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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세계사> 표지
<거꾸로 읽는 세계사> 표지 ⓒ 푸른그림책
역사에서 무엇보다 중점을 두고 봐야 할 부분이 근현대사라 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삶에 가장 근접하여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근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여러 가지 이해 관계에 얽혀 국가 안의 내분이 발생하고 국제관계가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러시아에선 간헐적으로 발생하던 하층민의 반란은 혁명으로 이어진다. 그로인해 전제군주와 지배계층은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몸부림으로 하층민들을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간다. 또 일찌감치 산업화를 이룬 서구열강들의 제국주의로 국가 간의 이해득실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을 띤다.

19세기의 프랑스 역사 속에서 빠지지 않고 다루는 것이 드레퓌스 사건이다. 드레퓌스 사건을 단순히 말하면 한 개인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된 사건이다. 그런데 무엇이 이 한 개인의 문제를 프랑스 전 국민을 들끓게 했으며 세계인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했을까.

19세기 말 프랑스가 러시아와 동맹을 맺자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는 더욱 긴장감이 일었다. 상대의 병력 이동이나 동태 파악을 위한 스파이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게 된다. 이 와중에 프랑스군 참모본부의 장교 드레퓌스가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었다.

물론 드레퓌스에게 아무런 죄도 없었고 그의 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도 없었다. 이 문제의 발달은 드레퓌스가 유대인이라는 점과 권력자들의 명분유지를 위해 희생양이 필요했다는 데 있다. 드레퓌스는 제대로 재판 절차도 받지 못하고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절망에 빠진 드레퓌스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처럼 무죄를 주장하고 나선 사람 있으니, 피카르 중령과 세계적인 작가 에밀 졸라가 그들이다. 피카르 중령은 자신의 양심을 걸고 드레퓌스의 무죄임을 건의하다 억울한 옥살이를 한다. 에밀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신문에 실어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데 지성인으로서의 양심을 보탠다.

이런 과정에서 유태인을 박해하는 인종차별주의자, 공화정치 자체를 미워한 왕정복고주의자와 옛 귀족들, 대기업 소유자들, 군국주의자들, 국가주의자들 따위의 19세 보수 세력들은 유대인 드레퓌스의 유죄를 강력히 주장하고 나선다. 그러나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는 대세의 흐름이었고 20세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막지 못했다.

피카르 중령이나 에밀졸라와 같은 지성인의 깨달음. 즉, 국가 권력에 의해 무고한 개인을 희생할 수 없다는, 더 나아가 어떠한 차별주의나 권력자들로부터 개인의 인권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지성인들의 양심은 드레퓌스의 무죄를 증명해 냈다. 이 사건을 통해 보수 세력의 부당함을 고발하고 민주주의 실천 방향을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20세기 새로운 물결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거대한 사건으로 기록하게 된다.

프랑스에서 드레퓌스 사건으로 민주주의 문을 열었다면 러시아에선 ‘피의 일요일’로 인해 20세기를 향해 한 발 다가선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 과정을 드려다 보면, 드레퓌스 사건은 격조 높은 우아한 변혁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1905년 1월 어느 일요일, 노동자들은 공장주의 횡포와 가난을 호소하며 자신들을 구해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황제인 차르를 찾아간다. 그런 그들의 평화적인 행진을 향해 황제의 군대는 발포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러시아의 황제가 자신을 믿고 의지한 순박한 국민에게 총을 겨누어 피바다를 만든 사건을 일컬어 ‘피의 일요일’이라 한다.

이 사건의 배경은 정말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힌다. 인구의 1% 밖에 안 되는 황제 차르와 소수 귀족, 지주, 자본가들을 호화로운 생활을 감당하기 위해 95%로의 농민들과 3%로의 노동자들은 참혹한 생활을 이겨내야 했다. 지주로부터 말하는 짐승취급 받는 농민들은 참다못해 농민 반란을 일으키지만 결국 진압당하고 오히려 더더욱 탄압 당한다.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인해 자유의 물결을 경험한 러시아의 젊은 장교들은 니콜라이 1세의 즉위식 날, 차르의 전제정치 반대를 외치며 무장봉기를 일으킨다. 이 사건은 비록 바로 진압 당했지만 러시아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뒤늦게 시작한 러시아 자본주의는 과거 농노였던 도시 노동자들을 최악의 상태로 전락 시킨다. 이때 프랑스, 영국 등에선 사회적 불평등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되는 상황이고 러시아에선 마르크스가 등장하여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공동 소유, 공동 노동’으로 해결하려는 ‘공산당 선언’을 한다.

농민들의 반란, 전제정치 반대, 공산주의의 등장 따위로 어수선한 국내 정세에도 차르와 귀족들은 유럽과 아시아에 영향력을 넓히려 한다. 지배자들은 사회적 불안과 불만을 눈길을 돌리기 위해 끊임 없이 전쟁을 벌인다. 그들의 잔혹함은 극에 달해 러시아 전사자들의 유골을 비료로 팔아먹을 정도에 이른다.

그럼에도 가련한 러시아 농노들은 자신들을 도우려 부나로드 운동(민중 속으로)을 펼치던 인민주의자들을 두들겨 쫓아낸다. 자식을 전쟁터에서 죽게 하고 그 뼈를 갈아 비료로 팔아먹는 차르에게 농노들은 아직도 충성을 받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이 차르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차르에게 구걸과도 같은 자비를 애원하는 노동자들에게 발포한 사건이 발생한 것. 러시아 국민들은 그제 서야 차르의 본질에 대해서 눈을 뜬다. 이 사건의 시위를 주도하던 가퐁신부는 망명하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등장하게 된다.

그때까지 혁명을 주도해온 인민주의는 쇠퇴하고 날카로운 지성인인 트로츠키와 조직력을 갖추 레닌의 볼세비키가 혁명세력을 주도한다. 시위와 투쟁은 점점 더 빈번해지고 강도가 높아진다. 5월 1일 노동자 시위, 6월 오데사 항구 포템킨호 반란, 갖가지 무장 봉기, 10월 전국 노동 총파업까지 이르자 드디어 차르 정부 무릎을 끓고 ‘10월 선언’을 한다.

이 혁명의 중심에는 트로츠키의 불 같은 연설과 빛나는 글이 있었다. 그러나 10월 선언 이후에 경찰들은 트로츠키를 비롯한 소비에트 간부들을 잡아들여 시베리아 종신 유배형을 선고 한다.

19세기 러시아의 지배 계급은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잔혹함 보인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에게 조차 하기 어려운 만행을 참아 냈던 민중은 ‘피의 일요일’을 통해 지배자의 실체를 알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오랜 고통을 보상받기 위해 전제정치를 무너트리고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한다. ‘피의 일요일’은 러시아가 선택한, 20세기에 들어서는 전환점이 된 것이다.

프랑스와 러시아의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역사를 읽는 동안 내가 얼마나 허투루 책을 보고 세상을 보았나, 안타까운 반성을 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나와 같지 않고 문학작품을 읽어도 역사적 배경을 함께 읽어 낼 수 있고 세상을 올바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역량을 기르길 바란다.

끝으로, 우연히 원작을 구입하게 되어 두 작품을 비교해 가며 읽을 수 있었다. 새롭게 제작된 만화는 원작엔 없던 역사적 배경을 삽입하기도 하고 만화로 다 담을 수 없는 부분들을 보기 좋게 정리해 놓고 있다. 또 인물 소개는 사건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마지막으로 연대표를 이용한 정리까지, 완벽한 편집 효과로 원작을 능가하는 만화작품이 만들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도서제목 : 거꾸로 읽는 만화 세계사(프랑스 ·러시아)
저자 : 유시민
출판사 : 푸른그림책


리더스 가이드와 알라딘에 실었습니다.


거꾸로 읽는 만화 세계사 1 - 드레퓌스 사건 / 피의 일요일

고경일 글.그림, 유시민 원작, 푸른그림책(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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