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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사 오기 전의 폐교의 을씨년스러운 전경
우리가 이사 오기 전의 폐교의 을씨년스러운 전경 ⓒ 오창경
그 동안 여러 번 소개했다시피 우리가 살고 있는 주거 공간은 시골 오지 마을에 있는 폐교이다. 사람들은 '폐교'라는 어감만으로도 뭔가 스산한 기운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폐교에 입주하면서 겪었던 공포담까지 듣는다면 아마도 이 곳에서 6년째 살고 있는 우리 가족을 '아담스 패밀리(1992)' 같은 기괴한 가족으로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이 폐교에 입주를 결정했던 이유는 첫 번째, 남편이 사업을 하기에는 넓은 공간이 필요했고 두 번째는 폐교가 된 이후에 방치되었던 것이 아니라 임대가 되었던 상태라 비교적 실내가 깨끗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입주 당시에는 녹슨 놀이기구와 운동기구들, 사람 키 높이까지 자랐다가 말라비틀어진 잡초들이며 우리 차가 빠질 정도로 질퍽거리는 운동장을 보고는 정이 뚝 떨어졌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이 폐교에라도 입주할 수밖에 없었다. 운동장을 정비하고 교실 한 칸을 개조해서 우리가 살 공간을 만든 뒤 이사를 하고 안정이 되기까지 겨울에서 봄까지 꼬박 한 계절이 걸렸다.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시골살이와 새로 벌인 사업으로 힘들어했던 남편은 저녁을 먹자마자 건넌방에서 잠이 들었고 시어머니와 나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우리 폐교의 봄. 지저분했던 운동장을 우리가 이렇게 변신시켰다.
우리 폐교의 봄. 지저분했던 운동장을 우리가 이렇게 변신시켰다. ⓒ 오창경

우리 폐교에 떠나갈 듯한 비명이 들린 것은 당시 인기 있던 드라마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비명의 주인공은 남편이었는데 온 몸이 땀에 젖어서 초점 없는 눈동자로 두 팔을 허공에 휘젓고 있었다. 내가 남편이 정신을 차리도록 어깨를 흔들자 남편은 다시 한번 비명을 지르며 '안 가, 안 가'하며 누군가에게 애원을 하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가위에 눌려 본 적도 없었지만 가위에 눌린 사람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 순간 남편이 그대로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고 그 방정맞은 생각에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애비야, 애비야, 일어나 봐라. 이게 무슨 일이다냐? 애비야."

시어머니의 애끓는 절규까지 합세하고 나서야 남편은 한 숨을 한번 내쉬더니 정신을 차리는 것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남편은 한동안 실어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멍하니 앉아 있더니 말문을 열었는데….

"하얀 옷을 입고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다 가린 사람인지 귀신인지 분간이 안 되는 물체가 내 팔목을 끌어당기며 함께 가자고 하잖아. 꿈 속이라고 하기에는 팔목을 당기는 느낌이 너무 생생하고 얼마나 무서운지… 그 와중에도 그냥 그렇게 끌려가면 죽는 것 같아서 죽어라고 뿌리쳤어. 내가 지금 꿈을 꾼 거야?"
"생전 안 해본 일 하면서 힘이 드니까 몸이 허해져서 헛것이 보이는 게야."

우리의 시골행을 못마땅해 하시던 시어머니가 '그 것 봐라'하는 표정으로 나를 쏘아 보는 바람에 더 이상 묻지도 못하고 그 날은 그렇게 넘어가고 말았다.

며칠이 지난 뒤 어머님도 가시고 모처럼 남편과 함께 안방에서 잠자리에 들었던 밤이었다.

남편의 공포에 질린 비명 소리가 다시 한번 우리 폐교의 평화로운 밤을 처절하게 수놓았다. 비명소리와 함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남편은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방문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제선 아빠, 나가면 안돼. 가면 안 된단 말이야. 정신 차려. 정신 차려. 엉엉~~"

나는 남편의 허리를 필사적으로 껴안으며 방문 밖으로 나가려는 남편을 제지했다. 남편은 지난번처럼 눈을 뜨고 있었지만 초점이 없었고 뭔가에 홀린 듯한 표정이었으며 방문 손잡이도 찾지 못하고 문을 완력으로 밀어대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 사이 나는 남편의 앞을 막아서서 뺨을 한 대 후려쳤다. 그 기세에 놀랐는지 남편은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여파를 몰아서 나는 남편의 뺨을 두어 번 더 꼬집어 뜯었다. 그제야 남편의 눈빛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우리 폐교의 복도. 남들은 영화 '여고 괴담'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고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기에 딱 좋은 곳이다.
우리 폐교의 복도. 남들은 영화 '여고 괴담'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고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기에 딱 좋은 곳이다. ⓒ 오창경
"또 무서운 꿈을 꾼 거야? 엊그제 그 귀신이 또 나타나서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가려고 했던 거야?"
"나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그게 귀신일까? 사람일까?"
"아무래도 이 폐교 터가 공동묘지였나봐. 내가 다녔던 여학교도 공동묘지에 세운 거라 비 오는 날 야간 자습할 때면 기분도 안 좋고 유령 같은 거 봤다는 애들도 있었거든."

우리는 그 날 밤을 형광등도 끄지 못하고 서로 손을 깍지를 껴서 꽉 잡고는 공포 속에서 침대에 기대어 앉아 날을 새고 말았다.

간밤에 그런 소동을 두 번이나 겪었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우리 폐교를 떠나고 싶을 정도로 무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것은 내가 간이 유달리 커서 무섬증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종의 오기였다. 우리가 시골 행을 감행하면서 파란만장하게 겪었던 집 없는 설움을 다시 귀신한테까지 당하고 싶지 않다는 결연한 오기가 발동한 것이었다.

시댁에서 사준 아파트에서 살림을 시작한 우리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신혼 부부였는데 당시 하던 사업보다는 뭔가 생산적인 사업을 항상 구상하고 있던 남편 덕에 결혼 2년만에 시골 행을 감행하게 되었다. 시골살이에 대한 준비기간엔 지금 살고 있는 폐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친지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친지가 우리에게 팔기로 했던 집과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팔게 되면서 우리는 졸지에 거리에 나앉아야 했다. 다행히 그동안 사귀어 놓은 동네 어르신들이 마을 회관이 비어 있으니 임시로 살면서 집을 짓는 방법을 생각해 보라고 했다.

둘째를 낳아서 한 달간 친정에서 몸조리를 끝내고 돌아온 곳이 시골 마을 한 가운데 있는 마을 회관이었다. 박스에 넣은 이사 짐을 다 풀지도 못하고 방 한 칸에 쌓아 놓고, 동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필요한 것만 꺼내서 산 것이 6개월이었다.

그 사이 우리가 사놓은 땅에 집을 지으려던 계획은 면에서 도저히 시골에 살 사람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농지 전용을 해주지 않아서 다시 한번 물거품이 된 상태였다. 연고도 없는 시골에서 미아가 되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갈 마음을 먹고 있을 때 마침 살고 있던 사람들이 이사를 나가는 이 폐교를 우리가 임대하게 된 것이었다.

비로소 시골 행 1년여만에 우여곡절 끝에 내가 좋아하는 책들과 살림살이를 제대로 늘어놓고 재미있게 살려는 참인데 그깟 귀신 때문에 다시 짐을 꾸려야 하다니...

나는 차라리 '고스트 바스터'가 되는 편이 다시 이사를 하는 편보다는 훨씬 쉬울 거라는 생각을 했다. 집 없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 더 무섭지 귀신 따위는 전혀 꺼려지지 않았다. 만약 나한테도 귀신 따위가 나타난다면 그 간의 사정 이야기를 하고 타협의 여지를 찾겠다는 각오를 했다. 내 상식 속의 한국의 귀신들은 막무가내가 아니라 항상 인간들과 협상의 여지를 남겨 놓기 마련이었으니까.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 폐교는 공동묘지 터가 아니라 논이었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고 그간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남편을 두 번이나 가위 눌리게 한 정체는 정말 심신이 허해져서 나타난 현상일까?

남편의 친구 중에 출가를 해서 불화(佛畵)를 그리는 스님이 된 친구가 있었다. 혹시 어떤 조언이라도 들을까 해서 전화를 걸어 보았다. 스님으로 대했던 시간보다 친구로 지낸 시간이 많아서 평소 그의 능력(?)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는 남편의 겪었던 일을 듣더니 직접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흔쾌히 해주었다.

우리의 친구였던 지산 스님이 그려주고 간 달마도. 달마가 그려진 종이는 귀신을 쫓는 나무라는 회화 나무의 열매로 물을 들여서 특수하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친구였던 지산 스님이 그려주고 간 달마도. 달마가 그려진 종이는 귀신을 쫓는 나무라는 회화 나무의 열매로 물을 들여서 특수하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 오창경
퇴마사처럼 엄숙한 의식을 치러서 우리 폐교에 살고 있는 원귀들을 다 쫓아 줄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는 우리에게 드디어 그가 한 마디를 날렸다.

"뭐야, 새집에 이사를 왔으면 성주신한테 신고식을 했어야지. 터주 대감이 막걸리 한 잔 얻어먹고 싶다는데."
"무슨 터주 대감이 처녀 귀신처럼 생겼냐? 사기 치지 마라."

"그건 니 머리 속에 있는 귀신의 형상이 처녀 귀신으로만 학습되어 있기 때문이지. 터주 대감이 어떻게 생겼는지 넌 한번도 상상해 본 적도 없잖아."
"막걸리만 뿌려주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까요?"
"그건 모르죠. 혹시 제수씨 꿈에는 총각 귀신으로 나타날지는… 하하!"

어쨌든 우리는 그가 시키는 대로 막걸리 한 말을 사다가 우리 폐교의 구석구석에 뿌려 주면서 터주 대감한테 잘 좀 봐달라는 아부도 잊지 않았다.

우리 폐교에서 이틀 밤을 자고 난 친구는 출입문마다 부적을 그려서 붙여 주었고 달마도를 한 장 남기고 떠났다. 그 덕분인지 그 후로 우리에게 다시 가위에 눌리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고 불길한 꿈조차 꾸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현관문을 열면 긴 복도부터 눈에 들어오는 구조를 보고는 영화 '여고괴담'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며 나한테 무섭지 않느냐고 묻곤 한다.

"왜요?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아서요? 제 경험에 의하면 귀신 따위보다 무서운 것은 돈이 없는 것, 오갈 데가 없어지는 것,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것 등이지 귀신이 아닌 것 같더라구요. 자, 그럼 밤 12시가 되면 이 복도 끝에서 저 복도 끝까지 불 켜지 않고 걸어보는 '폐교괴담 놀이'를 해볼까요?"

내가 이런 제안을 하면 대부분은 고스톱이나 계속 치자며 슬슬 화제를 돌리려고 하지만 우리 집에 발을 들여 놓은 이상 한 밤중에 긴 복도를 걷는 '폐교 괴담 놀이'는 피해 갈 수가 없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밤에 이보다 더 시원한 놀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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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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