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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모 <우리대중음악의 큰별들> 앞표지
ⓒ 민미디어
여름철이면 유명가수뿐만 아니라 신인 등용문을 통과하려는 가수 지망생들도 바빠진다. 가요 콘서트나 피서지 여름 축제에 가수를 초청하는 일이 많을 뿐만 아니라 가요 콘테스트도 많이 열리기 때문이다.

해수욕장이나 강에 피서를 갔다가 뜻밖에 그런 행사를 만날 수도 있다. 으레 무료 공연이기 마련이니,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며 가수들의 열창을 듣는 건 행운의 현지(現地) 보너스. 공연 보고 노래방 가면 노래 더 잘 나올 거다.

우리 나라를 대표할 만한 가수라면 누가 있을까. 광복 50주년을 기념하여 시청자 여론조사를 통해 KBS <가요무대>에서 매주 가수별 특집 프로그램을 꾸미고 헌정패를 증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현인, 김정구, 배호, 남진, 남인수, 최희준, 패티김, 조용필, 이미자, 나훈아가 선정됐다.

헌정가수 10인 가운데서도 특히 배호, 나훈아, 조용필 세 가수를 최고로 꼽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대중음악의 큰별들>은 따로 여론조사에 의존하지 않고 음악평론가 임진모씨가 나름대로 뛰어나다고 판단한 가수 26인을 인터뷰해 쓴 책이다. 피서지에 갈 때 고속버스나 열차 안에서 부담없이 읽기에 딱 좋은 책.

1960년대 가수, 1970년대 가수, 1980년대 가수, 그리고 1990년대~2004년 가수까지 그 시대마다 독특한 창법과 가창력으로 맹활약한 가수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신중현~윤도현까지다. 26인의 가수 이름 앞에 붙은 수식은 이렇다.

영욕의 록 역사를 짊어져 온 영원한 음악대부 신중현
우리 음악에는 우리만의 호흡과 숨결을! 송창식
가요에 스탠더드를 이식한 고급 가창의 정점 패티김
"내 노래는 내가 만든다!", 포크의 자주선언 한대수
우리 삶과 의식에 저장된 낭랑한 아침이슬 양희은
모든 것을 통합한 한국음악의 영구결번 1인자 조용필
"대중 음악은 여백의 미학!", 무가공 음악의 힘 이정선
80년대 오빠부대의 성장 언어와 추억일기 전영록
나른한 70년대에 작열하는 록의 깃대를 꽂은 김창완
정치적 격랑기에 꽃피운 트로트의 예술성 심수봉
기성문화에 청춘을 심은 캠퍼스 록의 승리 배철수
"가요에서 국악으로!", 작은 거인의 자기전복 김수철
폭발적인 무대 카리스마 한국 블루스의 여제 한영애
순수와 샤우트로 80년대를 대표한 만년소녀 이선희
6공 보통사람의 시대를 관통한 트로트의 저력 주현미
감상적 보컬로 록의 맛을 전해준 라이브 왕자 이승철
"기타는 나의 삶!", 연주음악으로 소수를 포획한 이병우
고단한 풍토에도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음악 외길 장필순
상술을 팽개치고 예술을 택한 용기의 서사시 이상은
선율의 파괴력을 부각한 발라드의 대표작가 유영석
대중 속으로 파고든 민중음악의 결연한 에너지 안치환
센세이션을 이겨낸 조용한 러브 발라드의 최강자 신승훈
현실의 왜곡에 타협하지 않은 자유 코드의 초상 강산에
90년대 시장을 삼킨 흑색음악의 찬란한 위용 김건모
맨발의 광기로 공연의 획을 그은 여자 검투사 이은미
"오 필승 로큰롤!" 새 천년 록의 르네상스 윤도현


'신중현' 편에서는 1970년대 전후,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의 악연을 신씨가 직접 실감나게 들려주고 있다.

1972년이었어요. 당시 정치적으로는 평온하다가 갑자기 유신 독재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인 시절이었고 나는 1970년대 전후로 일련의 히트곡을 터뜨리면서 가요계에서 '최고' 자리에 올라 있을 때였죠. 어느 날 청와대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누군지도 모르고 통화는 한 5~6분 정도로 짧았어요. 내용인즉 '박정희 대통령의 새로운 통치를 내용으로 한 노래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박정희 찬가를 불러 달라는 거였죠. 난 대뜸 '난 그런 노래는 쓸 줄도 모를 뿐더러 왜 하필 그런 주문을 나에게 하느냐'고 반문했어요. (중략) 그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어요.
-<우리대중음악의 큰별들> 16쪽에서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할 때는 유난히도 미국 사람, 특히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히피들이 많았어요.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사랑과 평화를 주창한 그 친구들은 예상외로 온화했고 젠틀했습니다. 또 록 음악을 무지 좋아했어요. 공연이 끝나면 갈 데가 없어서 제가 집으로 데려가서 잠도 재워주고 고기도 먹이고 했습니다.

그들이 떠날 때 감사의 선물로 준 것이 바로 대마초인 마리화나였어요. 얼마나 많이 주던지 방에 몇 봉지가 굴러다닐 정도였으니까. 이게 알려지고 난 뒤 인기가수들이 저한테 '마리화나 있어요?'하고 물으면 난 별 뜻 없이 '우리 집에 산더미같이 쌓였다'고 말하며 건네주기도 했죠. 나중 대마초 사건 때 그들이 취조 받으면서 내 이름을 언급했고 그래서 졸지에 '대마초왕초'로 둔갑한 거죠.
-<우리대중음악의 큰별들>19쪽에서


'패티김' 편에서는 이미자씨와 더불어 기교 없이 노래하며 쌍벽을 이뤄 온 데 대해서 김씨가 이렇게 들려준다.

저나 이미자나 소리를 꾸며내지 않고, 가진 소리를 순수하게 내는 방식으로 노래하는 스타일입니다. 보컬 테크닉을 거의 구사하지 않지요. (중략) 이미자도 그렇고 노래의 생명은 테크닉이 아니라 순수라고 봅니다. 기교를 부린 노래는 당시는 어필할지 몰라도 나중에는 듣기 싫은 법이죠.
-<우리대중음악의 큰별들> 59쪽에서


'조용필' 편에서는 요즘 후배가수들을 평가해 달라는 말에 조씨가 이렇게 답변을 들려준다.

후배들에 대한 평가는 무리예요. 후배들을 알려면 방송도 같이 해보고 함께 공연하면서 접해보고 알아야 되는데 그런 상황이 아니잖아요. 가요풍토는 분명히 많이 달라졌어요. 지금의 가수는 비주얼한 측면, 외모, 춤, 노래실력이 모두 요구되지요. 저 때하고는 달라요. 그런 변화를 고려하면 후배가수들이 오히려 잘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젊은이들 음악에 기성세대들의 불만이 있는 줄 알지만 댄스든 랩이든 그 기절에는 어떤 스타일의 음악이라도 그들만의 꿈이 담깁니다. 다 나름대로의 문화가 있다는 거지요.
-<우리대중음악의 큰별들> 116쪽에서


'민중가수'로 상징되는 '안치환' 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질문이 빠졌다 싶어서 지난 대선에 왜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는가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난 딴따라고 정치판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 내 자신이 보다 명확해지면 정치적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괜히 싫다. 차라리 반전노래를 한 곡 더 부르겠다'는 것이었다. 정치적 성향을 밝히는 게 두려운 것 아니냐고 재차 물었더니 대듬 손을 내저으며 자신이 그렇게 용기없는 사람은 아니라면서 '사람들에게 올바른 선택을 위한 정서적 기준만 제공해 줘도 내가 할 도리를 다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우리대중음악의 큰별들> 328쪽에서


가수 26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처럼 직접 녹취록을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그리고 인터뷰 내용이나 인물칼럼 중에 다른 가수 이름이 나오면 그 가수의 프로필도 적당히 다루어 놓았다. 부록으로 '주요 대중음악 연표'가 실려 있다.

우리 대중음악의 여러 물줄기를 파악할 수 있는 이 책은,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한민국 명가수 백과처럼 음반재생기 옆에 한 권 모셔두고 싶은 책이다. 다만, 가수마다 신 들린 듯 열창하는 이미지가 들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 싶은 생각은 나만의 욕심일까.

덧붙이는 글 | <우리대중음악의 큰별들> 임진모 씀/2004년 2월 10일 민미디어 펴냄/223×165mm 올컬러 424쪽/책값 2만원

●김선영 기자는 대하소설 <애니깽>과 <소설 역도산>, 평전 <배호 평전>, 생명에세이집 <사람과 개가 있는 풍경> 등을 쓴 중견소설가이자 문화평론가이며, <오마이뉴스> '책동네' 섹션에 '시인과의 사색', '내가 만난 소설가'를 이어쓰기하거나 서평을 쓰고 있다. "독서는 국력!"이라고 외치면서 참신한 독서운동을 펼칠 방법을 다각도로 궁리하고 있는 한편, 현대사를 다룬 6부작 대하소설 <군화(軍靴)>를 2005년 12월 출간 목표로 집필하고 있다.


우리대중음악의 큰별들 - 대중예술산책 4

임진모 지음, 어진소리(민미디어)(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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