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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가족을 보며 통곡하고 있는 여인 뒤에 웃으며 서있는 미군
(KBS방송화면에서 발췌)
죽은 가족을 보며 통곡하고 있는 여인 뒤에 웃으며 서있는 미군 (KBS방송화면에서 발췌)
1953년 7월27일로 한국전쟁은 정전을 선포했으나 한국전쟁 당시 영문도 모른 채 학살당한 민간인들의 한은 52년이 지난 지금도 단 한 가닥도 풀리지 못한 채 산천 곳곳에 뿌려져 있는 죽은 자의 뼛속에, 제 눈앞에서 부모와 형제의 살육을 보아야 했던 산자의 삶과 눈물 속에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노근리가 세상에 알려진 후 52년간 봉했던 입을 열고 전쟁 당시 미군에 의한 민간인학살의 진상을 폭로하는 목소리가 한반도 전역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정부당국은 한 맺힌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며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52년이 되었건만 여전히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되어 가슴속 응어리로 맺힌 학살 피해자들의 한은 풀리지 않고 있다. 이제야 겨우 입을 열기 시작한 그들은 미국과 정부당국이 외면한다면 스스로 주인이 되어 미군의 학살만행을 세상에 알리겠다며 당당한 걸음을 다그치고 있다.

오늘(7월27일) 오후 2시 정동 프란체스카 교육회관 4층에서는 통일연대, 민중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미군문제연구위원회 주최로 ‘미군주둔 60년, 미군피해자 증언대회’가 개최됐다.

2시간여 동안 진행된 증언대회는 피해자들의 증언과 영상을 보면서 여기저기서 한숨과 분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하는 등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에서 계속됐다.

피해자들의 직접 증언에 앞서 인터넷방송국 청춘과 홍치산 시인이 15일여간 전국에 산재한 미군학살 피해지를 찾아다니며 학살현장과 피해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영상물 ‘잊을 수 없는 원한’이 상영되어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한국전쟁에만 국한되고 끝난 일이 아니라 아직도 진행중임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전남 여수, 충북 영동 노근리, 충북 단양군 영춘면 곡계굴, 경북 예천군 산성리 등이 학살현장과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은 영상물에서 홍치산 시인은 한 피해자와 함께 피해자의 부친 묘를 찾았다. 부친의 묘를 찾은 피해자는 소주 한 잔을 붓고는 ‘기자 선생님이 진실을 밝히겠다고 이렇게 왔다’면서 “풀지 못한 우리의 한을 꼭 풀어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며 부친의 묘에 절을 올렸다.

미군주둔60년, 미군피해자 증언대회에서 충북 단양 곡계굴 학살 현장에 있었던 조봉원 유족이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미군주둔60년, 미군피해자 증언대회에서 충북 단양 곡계굴 학살 현장에 있었던 조봉원 유족이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 박준영
홍치산 시인은 ‘남겨진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가’고 반문하면서 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고 미국으로부터 진정한 사죄를 받아내어 우리 민족의 한을 씻는 일이 남은 우리의 할 일이라는 듯 묘에 정중히 절을 올리기도 했다.

이어 충북 단양 곡계굴 학살 현장에 있었던 유족 조봉원씨와 전북 익산역 폭격 사건이 이창근 유족의 증언이 이어졌다.

곡계굴 학살은 미군폭격기가 투하한 네이팜탄으로 400여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사건으로 당시 16세인 조봉원씨는 마을청년들에 의해 겨우 구출되었다고 한다. 당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학살피해자들 중 이제는 모두 다 죽고 자신만이 남았다는 조봉원씨는 “인민군은 한명도 없던 곡계굴에서 민간인만 처참하게 학살당했다”면서 하루속히 납득할 수 있을만한 진실규명과 유족의 명예회복과 사죄배상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익산역 폭격사건은 무고한 민간인 4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 폭격으로 부모를 모두 잃은 이창근씨는 99년부터 진상규명과 사죄보상을 위해 헌신적으로 싸웠다. 미 고위관리와도 직접 대면해 4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폭격사건을 두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미국의 답은 ‘오폭’이었다.

그러나 이창근씨는 “오폭이라면서 두세 차례에 걸쳐 폭격을 할 리도 없고 익산이 교통요충지라는 점을 따지고 보더라도 상식적으로 오폭일 수가 없다”며 미국을 비난했다. 그는 “미국은 깨달을 줄을 모르고 자기네 국민 아니면 어느 나라 국민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하루빨리 미군을 몰아내야 통일도 되고 학살피해자들의 한도 풀 수 있다면서 미군철수에 모두 나서자고 호소했다.

한편 증언대회에서는 얼마 전 발굴된 보도연맹 학살현장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이상길 경남대 교수는 마산 여양리에서 있었던 보도연맹 사건을 보고하며 “현장에서 발굴된 탄피들을 봤을 때 보도연맹 사건은 경찰에 의한 학살이 아니라 정규군에 의한 것”이라고 폭로했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서는 M-1 소총의 탄피들이 발견됐는데 M-1 소총은 미군이 쓰는 것으로 당시까지만 해도 미군과 정규군, 즉 군인만이 사용했다는 것이다.

또한 유골과 함께 나온 고무줄, 허리띠 등 유품들을 살펴볼 때 학살피해자들은 죄수복이 아닌 민간인복장을 하고 있었으며, 이는 피해자들이 집에서 갑자기 끌려나와 학살당한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보도연맹 사건의 피해자들이 죄수거나 혹은 다른 신분이 아니라 민간인 신분이었다는 것을 반증한다는 의미다.

진지하게 증언을 경청하고 있는 참가자들
진지하게 증언을 경청하고 있는 참가자들 ⓒ 박준영
마산 여양리에서 발굴된 학살현장들은 숯막, 너덜겅, 폐광 등 3곳으로 돌무지로 가려져 있던 현장에서는 모두 163구의 유골의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상길 교수는 유족들의 증언이나 현장 상태를 봐서 180여 명이 이곳에 매장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마산 여양리 학살사건이 세상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지난 2002년 한반도를 휩쓴 태풍 루사때문이었다고 한다.

루사로 인한 산사태로 묻혀 있던 유골들이 빗물에 씻겨 떠내려 온 것. 무참하게 죽은 것도 원통한데 유골마저 나뒹굴고 있으니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학살당한 피해자들의 한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원한어린 증언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미국과 한국 정부에 보내는 의견서’를 채택하고 참가대표와 유족들은 미 대사관에 미국에 보내는 의견서를 전달했다.

의견서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전쟁법규와 관습을 위반한 행위로 전쟁범죄가 된다면서 미국은 1907년 헤이그협약, 질식성 독성 또는 기타 가스 및 세균수단을 전쟁에서 사용함을 금지할 것을 규정한 1925년 의정서, 전시에 있어 시민보호에 관한 1949년 제네바협약, 전쟁포로대우에 관한 1949년 제네바협약 등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을 향해 1, 한국전쟁 시기 자행한 전쟁범죄의 전모를 밝히고 관련된 모든 증거를 공개할 것 2, 자신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유엔 등 국제기구를 통해 우리 민족 앞에 공식적으로 사죄할 것 3, 우리 민족이 당한 피해를 배상할 것 4, 전범자들을 국제전범재판소에 출두시킬 것 5, 전쟁 시기 대살육 파괴만행을 저지른 범죄자들은 자기가 저지른 죄상에 따라 처벌 받을 것 6, 다시는 이와 같은 범죄행위들이 재발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제도적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과 한국정부에 보내는 의견서를 낭독한 설창일 변호사
미국과 한국정부에 보내는 의견서를 낭독한 설창일 변호사 ⓒ 박준영
한편 증언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이번 증언대회를 시작으로 민간인학살이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이고 반드시 우리 국민들이 나서서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천명하면서 앞으로 미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문제를 대대적으로 알려, 오는 9월8일 미군주둔 60년이 되는 날을 맞아 민간인학살 문제를 전 민족적 차원에서 풀어나갈 것을 결의하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자주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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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자전국회의에서 파트로 힘을 보태고 있는 세 아이 엄마입니다. 북한산을 옆에, 도봉산을 뒤에 두고 사니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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