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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작가대회가 열린 인민문화궁전의 현판. 이 글씨체는 북에서 가장 많이 쓰인다.
민족작가대회가 열린 인민문화궁전의 현판. 이 글씨체는 북에서 가장 많이 쓰인다. ⓒ 정용국
우여곡절 끝에 민족작가대회의 본회장인 인민문화궁전으로 가는 길은 고려호텔에서 멀지 않았다. 6시 20분에 출발해서 약 20분 거리였으니 차의 속도가 60km 이하였으므로 지척이었다. 나중에 지도를 보고 확인해 보니 창광거리를 따라 쭉 가서 보통문만 돌면 되었다.

길가에는 드물게 식당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 이름이 또한 내 호기심을 건드리는 것들이었으니 지짐집, 떡국집, 단고기집, 남새상회 등 상호 뒤에 주 요리 이름을 붙여 놓았다. 특히 남새는 내가 어렸을 때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이었으나 남쪽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이어서 그 뜻이 '채소'라는 것은 알았지만 낯설었다. 결국 남새가 우리말이니 채소보다는 이쁘고 좋지 않은가.

인민문화궁전 입구에는 흰 바탕에 파랑 글씨로 '민족작가대회 참가자들을 환영한다'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북쪽에 걸려 있는 모든 현수막이나 선전문은 거의 붉은 바탕에 흰 글씨거나 흰 바탕에 붉은 글씨여서 이 파랑 글씨는 무척 신선해 보이기까지 했다. 우리 일행은 오랜 기다림 끝에 긴장감을 풀지도 못하고 인민문화궁전 대회의실 커다란 원탁 북측 대표단 건너편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집행부에서는 아직 마지막 일정 조정이 안 끝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정쩡하게 환영 박수나 인사도 못한 채 입장을 마치고 나서도 상당히 길고 지루한 침묵의 시간이 흘러갔다. 북측 대표단들도 영문을 잘 모른 채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을 뿐 누가 먼저 말문을 열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대회장 정문 옆에 내걸린 현수막
대회장 정문 옆에 내걸린 현수막 ⓒ 정용국
김형수 사무총장과 정도상 실장, 그리고 방현석 의전담당이 이리저리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진행에 참가하여 주제발표를 하거나 인사말을 할 문인들에게 미리 여러 가지 지시를 하는 것으로 보아 상황이 다 결정된 것으로 보였다. 그 사이 남측 대표단들은 가지고 간 디지털 카메라로 얼마나 많이 사진들을 찍어대는지 조용히 앉아서 대회를 기다리는 북측 대표단에게 민망할 정도였다. 예정대로라면 이미 만찬이 시작될 시간이었는데 아직 행사는 개막조차 하지 않고 있으니 슬슬 배가 고파지면서 대회가 끝나고 먹게 될 그 유명한 백두산 들쭉술과 맛있는 안주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한편으로는 작가들의 만남도 이럴진대 정치나 실리를 따지는 회담장의 뒤편에서는 얼마나 어렵고 지루한 줄다리기가 숨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갈라진 60년이라는 세월이 우리를 참 그악스럽게 만들어 놓은 것 같아서 슬펐다. 대회는 결국 7시 35분경에야 주석단에 열두 명의 북남 대표들이 자리하고 먼저 북측 사회자의 인사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먼저 김병훈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개막연설이 있었고 북측 사회자가 민족작가대회를 축하한다는 각계 대표들의 축하전문을 소개하자 곧 박수가 쏟아지면서 냉랭했던 대회장은 금방 뜨거워졌다. 사실 60년만에 남과 북의 문인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그 역사적 의미가 얼마나 큰 자리인가.

대회가 열린 인민문화궁전 대회의실. 어디에나 김 주석과 국방위원장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다.
대회가 열린 인민문화궁전 대회의실. 어디에나 김 주석과 국방위원장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다. ⓒ 정용국
오늘 이 대회의 큰 배경은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늘 붙어 있었다. 사실 정지되었던 대회가 재개될 수 있었던 것도 정동영 통일원장관이 6.15 공동선언 5주년을 기념해서 치러진 행사를 북에서 함께 개최하면서 시작된 것이어서 그 의미는 더욱 6.15공동선언 실천에 집중되었고 북에서도 대대적으로 6.15공동선언에 대하여 많은 선전를 통해 알려온 터라 자연스럽게 북과 남이 쉽게 다룰 수 있는 주제였다.

백낙청 6.15 공동행사 준비위 남측 상임대표는 "분단의 엄중한 경계를 지우고 하나의 겨레말 작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 대회는 분단에 길들여졌던 문학적 상상력을 복원하고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며 통일의 시대 우리 문학의 새로운 성취를 향한 중요한 자리"라고 힘주어 말해서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남측과 북측이 제안과 그에 대한 의견을 번갈아가며 이어갔고 마지막에 5개항에 이르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하는 것으로 대회는 끝났다.

채택된 5개항은 6.15공동선언 정신의 계승, 반전평화, 사상 신앙 출신지역을 뛰어 넘는 연대, 해외교포 문학인의 6.15민족문학인협회 적극 참가와 기관지 '통일문학' 발행, 6.15 통일문학상 제정 운영 등이 포함된 의미있는 선언이었다. 북은 이 대회에 참가한 남측의 대표단 전원에게 민족작가대회 공동준비위원회 명의로 된 '대표증'을 사진이 붙은 증서로 발급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오래도록 박수를 치고 서로를 격려하며 시종 달아오른 대회의 분위기는 이제 곧 문인들의 속성인 술을 통하여 활활 더욱 뜨겁게 타오를 것이었다. 대표단 일행은 시장기를 느끼며 국빈급 연회가 치러진다는 인민문화궁전으로 발길을 옮겼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7월20일 부터 25일까지 평양에서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작가대회'를 참가하고 쓴 글입니다. 정용국 기자는 <내 마음속 게릴라>를 쓴 시인이며,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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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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