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양랭면집 명옥이> 책 제목부터 탈북가족 이야기란 냄새를 풍긴다. 그런데 막상 책을 펴니, 아토피피부염을 앓는 아이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었다. 이 둘을 어떻게 역어 나갈까, 궁금하기도 하고 소재 선택 면에서 성공한 작품이란 기대감으로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아토피피부염이라면 나도 할 말이 많다. 아이가 첫 돌때부터 11살이 된 지금까지 10년 동안 아토피와의 전쟁을 치루고 있으니 말이다. 아토피에 금기사항들이 생활화 된지 오래고 아이를 낳고 지금까지 편안히 잠자리에 든 기억이 없다. 잠자리 들기 전 1시간에서 30분전부터 등을 긁어 주어야 겨우 잠이 들고 잠이 들어도 서너 번씩 깨서 다시 긁어주거나 약을 발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선잠이야 대수겠는가, 아이가 격은 고통을 생각하면 그나마 가려운데 긁어 주기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다. 그러니 작품 속 힘찬이의 고통이 남의 일 같지 않고 아이에 대해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힘찬이 엄마의 심정 또한 십분 이해가 간다.
힘찬이의 이런 고통은 그 가족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친구들 사이에서 닭살이란 별명으로 놀림감이 된다. 그러나 이름만큼이나 힘찬 힘찬이는 친구들의 이런 놀림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없다는 게 속상할 뿐이다.
어느 날, 힘찬이네 반에 탈북정착촌에 사는 새터민 여자 아이가 새로 들어온다. 그 이름은 명옥이. 명옥이는 같은 반 아이들 보다 두 살이나 위인데도 키가 작아 같은 또래처럼 보이고 어딘지 촌스럽다. 자기보다 어린아이들도 모두 잘나 보이고 똑똑해 보여 명옥이는 그만 벙어리 아닌 벙어리가 되어 버린다. 그런 명옥 역시 아이들 놀림감이다.
그러다 명옥이는 힘찬이가 아토피로 고생을 하는 것을 보고 북한에서 탈출하는 길에 죽은 동생을 떠올린다.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허약하고 두드러기가 자주 났던 동생. 동생 명수는 가난 때문에 못 먹어서 병이 났는데, 짝꿍 힘찬이는 먹을 것이 지천인데도 먹을 수 없어, 침만 삼키니 더욱 불쌍해 보인다.
먹을 게 없어서 굶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물질의 이기(異氣)와 편의주의로 인해 병들어 가는 아이들이 있다. 이 책에선 북한아이들의 힘든 생활고 이야기나, 새터민 아이들의 어려운 정착생활 이야기보다, 먹고 싶은 것을 눈앞에 두고도 먹지 못하는 힘찬이의 슬픔을 좀 더 부각시키고 있다.
아이들은 나라의 보배라고 한다. 그런 아이들이 위해 나라에선 많은 시설들을 만들고 여러 가지 정책을 펼쳐 나간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 건강을 위한 먹 거리나 건강한 자연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엔 뒷전이다. 가정에서도 사랑하는 자녀의 교육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아이들을 생각하고 나라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국가에서는 건강한 먹을거리로 학교 급식을 바꾸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하고 가정에선 아이들 학원비 보다는 유기농 농산물을 먹는 것에 좀 더 투자를 해야 한다.
내 아이는 아무 이상 없다고 안심할지 모르겠지만, 어떤 이는 아토피피부염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정상인 아이들 보다 차라리 나을 수 있다고 한다. 몸속에 들어간 독이 피부를 통해서라도 뿜어 나오니, 다행이란 뜻이다. 지금은 아무 이상 없지만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있다면, 그 쌓인 독이 어디로 가겠냐는 말이다.
지옥이나 천국에 가면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긴 젓가락을 나누어 준다고 한다. 그런데 지옥으로 간 사람들은 욕심이 많아 긴 젓가락으로 자기 입에만 넣으려 해서 언제나 배고픈 고통에 시달리고, 천국으로 간 사람들은 같은 길이의 젓가락으로 서로의 입에 음식을 넣어 주어 항상 배부르고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가 있다.
두 아이는 각자 자기의 아픔에 집착하다가, 어느 날 서로의 아픔을 알게 되고 상대의 고통을 덜어 주려 한다. 마치 서로 입에 음식을 넣어 주듯, 두 아이는 서로의 의지가 되어 천국을 그려내고 있다. 명옥이는 힘찬이를 죽은 동생을 대신하여 돌봐 주기로 마음먹고 씩씩한 피양 소녀 명옥이로 다시 태어난다.
덧붙이는 글 | 리더스 가이드와 알라딘에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