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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심에서는 '성적 목적이 없어 보인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는 '사회적 평균인'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유죄라고 했다. 성기노출만 갖고 음란물 판정이 힘드니까 얼마나 크게 그렸느냐를 걸고 넘어졌다."

▲ 문제가 된 6점의 그림들 중 무죄판결을 받은 <무제, 1995> 환자용 변기에 유채로 그린 것
ⓒ 김인규씨 제공
지난 2001년 아내와 함께 찍은 맨몸 사진과 남녀성기 사진 등을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이유로 '음란물 게재' 논란 당사자가 됐던 김인규(43·충남 애니메이션고등학교 교사)씨. 대법원은 27일 김씨에 대해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일부유죄 취지로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당시 충남 서천비인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 중이던 김씨는 개인 홈페이지를 학교 홈페이지와 연결해 학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같은 해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인규씨 "옹색한 판결"... 네티즌들 "다비드상도 음란물인가?"

‘김인규 교사 부부 나체사건’으로 불렸던 당시 사건은 2001년 문화계 10대 뉴스에서 2위로 떠올랐고 보수적 제도교육의 한계 및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 침해 등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4년이 지나 '음란물' 논란에 다시 서게 된 김씨. 그는 이번 판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음이 너무 좋지 않아서’ 모든 공식 인터뷰를 마다했던 그가 대법원 판결 하루만에 자신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이번 판결에 대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라며 “말할 수 없이 참담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당혹해했다. 또 대법원 판결 자체가 "옹색하기 그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법원은 성기 드러낸 것만 가지고는 더 이상 음란물 판정하기 힘드니까 ‘얼마나 크게 그렸느냐’를 걸고 넘어졌다"면서 "크게 그리면 음란물이고 작게 그리면 예술인가"라고 반문했다.

특히 "예술작품에서 전체 맥락을 판단하지 않고 한 페이지만 오려내 외설이고 음란물이라고 한다면 어떤 표현이 가능하겠느냐"라며 "이번 판결은 작가 의도를 무시하고 성에 관련된 것이라면 무조건 혐오하는 구시대적 이데올로기가 작용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대다수 네티즌들은 "다비드상도 음란물인가?”라며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문화연대는 27일 “시대를 역행하는 대법원의 반문화적 판결을 규탄한다”는 긴급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 4년만에 다시 논란의 핵으로 떠오른 김인규 교사
ⓒ 디지털 미동
다음은 김씨와 일문일답 전문이다.

"대법관이 파악하지 못하는 작가 의도, 학생들은 이해해 줄 것"

- 1, 2심에서 무죄판결 받았던 내용이 대법원에 가서 파기환송됐는데.
“말할 수 없이 참담하다. 이런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법원의 판결에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 대법원은 총 6개 그림 가운데 3점을 음란물로 판단하면서 '사회적 평균인의 입장에서 성적 상상과 수치심을 동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재판부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똑같은 사안을 가지고 1, 2심에서는 ‘상식적 기준에서 비춰봤을 때 성적인 목적이 없어 보인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대법원에서는 ‘사회적 평균인’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운운하며 유죄라는 것이다. 그러한 대법관의 개인판단을 객관적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1, 2심 판사들은 평균인이 아니고 대법관만 사회적 평균인이라는 것인가."

- 판결 근거를 보니 그림 전체에서 성기가 차지하는 면적과 묘사정도가 중요하게 거론됐더라.
“대법원 판결을 보면 옹색하기 그지 없는 게, 성기 드러낸 것만 가지고는 더 이상 음란물 판정하기 힘드니까 ‘얼마나 크게 그렸느냐’를 걸고 넘어지는 거다. 크게 그리면 음란물이고 작게 그리면 예술인가. 그렇다면 작품에서 성기가 차지할 수 있는 비율을 미리 정해주든지, 작가의 의도를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판단이 가능한가.”

- 작가 의도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술가의 창작물을 바라볼 때 전체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누군가 예술작품의 성기노출 장면만 따로 잘라내서 성적인 목적으로 사용했다면 그것조차 작가의 책임인가. 물론 그러한 작가의 의도가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에 대한 판단은 따로 논의되어야겠지만, 의도 자체를 무시하는 태도는 곤란하다.”

- 문제가 된 그림들은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났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현대 소비사회는 신체를 상품화하는 방법으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나는 상품화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신체를 전시함으로써 현대사회의 성 소비전략에 대해 대안적인 이미지를 제시하고 싶었다. 일종의 풍자나 패러디로 이해해도 좋다. 내 작품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거부감은 그 의도가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당시 문제가 됐던 홈페이지와 그림들은 어떻게 됐는가.
“홈페이지는 그대로 운영 중이다. 문제가 된 그림 6점은 모두 삭제했다.”

- 함께 사진을 찍었던 부인은 뭐라고 하는가.
“마찬가지로 어처구니없게 생각하고 있다.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라주는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다. 이젠 모두 끝난 일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는 모두 잊고 새롭게 창작활동을 해보려했더니 이런 일이 터졌다.”

- 올해 충남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로 옮긴 것으로 알고 있다. 주변의 반응은.
“애니메이션 고등학교가 있는 곳이 내 고향이라 친숙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영상제작과 편집을 가르칠 수 있어서 옮기게 됐다. 교사들은 내가 당시 누드사진 사건 주인공이라는 것을 대부분 알고 있지만, 학생들은 아마 이번 판결을 통해 ‘우리 선생님이 바로 그 선생님이구나‘하고 알았을 것 같다.

학생들과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깊이 있는 토론을 나눠보고 싶다. 성적인 것은 무조건 혐오하는 구시대의 이데올로기가 통하지 않고, 대법관들이 할 수 없는 객관적 판단이 가능한 세대가 바로 우리 학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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