분위기인가 눈치보고 있는데 각자 낸다. 어설프게 술맛 당기게 해놓고 한국 음주문화가 너무 과한건지 몰라도 뭐 대체로 얌전하게 마신다. 술 취해서 몸을 못가눌 정도로 마신 사람은 1년 동안 딱 2명 봤다.
허전한 술자리를 끝내고, 다시 숙소로. 다시 박스테이프로 튼튼하게 고정 후에 취침! 살을 에는 추위다. 전기 담요신에게 빌었다. 제발 오늘만은 무사히!
< 2월 14일 사용경비 내역 >
ㅇ 이동비 : 17위안
삼강 > 회화 (기차, 입석, 17위안)
ㅇ 교통비 : 31위안
회화 > 봉황 (버스, 31위안, 춘운요금)
ㅇ 숙박비 : 20위안
ㅇ 식 비 : 12위안
-아침 : 건너뜀
-점심 : 봉황쌀국수 5위안
-저녁 : 봉황쌀국수 5위안, 밥 1위안, 신무우 1위안
ㅇ 관람비 : 없음
ㅇ 잡 비 : 34위안
화장실 1위안, 꼬치 25위안, 꼬치+맥주 8위안, 주빠 맥주 20위안
ㅇ 총 계 : 134위안
* 계산편의를 위해 사사오입
덧붙이는 글 | ㅇ 이 글은 '인터넷한겨레-차이나21-자티의 중국여행(http://ichina21.hani.co.kr/)', 중국배낭여행동호회인 '뚜벅이 배낭여행(http://www.jalingobi.co.kr)'에도 올리고 있습니다.
ㅇ 중국여행에 필요한 자료는
'인터넷한겨레-차이나21-여행자료실(http://bbs.hani.co.kr/Board/tong_tourdata/list.asp?Stable=tong_tourdata)'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ㅇ '여행일기'라 평어체를 사용했습니다. 독자분들의 이해를 바랍니다. 제가 올리고 있는 '중국배낭길라잡이'의 내용을 실전에서 어떻게 사용하는지 잘 봐주시길..
ㅇ 중국어는 경어가 거의 없기에, 사실에 가깝게 번역했읍니다. 현장감있는 번역이라고 주장하고 싶군요.
ㅇ '여행지정보'보다는 '여행정보'에 치중했습니다. 괜한 그리고 많은 '여행지'사진은 스포일러(영화결말을 말하는) 같아서.
ㅇ 중국돈 1위안은 그 당시 여행할 때는 한국돈 130원(팔때 기준) 정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