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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하고 담박한 콩국수
고소하고 담박한 콩국수 ⓒ 박도
간밤에 뉴스를 보니 사람들이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여 해마다 지구 온난화가 심해져서 기온이 더 높아지고 바닷물 수위가 조금씩 올라가서 해일이 잦아지는 등, 자연재해가 더욱 기승을 부린다고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고성 보도에도 모두 나만은 예외라고 에너지 사용 자제는커녕 너도나도 냉방기를 기를 쓰고 들여놓는 세태요, 냉방기 없이는 아무 장사도 못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아직 입추가 닷새 남았고, 말복이 열흘 남짓 남았기에 올 여름 더위도 길게 잡아 보름이면 수그러들 것이다. 그런 뒤 얼마 지나면 언제 더웠느냐고, 춥다고 아우성치면서 여름을 기다릴 것이다. 아마도 금세 더웠다가 식어지는 ‘염량세태(炎凉世態)’가 세상사인가 보다.

원기를 회복케 하는 콩국수

하지만 아직도 남은 더위를 잘 이겨야 할 것 같다. 요즘 같은 이런 불볕더위를 옛 시인들은 ‘속대발광욕대규(束帶發狂欲大叫)’라고 읊었다는데, 이를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찌는 듯한 더위에 관을 쓰고 띠를 매니까(정장차림을 하니까) 그 괴로움에 발광이 나서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다”

아마도 옛 양반들이 체면 때문에 옷을 마음대로 벗을 수 없는 괴로움을 말하나 보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오뉴월 손은 범보다 더 무섭다”하여 더위에는 남의 집 가는 것도 삼가는 게 좋다고 하였다.

산골집 주인 송승자씨
산골집 주인 송승자씨 ⓒ 박도
이런 무더운 날씨에는 손끝도 까닥 움직이는 게 싫어서 자칫 뭘 챙겨먹는 것에 소홀하여 건강을 해치기 쉽다. 여름 무더위 보양으로는 ‘멍멍탕’이나 ‘삼계탕’을 최고로 치지만 비위가 맞지 않아서 피하는 이도 많다.

나는 ‘멍멍탕’을 입에 대지 않는다. 대신 여름철에는 콩국수를 즐겨드는 데 그 맛이 일품이라 소개한다. 서울 종로구 적선동의 ‘산골집’은 20여 년 나의 단골집으로 그제나 이제나 변함이 없다. 전남 고흥반도 출신의 송승자(58)씨와 나주 출신의 최금동씨 부부가 1970년대부터 여름이면 콩국수, 겨울에는 선짓국을 팔았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이태 전까지 여름방학 중, 학교에서 오전수업(특기적성 수업)을 하고서 귀가하면서 그 집에 들르면 주인은 묻지도 않고 냉콩국수를 한 사발 가득 내주었다. 그 집 냉콩국수는 콩가루가 아주 고소하고 면발이 쫄깃쫄깃하다.

지난번 서울 가는 길에 옛 맛이 그리워 들러서 그 맛의 비결을 묻자, 고향 고흥에서 친정여동생이 농사지은 콩만을 쓰기에 그렇다고 한다. 면발이 쫄깃한 비결은 뜨거운 물에 바짝 삶은 뒤 찬물로 여러 번 헹구기에 그렇다는 비법을 알려줬다.

그제나 이제나 변함이 없는 산골집
그제나 이제나 변함이 없는 산골집 ⓒ 박도
그리고는 또 다른 맛의 비결은 정성이라고 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바깥주인은 흰 모시바지저고리를 입고서 손님을 맞았는데 10년 전에 간암으로 먼저 가시고, 요즘은 안주인 혼자서 그제나 이제나 조금도 다름이 없는 실내장식과 먹을거리로 옛 단골을 반겨 맞았다.

그새 주방이 안에서 바깥으로 옮겼을 뿐, 옛 그대로라서 어찌 그리도 변화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특별한 욕심도 없고 그냥 이대로 단골손님 맞으면서 한 평생 마감하고 싶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카메라를 꺼내자 선생님이 글만 쓰는 줄 알았더니 별 것도 다 한다면서, 이럴 줄 알았다면 미장원에라도 다녀올 걸 하며 슬쩍 피하는 걸 한 컷 찍었다.

더위에 입맛을 잃은 분, 혹 지나다가 이 집 콩국수 맛을 보시면 더위에 지친 몸을 추스리며 원기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에 먹었던 고소한 콩국수의 향수를 느끼리라.

덧붙이는 글 | 산골집: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100미터 쯤 올라가면 됨(02-739-9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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